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기, 홍학이 된 사나이
오한기의 『홍학이 된 사나이』는 엄연히 말하면 ‘홍학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화자는 왜 홍학이라는 ‘동물’이 되고자 했을까.
예로부터 자연은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왔다. 어떤 이는 자연을 경이로운 것으로 칭송하였고, 어떤 이는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자연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며 인간과 공생의 관계이기도 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를 ‘이성(理性)’에서 찾았다. 그는 자연 체계 내부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인간은 이성을 가졌기에 자연법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을 가진 존재, 즉 인간만이 도덕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칸트는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는 ‘이성’이고, 이성이 있기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한기의 『홍학이 된 사나이』에도 ‘이성’이 자주 언급된다.
화자는 원자력발전소라는 둥지를 의인화하며 그곳에서 “이성과 본능이 싸우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화자는 홍학이 되고자 하는, 다시 말해 사람이고 싶지 않은 자다. “이성과 본능이 싸우고 있”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의 대립’과도 같은 말이다.
인간은 이해타산적 관점으로 원자력발전소를 바라본다. 하지만 홍학을 비롯한 동물에게 원자력발전소는 하나의 구조물에 불과하고 심지어는 ‘둥지’와도 같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동물은 건축물에 대한 이해타산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 화자는 동물적 본능에 의해 사고한 결과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을 남긴다.
그런데 계속해서 인간임이 강조되는 DB와 그의 아버지는 홍학이 되고, 정작 자신이 홍학이라고 믿고 있는 화자는 홍학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화자가 가지는 “외로움”의 감정 때문이다. 화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상기한다. 인간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강박적으로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애쓴다.
현대인은 외로움과 밀접한 존재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급기야는 ‘포모 증후군(Fear Of Missing Out)’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포모’는 품절과 관련해 소비자의 다급한 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 용어였으나, 현재는 세상에서 자신만 제외되었다는 일종의 ‘고립공포감’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화자는 그러한 상태가 되기 위해 자신을 인간이 아닌 동물(혹은 그것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가정한다. 화자가 보는 동물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지도 않는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며 “그럭저럭 살 만한 세상”을 살아간다.
화자는 인간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했다.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외로움”을 버리지 못했고, 홍학이 되지 못한 채 인간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