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퍼주는 마음으로 살자
미처 글로는 쓰지 못한 그간의 고생들,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 헐 언니는 글로벌 호구네요.”
어두운 이야기들을 나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런 직설화법을 들으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 그러게. 어디 가나 호구네. 글로벌 호구가 되었네.”
나는 왜 호구가 되었나. 그냥 호구라 불리는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글로벌 호구가 되었을까.
어디 가나 호구되기 쉬운 한국사람,
그게 바로 나다.
한국인은 흔히 ‘정’ 이 많다고들 한다. 김치를 담가도 꼭 한 포기는 이웃 나누어 주고, 음식 할 일이 있으면 통 크게 많이 해서 이 집 저 집 나누어 먹는다. 필요한 것을 살 때도 한 두 개를 더 사서 나누고, 동네 아이들 생일은 다 챙긴다.
한국에서 그렇게 살았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지치지 않았다. 하나를 나누면, 그 하나는 둘이 되어 돌아왔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지인들로부터 착하다 잘한다는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게다가 한국인들에겐 눈치가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알아준다. 그들은 웬만하면 선을 넘지 않았다. 내 영역과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나라는 존재를 존중해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이 있다면, 거리를 두고 안 보면 그만이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도덕과 양심이라는 가치가 있어서, 늘 공감과 이해를 받으며 살았다.
지인들은 대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종교도 같고 학력도 비슷하고 재력도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과, 비슷한 관심사와 공감대를 가지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향유하며 살았다.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같은 감성을 느끼며 살아왔다.
문제는 환경이 바뀌고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살았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바뀌었고 그들은 각각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의 사람들인데도, 나는 한국인으로만 살았던 것이었다. 그들을 내 기준에서만 생각하며 지치고 상처 받았다.
그들로부터도 주고받는 것 (Give and Take)을 기대했다. 세 번 초대하면 적어도 한 번은 초대해줄 줄 알았다. 열개를 주면 일곱 개는 돌아올 줄 알았고, 그게 아니라면, 칭찬과 인정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오산이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눈치가 없었다. 한국에서처럼 나이와 상황에 따른 기대되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다들 철이 없는데도 철이 없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나누어주고 잘해주면 내 것은 가져가도 되고 요구해도 된다고들 생각했다. 퍼주고 또 줘도 더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심각하게 고갈되어 갔다.
한국의 엄마들이 배우자를 고를 때, 왜 그렇게 “가정교육”을 중시하는지를 타향살이를 하며 깨달았다. 한국 여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덕목들을 외국 여자들은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요리를 할 줄 알고 집안일을 할 줄 알기 때문에 한없이 기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밤이고 낮이고 아이들을 맡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간식과 저녁까지 먹고 가는 동네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하염없이 지쳐갔다. 때로 그들이 물어뜯으러 달려드는 좀비 떼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팔다리를 내줬는데도 성에 차지 않는지, 내가 완전히 뜯어 먹혀 사라질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다. 타향 생활이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그들을 안 보면 살 것 같았다. 내 영혼이 지겹고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 팬더믹이 터졌다.
필리핀은 심각한 락다운에 접어들며, 사람들이 왕래를 거의 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엔, 얼마나 숨통이 트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지겹던 사람들을 안 보니 살 것 같았다.
2주만 지속될 줄 알았던 락다운이 6개월, 1년, 1년 6개월로 길어졌다. 해방감과 자유함은 외로움으로 변했다. 벌을 받은 것 같다는 우울함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든 문화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미웠지만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잘못은 그들만 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으로만 살면서, 한국인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을,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기대했던 나도 잘못이 크다.
락다운이라는 감옥의 독방에 갇혀서야, 그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로벌 호구라도 혼자 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낫다. 주고 또 주면 어떤가.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안전한 한국에서도 돌아갈 날만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다짐한다. 다시 돌아가면, 한국인으로 살지 않겠다. 되새기고 공부한 수많은 문화들을 안고서, *세계인(International)으로 살 것이다. 모든 문화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그런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쿨한 모두의 친구가 될 것이다. 빼앗겼다며 속상해하는 것이 아닌, 줄 수 있는 것을 기꺼이 주는, 진짜 글로벌 호구로 살고 싶다.
*international의 뜻은 국제적인 입니다. 저는 한국인을 넘어선 정체성을 ‘세계인’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IRRI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international입니다. 세계인에 걸맞은 다른 영어단어에는 cosmopolitan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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