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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람 Aug 21. 2023

세 번째 애들레이드 일기


7.31. 애들레이드에서의 쉬는 날


 편안히 쉬는 하루. 여기 호텔은 키가 1일용인가 보다. 다음 날에 쓰려하면 카드가 작동이 안 된다. 나는 잠시 먹을 것만 사 오고 다시 들어와서 쉬려고 했는데 돈을 두고 나왔다. 문은 잠기고 카드는 말을 안 듣는다. 카드 재발급 해달라니까 하우스 키퍼한테 열어달라고 하던 리셉션 그녀. 그 도움으로 음식을 사러 갔는데 가려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터덜터덜 걷다가 베트남 음식점을 찾았다. 전화위복, 밀가루에 질려있던 나에게 쌀이라니, 베트남 음식점이 이렇게나 반가운 곳인 건 오늘 처음 알았다.  치킨반미와 계란 볶음밥 2통을 사서 다시 키를 달라했다. 이렇게 빨리 여행객이 돌아올 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리셉션 그녀는 내가 똑같은 부탁을 하는 줄 알고 잠깐 나갈 거면 키 받지 말고 하우스 키퍼한테 부탁하라고 다시 말했다. 에라, 먹을 것도 많이 사 왔겠다. 그냥 키 없이 하루 지내다가 일찍 나가야지. 사실 내 일정을 영어로 설명할 자신이 없다.

 처음 먹는 반미는 맛있었다. 왜 다들 좋아하는지 이해 간다. 안에 야채들이 절임야채라 새콤달콤했다. 야채 많이 넣고 고기 적게 넣고 싶었는데 손 큰 주인은 그 반대로 해서 샌드위치를 만들긴 했다. 단백질 부족한 내게 단백질 충전은 반가워할 일이긴 하지만. 반미를 반쯤 먹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막힌 이 방은 환기를 어떻게 하는 걸까? 이산화탄소가 그득한 방에서 질식하는 건 아닐런지 걱정하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오후 5시가 되어 배고파 일어났다. 글을 써야 하걸랑. 여기도 책상과 의자만 있더라면 족했을 숙소인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 어떻게 앉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침대 옆 협탁을 책상으로 삼고, 쓰임 모를 등받이를 떼다가 바닥에 깔고 위에 비치타월을 깔아 앉았다. 거기서 한참 글을 썼다. 진짜 재밌었다. 궁핍하지만 열정을 잃지 않는 작가 같았다. 언젠가 대박이 날 사람 같았다. 궁한 작가라는 말은 틀린 구석이 없긴 하지만. 시골의 넓은 호텔에서 블로그 글을 쓰는 게 낭만이었다. 그래도 하얗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베개도 4개나 가지고 있다.
 비행기 안 놓치려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아침으로는 남긴 계란 볶음밥이랑 잎 장아찌를 먹을 거다. 단단히 다짐하고 빠진 데 없는지 확인한 다음 다시 잠자리에 든다. 내일 비행이 걱정된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 막막하다. 아침비행기인데 항까지 가려면 버스도 갈아타야하고 1시간이나 걸린다. 에잇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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