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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pr 01. 2024

어른이 필요해.

잘못된 선택

그 후 학교 앞 복싱장을 다니기로 했다. 다이어트를 하는 목적이라는 말을 핑계로 엄마를 설득하여 겨우 다니게 된 거였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복싱장을 갔다.


처음에는 줄넘기만 한 달을 했다. 3분 줄넘기, 1분쉬기 세트를 계속했다. 숨이 터질 것 같았다. 복싱장은 4층이었는데 종종 운동을 심하게 한날은 계단을 앉아서 내려왔다. 살도 많이 빠졌다.


이 모든 고통을 참아낸 것은 단 하나의 목적이었다.  나를 왕따 시킨 아이를 때려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도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은 어린 시절에 할 수 있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우울함이 조금씩 나아졌다. 스트레스를 풀었던 건지 목표가 생겨서 인지 삶이 잠시 즐거웠다.


“복싱 왜 하는 거야?”


어느 날 관장님이 물었다.


“저기 지나가는 여자애들 보여요? 쟤네가 저 왕따 시켜서 때려주려고요.”


4층의 복싱장에서 내려다보면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마침 학교 끝나고 가는 반 아이들이 있었다. 관장님은 그 얘기를 듣더니 화를 내셨다.


“ 왕따? 데리고 와. 내가 때려줄게.”


어른이 내 편을 들어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물이 왈칵 나오려는 것을 참고 웃었다.


“괜찮아요. 제가 할 일이에요.”


정말로 누군가를 때릴 용기는 없었지만 장난스레 말했다. 그리고 씩씩한 척 웃었다.



 우울하고 , 왜 살아야 하는지만 생각하다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운동을 해서였는지 자신감도 붙었다. 현실이 변한 건 없었지만 괜히 수업도 들어보고 밥도 더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조금은 괜찮은 학교생활을 보냈다. 그 모습이 티가 났던 걸까?

괴롭힘이 더 심해졌다.


자습시간, 조용하고 선생님은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갑자기 참새양의 주변으로 여자아이들이 모였다. 처음에는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더니 점점 아이들이 많아지고 나를 뺀 거의 모든 여자아이들이 모여 깔깔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조롱거리 주제는 ‘나’였다.


다시 우울이 시작되는 듯했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이를 꽉 물었다.


‘내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


심장에서부터 불길이 쏟아 오르는 듯했다.


심장이 쿵-쿵 뛰더니 머리까지 쿵쿵 쿵쿵하고 뛰는 것이 느껴졌다. 내 귓속에 맴도는 나를 욕하는 말들이 가시처럼 심장을 파고들었다.


쿵쿵 쿵쿵- 심장소리에 맞춰 나는 자리에 일어나 참새에게 걸어갔다. 성큼성큼 걸어가니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거리였다. 떠들던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왜 왔지?라는 표정과 와서 어쩔 건데 하는 표정.

그리고 참새양의 비웃음. 입안에서 비릿한 맛이 나는 듯했다.


순간이었다. 이성의 끈이 놓아졌다. 나는 참새양의머리채를 잡아 책상에 내리꽂았다. 몇 번의 책상과 머리 박치기를 했다.


쾅-쾅-쾅-


“욕을 하려거든! 내 앞에서는 하지 마! 알겠어?”


머리를 박으면서 억울함을 토해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은 나를 말리고 떼어냈다. 그리고 내게 당장 사과하라며 욕을 했다. 참새양의 비명소리, 아이들의 소리침으로 반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사과해!! 뭐 하는 짓이야!!!”


누군가의 외침, 그 순간 이성이 돌아왔다.


‘아.. 내가 뭘 한 거지? ‘


분노한 아이들의 표정. 참새양의 빨개진 이마와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고였다.


때린 건 미안해. 근데 욕한 거 사과해.


그동안의 억울함의 폭발이었다. 내 말에 여자아이들은 단체로 나를 욕했다. 사과를 받지도 받아주지도 않은 채 자리에 돌아왔다.


잘못된 방식이었다.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과 이성을 잃고 폭행을 한 것은 잘 못한 것이 맞다.

순간의 실수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했고, 모두의 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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