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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Mar 31. 2024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여러 가지 시도

 여름에 다 같이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가는 곳이 있었다. 학교와 조금 떨어진 지역의 복지관이었다. 선생님은 친한 사람들끼리 알아서 버스를 타고 복지관에서 만나자 했다. 나는 친구가 없었기에 혼자 버스를 타고 그곳에 갔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는 반 아이들이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내게 인사해주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며 구석에 앉아 이어폰을 꽂았다. 함께 이야기 하면서 갈 친구가 필요했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나를 괴롭히지 않고, 방관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따돌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스크림 먹지 않을래? 내가 살게."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은 좋았는지 의외로 아이들은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아이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사준다고 해서 다음에 내가 사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잘 먹을게."정도의 말일 줄 알았는데, 차가운 반응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용기 냈던 마음이 쏜살같이 도망가 버리고, 남은 건 수치스러움 뿐이었다. 억지로 그 말에 대답을 했다.


"응, 사달라고 안 해. 맛있게 먹어."


혓바닥부터 쓰디쓴 단어를 뱉어내면서도 친절하게 말했다. 혹여나 내가 인상을 찌푸리거나 말투가 싸가지없다고 느껴지면 뒤에서 나를 욕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특별한 괴롭힘이 없어도 나를 없는 사람처럼 따돌리는 상황에서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행동, 말투에도 눈치를 보고, 피해의식을 갖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매일 밤 울었다. 우울한 감정이 정신을 괴롭히고, 몸을 지배했다. 착한 아이처럼 말을 잘 듣던 둘째 딸이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시키는 일을 몇 번 거절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잘해주다가 너는 꼭 그런다?"라고 화를 냈다.


"하기 싫다고, 안 한다고, 엄마가 해. 아님 언니 시키던지. 왜 맨날 내가 해?"

"해줘. 엄마가 부탁할게."

"안 한다고."


나의 몇 번에 거절에 엄마는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싸가지없는 년들 엄마가 손목이 아프다는데 청소도 안 도와줘? 됐어.

엄마가 다할 거니까. 가."


언니한테는 부탁한 적도 없으면서 내가 거절했다는 이유로 둘 다 거절한 게 되는 이상한 논리였다.  당연하게 언니는 엄마를 도와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게 규칙처럼 정해졌다.


언니는 집안일을 못하니까 안 시키는 거고, 너는 잘하고 착하니까 해줄 수도 있잖아?
언니는 원래 싸가지가 없어서 안 하는 거고, 너는 착해서 도와주는 건데 왜 안 한다고 해?


나의 반항은 역효과였다. 착한 둘째 딸에서 잘하다가 한 번씩 삐뚤어지는 사춘기청소년, 중2병, 망나니, 문제아 등의 별명을 얻었다.  


그렇게 우리 집 최고 문제아는 내가 되었다.



왕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당시 유행하던 sns에 물었다. 버디버디였던가, 네이버 지식인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질문을 했다. 그리고 온 답변은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졌다.


1. 부모님이나 학교,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2. 직접 싸워서 이기세요. 미친놈인걸 보여주면 아무도 못 건듭니다.


둘 중에 첫 번째는 이미 했던 방법이었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남은 방법은 두 번째 방법이었다. '싸우는 것' 과연 내가 싸울 수 있을까? 어떻게? 과연 싸운다고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싸워야 하는 상대는 학교 안에서는 나를 왕따 시킨 참새양, 집안에서는 폭군인 아빠였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리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쪽을 선택했다.


"엄마, 나 복싱 배우고 싶어."


또 한번의 용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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