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인 Nov 16. 2023

예의 없는 것들

병에 대한 '예의'를 취하시오.

나는 꽤 오랜 기간을 '예의 없는 것들'로 살았다.


추운 날에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머리는 말리지도 않고 밖에 나갔으며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닐 때도 있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 중에는 '예의 없는 것들'을 꽤나 많이 볼 수 있었다.


아. 한 가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예의와 상관없이 마스크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예의 없음은 병에 걸리기 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젊을 때는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 좀 더 일반적인(?) 병일 수록 더 그랬다. 감기 몸살로 쓰러져도 집에서 끙끙 앓다가 심지어 약도 안 먹고 끝날 때도 있었다. 


어지간한 상처에는 밴드도 안 붙이고 끝날 때가 대부분이었다. 골절이라든가 뼈가 보일 정도의 깊은 상처가 아니면 병원에 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때 부모님과 멀리 살아서 다행이지 부모님이 아셨다면 꽤나 속이 상하셨을 거다. 나도 내 자식이 그러고 있으면 답답할 거 같으니까.




그 시절, 그게 딱히 이상하지 않았던 건 젊은 사람들 중에는 나 말고도 '예의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약간은 서로 그런 것을 경쟁하거나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다 예절은 강제주입 당하는 경우가 많다.


크게 아프고 나면 사람들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서 조금씩 예절이 주입되었다. 물론 젊을수록 회복도 빠르고 쉽게 이겨내니 아파도 여전히 예의 없는 사람들은 꽤 많이 있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치과라든가 아니면 사람들이 전혀 본 적 없는 특이한 혹이 어딘가에 자라면 더 이상 무례하기 힘들다. 안과도 그렇고.




그러다 보면 남들이 보았을 때 나이가 들 수록 더 예의가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최후의 보루처럼 예의에도 타협점이 있다. 


나의 경우는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일단 아프면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먹었다. 


그전이라면 그냥 버텼겠지만 약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마스크는 오히려 코로나보다 빠르게 착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게 시간이 내게 주입한 어느 정도의 '예의'였다.


특히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내가 아프면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갈 가능성이 높아서 더욱 '예의'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예의'의 원리, 또는 원인들에 대해서 깨닫는 바가 생겼다.


대부분의 '예의'는 그저 배워서, 또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나 원인을 깊게 생각하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아플 때 마스크를 쓰고 누워 있는 건, 사람들에게는 '아프다'라는 것의 시위효과라든지 가까이 오는 사람들의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목감기 환자의 마스크는 조금 용도가 다르다.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자신의 호흡에서 나가는 수분을 잡아서 조금이라도 덜 건조한 호흡을 하게 만든다.




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아프다는 사람들이 목에 수건 같은 걸 꽁꽁 싸매면 약간은 '오버'하는 것처럼 봤다.


하지만 목감기에 목이 차가워지는 것은 치명적이다. 최대한 싸매는 것이 맞다.

특히 감기가 열을 동반하면, 땀에 의해서 젖었던 목이 식으면서 급속도로 차가워지기도 한다.


겪어보면 아주 치명적이다. 그래서 목에 수건이든 뭐든 둘러서 싸맨다.




오래된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접한 사람들은 감기가 걸리면 두꺼운 이불을 덮고 마스크를 한 채로 머리 위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는 것을 가끔 본다.


젊은 나에게는 연관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부모가 된 지금은 다르다.


아이의 부모들은 정확히 얼음주머니는 아니지만 비슷한 것을 쓰게 되는 일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해열제가 안 듣는 병들이 많아진다면.


적당히 열이 나면 미온수로 몸을 닦아 주는 정도로 끝나지만 39도를 넘기 시작하면 안간힘을 써서 머리로 온도가 몰리는 것만은 막을 수밖에 없다. 


갈수록 소아과는 없어지고 감기나 호흡기 질병이 대 유행이라도 하는 시점이 오면 아동병원에는 병상이 없어서 병실 복도에서 링겔만 맞다가 돌아오는 아이들도 많으니까.








지금 전국적으로 독감이 유행 중이다. 코로나도 재유행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아데노 바이러스가 유행 중이다.


드물게도 아이와 내가 동시에 아팠다. 


당연하게도 모든 것은 아이가 우선이다. 고열을 오르내리던 아이의 체온을 내리려 몇 시간을 고생하고 내 체온을 재보니 이미 39도 대였다. 


어쩐지 어지럽더라니.


다행히 열은 많이 내렸지만 나는 아직 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사실 아직 어느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마스크를 쓰고, 목을 타월로 꽁꽁 싸맨 채로 글을 쓰고 있다. 


아픈 주제에 쓸데없이 예의 없는 짓들을 하다가 목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반성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의 나'를 육아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