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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Mar 30. 2024

가족들의 차별에는 이유가 있다.

사춘기 문제아

첫째 딸은 공부를 잘했다.
막내는 원하고 원하던 남자아이였다.
 둘째 딸은 착했다.

 부모님은 아들을 낳기 위해 늦둥이로 아이를 가지셨고, 남자아이를 낳으셨다. 첫째와 막내의 나이차는 11살, 둘째와는 8살 차이가 났다. 할머니는 막내가 태어난 날 둘째 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남자다워서 남자아이가 태어났어! 장하다."


 둘째가 딸이라고 했을 때, 할머니는 병원에 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저 막내가 아들로 태어난 것이 둘째가 남자아이들과 잘 놀고 인형이 아닌 칼싸움을 했다는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말이나 하신 것 같다. 그렇게 온 가족의 사랑을 받는 막내가 태어났다.




 그렇게 6년이 지나고, 동생은 6살 나는 14살이 되었다. 당시 우리 가족의 재정상태는 좋지 못했다. 아빠의 사업이 기울어졌고,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던 엄마가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된 이유였다.

부모님의 철학은 "자식 교육에 돈을 아끼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셨다.


집안 사정이 안 좋은 와중에도 6살 남동생을 영어유치원에 보내셨다. 우리 집 생활비에 1/3을 차지하는 비용이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나에게 매번 집안일을 맡기면서도 영어유치원을 보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니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공부를 제법 했고, 좋은 학원에 좋은 강사가 있는 서울의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방학 동안에 하는 썸머스쿨이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 집 생활비의 1/3을 차지하는 비용이었다. 언니와 동생의 교육비로 생활비의 2/3가 다 사라졌다.


당시 나는 교습학원 같은 동네의 작은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언니의 학원비와 유치원비를 이야기해 주고, 우리 집의 생활비는 얼마인지 얘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학원에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 너 공부하는 거 싫어했잖아. 집에서 놀아. 좋잖아. 엄마 좀 도와줘. 착한 딸."


설득 아닌 설득을 당한 나는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내가 학원을 다니지 못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저 공부하기 싫어해서 학원을 가지 않은

 '사춘기문제아'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방학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내게 컴퓨터 학원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영어도 수학도 아닌 컴퓨터 학원을 권했을 때 조금 이상했지만 학원에 다니는 건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엑셀을 좀 배워서 아빠 일을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해. 가서 자격증도 따고 하면 좋잖아."


컴퓨터 학원을 가는 것도 결국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일을 도와줘야 우리 집이 먹고살 수 있지 않냐.라는 이유였다.


"누구든 희생하고, 도와줘야 우리 집이 잘 사는 거고, 잘 사는 게 너를 위한 거다."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렇게 집 근처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단 1달간의 수업을 듣고, 엑셀을 공부했다. 자격증은 따지 않았다. 엑셀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재미가 없었다. 아빠의 서류 작업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엄마의 역할을 하던 14살의 사춘기소녀는 엑셀을 배우면서 새로운 역할이 생겼다.


아빠의 비서라는 역할이었다.

각종 서류정리, 법적싸움에 필요한 녹취록 작성, 계약서 등 컴퓨터로 해야만 하는 작업들은 다 나의 일이 되었다.  엄마와 언니는 컴퓨터는 네가 잘하니까 라는 이유로 뒤에서 지켜보았다.


 아빠는 성격이 급했고, 돈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니 예민해져 있었다. 내가 딸이라는 생각보다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수를 하거나 늦게 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는 과하게 화를 냈다. 어린 마음에 용돈이라도 달라고 하면 당연한 일을 했는데 왜 돈을 달라고 하냐, 라며 돈돈 거리지 말라했다.




가족끼리 돕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자랐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다시 돌이켜 보았다.


1) 가족들은 나를 도왔는가?

2) 가족들은 나에게 양보했는가?

3) 가족들은 나를 배려해 주었는가?


그 무엇도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다. 도움을 청했을 때 무시당했고, 양보를 강요받았고, 나의 배려를 당연시 여겼다. 부모도 결국 사람이기에 같은 사랑을 셋에게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4살에 소녀는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했다. 사랑하는 가족이었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기뻤고, 나눠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힘들어도 슬퍼도 괴로워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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