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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Mar 20. 2023

자신과의 싸움

'이제 다 치워도 되지 않을까?'

옷방을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을 접고 책 더미와 프린트물도 정리하고 싶어졌다.

교재 원고의 PC교를 보내고 뭔가 수정할 게 생길까 봐 못 치우고 있었던 것들이다.

2주가 넘었는데 출판사가 조용하다.

내가 더 할 건 없나 보다.


작년 가을부터 쓴 한국어 말하기 시험 교재원고가 예상했던 12월 말에 안 끝나서 1월에도 썼다.

그때 나는 나와의 싸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거실에 있는 테이블은 나의 책상이며 식탁인데 밥을 일찌감치 다 먹었음에도 노트북을 펼치기 싫어서 쓸데없이 테이블을 자꾸 닦다.


'음.. 노트북이 이미 놓여 있는 공간이 필요. 일하는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에 들어가면 일하는 걸로 하자.'


나는 옷방을 작업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한쪽에 접어뒀던 테이블을 펼치고 방석과 쿠션을 준비했다. 참고할 책을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되도록 필요한 책은 모두 가져다가 쌓아 두었다. 피부의 건조함을 막아줄 가습기와 장시간 모니터를 봐도 눈을 촉촉하게 지켜줄 인공 눈물을 준비했다. 립밤, 핸드크림, 물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완벽한 작업 공간에서 일을 시작한 날 연습 문제를 많이 만들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역시 공간 분리가 답이구. 그래, 사람은 공간에 영향을 받는 거야.'


그러나.. 점점 옷방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 입는 옷과 속옷은 안방에 있어서 잠깐 외출할 때만 외투를 가지러 옷방에 갔다.

발이 시린데 양말이 옷방에 있어서 소파 방석에 발을 묻고 바지를 내려 발등을 덮었다.

머리 쓰는 작업에 돌입하기 싫어서 옷방에 안 들어가는 내 모습이 나도 웃겼다.

참 어려운 싸움이다. 승자도 패자도 나인 자신와의 싸움은.

그래도 그런 날들을 지나 원고는 끝이 났고 완성된 원고를 보낼 때는 뿌듯하면서도 홀가분했다.  


힘든데도 자꾸 하는 일이 다들 하나씩 있지 않을까.

그렇게 힘든 건지 모르고 한 일 말고, 해 봐서 힘  뻔히 아는데도 또 하는 일.

그런 일은 끝나고 나면 자신과의 싸움이 추억으로 미화된다. 그래서 또 싸울 수 있는 것 같다.


이제 옷방 테이블을 치워서 나만의 완벽한 작업 공간이 사라졌다. 부디 추가 작업할 일 없이 원고가 책으로 변신해서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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