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살다 보면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한 번의 선택으로 또 다른 책임과 선택이 뒤따르고, 그 다음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에야 다시금 깨달았다. 내 인생은 결국 내가 한 선택들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늘 내가 내린 선택에 만족하지 못했다. 진짜 원하는 것이 있었지만, 항상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나 혼자만 농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농인이라는 이유로 소외될 것만 같았고, 늘 그런 불안감이 있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아끼던 간식을 나눠주며 '이렇게 하면 나를 좋아해 주겠지?'라고 기대했다. 상대를 배려하면 '나를 봐 주겠지?' 하는 설렘과 기대를 품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선택을 했다.
초등학교 때 가장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가 있었다. 늘 활발하고 모든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친구였고, 나도 그 무리에 끼고 싶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가 가지고 있던 예쁜 볼펜을 유심히 보는 걸 눈치챘다. 평소에 아끼던 물건이었지만, 그 친구가 나를 더 좋아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 볼펜을 선물했다. ‘이제 그 친구와 더 가까워지겠지?’ 라는 설렘에 마음이 부풀었지만, 그 친구는 단순히 고맙다는 말만 하고, 그 후로도 나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 소중한 것들을 내주며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상대방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 중심이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자기주장이 없었고,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합리화라고 생각했던 적도 없었다. 그렇게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그게 습관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저 이렇게 굳어가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 합리화한 선택들은 결국 가장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했고, 나 또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친구의 마음에 맞추느라 정작 내 진심을 표현하지 못했고, 결국 서로의 기대와 다른 상황들이 쌓여 다툼이 일어났다. 그 친구는 내가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느꼈고, 나는 내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또 는, 나는 A,B와 함께 춤을 추는 공연팀에 속해 있었다. 우리 팀은 주로 힙합 댄스를 추는 팀이었는데, 사실 나는 힙합이 나와 잘 맞는 장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억지로 팀에 맞춰 춤을 추었고, 솔직히 춤도 잘 추지 못했다. 게다가 농인으로서 음악을 듣는 감각이 다른 팀원들과 달랐기에, 점점 더 위축되고 자존감도 떨어졌다. 춤을 정말 좋아했지만, 그 상황들이 너무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팀 매니저가 물어보셨다. "너희는 매력이가 진짜 추고 싶은 춤 장르가 뭔지 물어본 적이 있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 팀에 맞춰왔던 내가,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A와 B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매력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우리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대표님은 한참을 지켜보다가 "왜 매력이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니?"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늘 옆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게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용기도, 표현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심지어 A와 B가 공연을 다닐 때 종종 의견이 충돌해 싸우곤 했는데, 그럴 때도 나는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둘은 오히려 나에게 "매력이도 제발 의견 좀 내줘"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좋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진정한 소통과 자기 표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가 든다. 내가 정말 추고 싶은 춤 장르를 먼저 찾고, 나 자신을 더 당당히 표현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선택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선택을 내가 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였든 간에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모든 중심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방향은 이게 아닌데, 왜 이런 선택을 해서 나를 아프게 했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스러웠던 선택들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새로운 선택을 하고 싶다. 나를 중심에 두고, 진짜 나다운 선택을 해나가며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