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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Mar 27. 2024

싸가지 없는 년, 설거지 안 하고 뭐 했어?

그만하고 싶어.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조금의 수업도 듣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나를 싫어했다. "애 좀 깨워라." 선생님들은 짝꿍에게 나를 깨우도록 시켰고, 짝꿍은 나를 깨우는 것을 꺼려했다.


 툭- 툭 책상을 발로 차며 깨우고는 "짜증 나." 라며 작은 목소리로 성질을 냈다. 그 작은 읊조림에도 심장이 잔뜩 쪼그라들고, 눈치를 보며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긴장감과 불안함이 기본값으로 되어있었던 시기였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이었고, 동급생의 말에도 마치 어른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짝꿍은 쉬는 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친한 친구에게로 갔다. 점심시간에 반에서 밥을 먹을 때도 짝꿍은 이미 다른 곳에 가서 수다를 떨며 친구들과 함께했다. 나만 혼자 책상에 앉아 조용히 점심을 먹었다. 한 번씩 울컥울컥 눈물이 올라올 때면 밥을 우걱우걱 집어넣어 목구멍에 가득하게 넣어버렸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절대 안 돼. 나를 우습게 볼 거야.'


 그들에게 괴롭힐 수 있는 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절대 울지 않기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어폰을 꽂고, 신나는 아이돌 노래를 들으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다. 아니,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척을 했다. 학교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집으로 돌아오면 밥을 해야 했다. 매번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일을 나가게 되면 내 담당이었다. 어린 남동생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놀아주고 밥을 챙겨주었다. 언니가 와서 언니 밥도 같이 챙겨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니 '왜 나만 계속해야 하나?'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크대에 설거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언니에게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나만 맨날 하니까 오늘은 언니가 해."


언니는 싫다고 했다. 화가 나서 싸우려고 하다가 싸우는 것도 지쳐 포기했다. 설거지는 아빠가 올 때까지 방치되었다.


"밥 줘."


아빠가 들어왔다. 낮은 목소리, 굳은 표정이었다. 밥을 바로 달라고 하셨고, 나는 여느 때처럼 밥을 차렸다. 아빠는 싱크대 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집안을 한번 쓱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계집애들 둘이나 있는데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안 치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날따라 언니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나만 아빠를 상대해야 했다. "알겠어.. 치울게.." 밥을 다 차려주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집어서 정리했다.


유독 하루가 지친 날이었다. 스스로가 억울하고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시고, 나도 방으로 들어왔다.

설거지는 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언니에게 하라고 말했으니 절대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마음을 먹었다. 똥고집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독 설거지만은 하기 싫었다.


"설거지해."


물을 마시러 나온 아빠가 싱크대를 보았다. 나를 불러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싫어. 언니가 할 거야. 나 맨날 해서 언니가 하기로 했어."

아빠를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안 한다고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무서움이었다.


"뭐? 싫어?"

"언니가 하기로 했어."


그 순간이었다.

퍽- 소리와 함께 왼쪽 뺨에 아픔이 느껴졌다.

아빠가 얼굴을 때린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는 너무 놀랐고, 무서웠고, 화가 났다.


어떻게 나를 때려?
어떻게 아빠가 내 뺨을 때려?

머릿속에는 그 생각 밖에 들지 않았고, 거의 이성을 잃었다.


"싸가지없는 년, 설거지하라고 했는데 어디 말대꾸야."


"왜 때려? 안 해! 안 한다고!"


퍽-퍽- 소리가 주방에서 계속 울렸다.

  그날 몇 대를 맞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맞으면 고개를 들었고, 고개를 들면 아빠는 또 때렸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대든다며 화를 냈고, 나는 왜 때리냐며 화를 냈다. 큰소리에 놀라 언니가 나올 때까지 아빠의 폭행은 계속됐다.


언니는 온힘을 다해 나와 아빠를 분리시켰고, 나는 그 발로 집을 나갔다. 입술부터 손끝까지 파르르 떨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맞은 얼굴은 붉게 물들고 뜨겁게 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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