번외편 : 영어 구사자가 겪는 일

발음에만 집착하는 사회, 내용은 뒷전

by 조슬기


나는 영어 전공자도 아니고 공인 성적도 없다. 유일한 경험이라면 대학원 시절 중국인 유학생들과 1년 정도 영어로 생활한 것뿐이다. 그 덕에 밥 먹고 과제하고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영어 구사자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건, 한국에서 영어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은 스스로의 실력을 의외로 후하게 평가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오래전 신문 기사에서 “성인남녀의 62%가 1개 이상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중 다수는 “일상 회화가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외국어 회화를 능숙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외국어로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장면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런 괴리 속에서, 외국어 전공자나 실제 구사자에게조차 “발음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쉽게 따라붙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연설이다. 얼굴을 가린채 연설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영어권 사람들은 “메시지가 분명하다, 전달력이 있다.”고 높게 평가했지만, 한국인들은 “발음이 어색하다, 내 자식은 저 사람보다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지적을 쏟아냈다. 정작 내용을 이해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 내용은 모르겠고, 단어 몇 개는 알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어권 사람들에겐 내용이 먼저였지만, 한국인들에겐 발음만 남은 셈이다.


이 현상은 아이러니하지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대부분은 최소 10년 이상 영어를 접하고, 읽고 쓰기를 전혀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자신의 영어실력이 중급은 될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내용 이해는 정확히 하지 못하면서, 발음 하나에는 지나치게 엄격하다. 결국 외국어를 내뱉는 용기조차 꺾어버린다.


“네 영어는 발음이 유창하지 않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 정작 제대로 구사하는 이는 드물다.


언어의 본질은 의사소통이다. 외국어를 내뱉으면 틀릴 수밖에 없다. 모국어가 아니니까. 중요한 건 그 시행착오 속에서 점점 나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발음이라는 껍데기에 집착하며, 시행착오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태도가 우리를 영어 앞에서 더 위축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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