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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Mar 29. 2024

혼자 싸워서 이겨내야 했다.

망가진 영혼

 부모님은 내가 사춘기를 세게 겪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가? 싶은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곧 아닌 걸 알았다.


매일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사춘기 청소년의 생각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상태라는 것을 짐작했다.


밤이 되면 방에서 공책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처음에는 큰 동그라미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마구잡이로 찍-찍- 소리가 나며 종이가 뚫리는 정도까지 동그라미를 그렸다. 볼펜이 부러지는 날도 있었다. 우울하고, 분노하고, 불쌍한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식이 고작 동그라미 그리기였다. 그 마저도 혹여나 부모님이 뭐라고 할까 숨어서 해야 했다.


방안에 작은 인형이 있었다.


  커터칼로 인형의 배를 갈랐다. 살짝 튀어나온 하얀 솜이 보였다. 조금씩 조금씩 솜을 꺼냈다. 작은 인형에서 나온 솜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하..”


솜이 다 나온 인형은 천조각과 눈알만 남았다. 그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멍하니 천조각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아... 이거 어떻게 하지?' 솜은 책상에 널브러져 있고, 손안에 남은 볼품없는 인형 천조각. 꼭 내 모습 같았다. 속은 텅 비어버린 게 똑같았다.


귀엽고 통통했던 작은 곰인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때 오랜 시간 고민하던 결심을 했다.


 인형이 죽은 날 나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던 커터칼을 다시 들었다. 한 번도 내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본 적 없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오른손으로 왼 손목을 그었다.  칼날은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웠고, 금방 살을 파고들었다. 한 번의 그음으로도 피가 고였다. 그리고 툭 하고, 칼을 내려놓았다.


너무 아팠고, 슬펐다. 죽고 싶었지만 바보같이 죽는 것도 못했다.



 밤이 되면 수없이 생각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뭘까? 죽어야 할 이유만 늘어났다. 그럴 때면 내 눈물은  장마 비였다. 밤만 되면 오는 폭우였다.


잠은 오지 않았고 밤은 깊었다. 새벽에 물을 마시러 나오는 가족, 화장실을 가는 가족들의 발소리에 흠칫 놀라면서도 잠은 들 수 없었다.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나 어떻게 하냐고 묻고 싶었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날 뿐이었다.


긴긴 땅굴의 깊은 곳 어딘가로 계속해서 파고들어 갔다. 고민 덩어리 하나, 고통 덩어리 하나, 괴로움 덩어리 하나 그렇게 내 마음속 땅굴은 개미굴처럼 넓고 깊어져 갔다. 깊숙한 땅굴에 숨어 웅크린 채 다음 상처가 생기지 않게 나를 꽁꽁 숨겼다.


 새로운 상처가 생기면 더 깊은 곳으로 땅을 팠다.  점점 깊고 어두운 곳으로 갔고, 결국에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곳이 내 자리라고 생각했다. 조금의 빛도 없었다.



한 마리의 외로운 개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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