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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Aug 13. 2023

첫 번째 시드니 일기

두 번째

2023. 7. 24.

  석희에게서 받은 패딩이 캐리어에 안 들어가서 그냥 입었다. 신고 있던 운동화와 바지가 비에 젖는 바람에 반바지에 맨발 실내화로 갈아입었다. 괴랄한 공항패션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바로 뒤에 있던 사람들이 '저 사람 반바지에 패딩입었어.' '수원fc 관계자인가?'하는 수근거림이 들렸다. 아, 이런 식으로 스타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당장의 편안함이 더 중요한 나는 당당한 척 하려고 애썼다.


 시드니까지 가는 비행기는 젯스타 항공을 골랐다. 예매할 때 성별 선택란에 Miss 말고도 여러 직업들이 있었다. 장난을 치고 싶었다. 캡틴 문미라를 따라하고 싶어서, 이게 그렇게나 중요할까 싶어서 Captain을 골랐다. 그 탓인지 온라인 체크인이 안 되더라행여나 비행기를 타지 못 할까봐 아찔했다. 실제로는 큰 일은 아니어서 무사히 비행기표를 받을 수 있었다. 원래 자리는 창문 쪽자리를 예약했다. 10시간 가까이 되는 비행인데 화장실 갈 때 불편하면 어떡하려고. 스스로의 만행에 기겁하니 친절한 승무원 분께서 통로 쪽으로 자리를 바꿔 주셨다.


 기내는 한국 여름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에어컨 바람으로 추웠다. 반바지에 패딩 입은 걸 보고 수군대던 사람들을 소심히 비웃었다.

젯스타 항공 기내

 안에서는 마음이 많이 복잡했다. 출발 전까지 여러가지 일들이 많아 힘들었다. 자다가도 눈물이 나고 글이라도 써 볼까 생각을 길게 했다. 그러나 결국, 이번 여행에 돈을 얼마나 썼는데 우울해하지 말고 실컷 즐기고 오라던 조언이 생각나 나는 그냥 호주 가는 기분을 만끽하기로 했다.

  9시간 30분 비행은 다행스럽게 그리 힘들진 않았다. 내가 해본 여행 중에 가장 긴 비행시간이었지만 제일 무난했다. 좌석이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화장실 옆자리였다. 변기통들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졸음에 몸이 기울어지면 정신 차리라고 화장실 문짝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신기하게도 짜증보다는 이 불편한 밤에도 잠든 스스로가 기특해서 웃겼다. 간간이 일어나서 엉덩이 사이로 깊이 박힌 꼬리뼈도 뺐다. 좌석 뒷자리에는 조금 널찍한 공간도 있어서 스트레칭도 했다. 


도착 직전에는 시드니 위에서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 비행시간은 예상 도착 시간과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얼른 내리고 싶은 내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비행기 타는 걸 무서워하는 편인데 어째서인지 이륙도 그렇고 착륙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역시 축구의 힘인가? 요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는 걸 안 하다 보니 무던하게 넘긴 듯 하지만 축구 덕분에 좀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참, 입국 신고서가 충분하지 않아서 앞자리 몇 명에게만 나누어주고 뒷자리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내 서비스 필요한 건 없는지 꾸준히 물어주는 게 내 엉성한 친절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표현도 웃겼다. '기내에 입국신고서가 충분히 실리지 않아' 입국 신고서가 무슨 알아서 비행기 타야 하는데 미처 그러지 못한 것처럼 말한다. 왜 그랬니 입국신고서야! 차라리 ' 입국신고서를 충분히 구비하지 못해'나 '준비한 입국신고서가 다 떨어져서'라고 했으면 덜 웃겼을 거 같다. 요즘 책임을 가지고 갑론을박이 많다 보니 책임소지가 있는 말을 안 하려는 것 때문일까. 


이시호 선수 유니폼


시드니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숙소로 왔다. 시드니에 도착해서 짐 푸니까 오후 12시 정도, 밥 먹으러 가기 전에 축구 여행 컨셉 맞춰서 이시호 선수님 유니폼을 입었다. 하얗고 예쁘다. 원래 주인장을 닮아서 예쁜 유니폼이다. 선수님들이 주신 유니폼을 한국 경기장에서 입기는 쑥스러운 감이 있어 잘 못 입는데 이렇게 외국 나와서는 자신감 있게 입었다. 뭔가 패피 같고(?) 기분 좋다. (패피가 뭔지 잘 모른다.) 아끼고 아끼는 내 귀여운 유니폼들. 이번 여행이 긴장되는 건 내가 평소에는 유니폼들을 굉장히 귀하게 여겨 밖에 잘 안 들고 다니는데 이번 여행에서 한 두벌도 아니고 10벌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로 쓰면 이루어진다 하니 한번 써 본다. 나는 이 모든 유니폼들과 내 소중한 짐들과 함께 한국으로 안전히 돌아갈란다!

호주의 길거리 새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었을 법한 모양의 새다. 근데 비둘기만큼 흔하게 있다. 꽤 많아 보인다. 따오기가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무슨 새인지도 모른 채 '호주 따오기'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바닷가가 근처에 있어 비둘기에 갈매기에, 다양한 종류의 새가 많다. 달링 하버에서 갈매기가 어떤 사람 감자튀김 털어가는 것도 봤다. 몇 개 집는 것도 모자라 그릇까지 엎어버리던데 진짜 당돌한 녀석들이다.

카페 이코이코 (ikoiko)

첫 끼로 햄버거를 먹었다. 호주에는 소고기가 유명하대서 소고기 햄버거를 시켰다. 감자튀김 좋아하는 나지만 양이 많아 남겼다. 버거의 맛은 익숙하니 괜찮았다. 대부분의 카페가 커피도 팔고 이런 식사도 함께 판다. 카페에서 끼니를 때우지 않는 편이라 이런 문화가 낯설었다. 커피 한 잔만 시키기가 뭔가 눈치 보이기도 한 다. 나는 커피 한 잔 시키고 그림그리면서 한참 앉아있는 걸 좋아하는데. 밥만 먹고 일어나야 할 듯했다. 물론 오래 앉아있는다고 누가 뭐라 하진 않는다.

 숙소 뷰. 아 내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주인이랑 같이 지내는 숙소를 그냥 예약해 버렸다. 깜짝깜짝 놀란다. 집주인들이 거실에 나오기라도 할 때는 방해라도 될까봐 기생충 찍는 것 마냥 호다닥 숨어 들어가기 바쁘다. 별 생각 없을 그들이지만 나 혼자 지레 겁먹고 그런다.

 한편으로 이 사람들 대단하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자기 가정집 한 켠을 내준다. 열쇠도 같이. 그러면서도 에어비엔비처럼 집 공유 시스템으로 돈을 버는 게 합리적이게 느껴졌다. 그러니 집을 한 세 채 정도 갖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집 한 채, 내가 머물면서 에어비엔비로 높은 이용료를 받을 집 한 채, 안정적이게 이익을 올릴 집 한 채. 욕심 한 번 대단하다. 

 뭐 어쨌든, 시내가 보이는 이 집은 통창이라서 바깥 내다보기 좋다. 창문 사이로 스미는 가을같은 겨울 공기도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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