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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maker Dec 28. 2021

한국에서만 커피 맛을 느끼는 여자

겨울이 되찾아준 커피 취향

9년 만에 맞는 겨울이다. 9년 만에 맞이하고 경험하는 겨울이, 9년 동안 잃어버렸던 많은 것을 깨워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커피맛이다.


   지난 9년 동안 네버엔딩 여름나라에서 살았다. 그전에 한국에서 살 때 나의 기호식품은 바로 커피였다. 핸드드립 몇 주 코스에 등록하여 (나름) 수련을 하고 손수 내려 마실 정도로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취향은 샷 하나 정도는 추가한, 진한 아메리카노였다.


  진한 아메리카노의 쌉싸름한 맛에, 쓴 맛이 중화될 정도만의 황설탕이나 시럽을 넣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섬세하리만큼 적은 양이었어서, 설탕의 단맛은 하나도 느껴져서는 안 되었다. 설탕은 추가했지만 쓴 맛만 덜어졌을 뿐, 그 자취는 철저히 숨겨져야만 하는 맛이었다.


  9년 동안 살아온 나라 필리핀에서, 그 맛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핸드드립을 위한 모든 도구들은 당연히 가져갔었고, 그곳에도 있는 흔한 별다방이나, 여타의 커피빈을 사 와서 손수 커피를 갈아 마셔도 이상하게 (내가 좋아하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습하고 더워서 더 피곤한 나라에서, 몸은 더 진한 커피를 원했는데, 커피가 유명하다는 음식점이나 한국에서부터 익숙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찾아도 그 맛은 밍밍하기만 했다. 왜인지 한국에서처럼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내가 좋아했던 커피 취향을 잊은 채로 살았다. 힘든 육아와 타향 생활 속에서 커피는 피로한 몸에 카페인을 수혈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기호식품은 그 세월 동안 잊혔고, 만끽하던 커피맛이 부재한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 부족한데 그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바보인 채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머물 기회를 얻고 나서도 그것이 결핍된 채로 있었다. 스벅에 가서도 커피 외의 다른 메뉴들을 시켰다. 아침마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캔커피로 피곤한 정신을 깨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일월이었다. 바람이 꽤 시린 날에 지인과 투썸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모처럼 남편과 아들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었고, 지인이 커피를 사준다 하여, 그가 뜨아를 주문하길래 나도 따라 주문한 참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커피를 마시는데 이상하게도 9년 전에 좋아하던 그 맛이 되살아났다. 투썸의 커피가 진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니 차가운 공기의 적당한 건조함이, 날 9년 전으로 돌아가게 한 것 같다. 기호식품을 섭취하는데 맛의 재현만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것을 섭취하던 순간들의 날씨와 기후도 한몫할 수도 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혹은 내 마음의 상태가 변수 인지도 모른다. 타향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였던 결혼생활을 오로지 필리핀에서만 해와서인지, 결혼한 상태에서의 고향 생활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이 타향 같고 필리핀이 고향 같다는 말도 안 되는 헷갈림을 안고 살았다. 지인과 자유롭게 투썸 야외테이블에 앉았던 그날, 나는 마침내 결혼 전 싱글이었던 때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완벽히 돌아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지금 그 맛을 다시 얻었다. 9년 전에, 내가 좋아하는 맛의 커피를 마실 때마다 시간이 통째로 내게 부서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느꼈었는데, 이제야 그것을 다시 느끼고 있다. 특히 바깥에서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 커피를 마실 때, 더 그 맛을 강하게 느끼고 만끽한다.


  이러한 경험이 나에게 알려주는  가지는, 사람은 이토록 예민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같은 맛의 커피를 마시더라도, 덥고 습한, 고향과는 전혀 다른 기후에서는 전혀  맛을 느끼지 못하던 모습이, 나의 연약함을 재확인하게 한다. 수많은 다채로운 경험을 가진 내가, 어디에선가 만족하는 삶을   있을까? 이제부터 삶은 나를  불안과 불평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도 되찾은 커피 맛이 이런 나의 불완전함을 잠재우기를. 커피에 취한 순간만큼은 완전한 척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상의 고됨과 슬픔이 그 가장된 완전함 속에서 잠시나마 거짓된 만족함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커피를 계속 마실 이유가 내게는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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