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가와 가장 가까운 제자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다. 스승의 인간됨에 매력을 느껴서
집과 화실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장욱진의 생각과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을 따르는 제자이지만 아무래도 장욱진의 영향을 더
받은 것 같다. 그는 자기 안에서 두 스승 중 누구를 중심에 둘지 갈등했다고 고백한다.
6.25라는 비참한 동족 전쟁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문물과 서구 미술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오게 만들었다. 장욱진, 김종영, 김환기는 격동기에 민족적인 자각과 정서를
버탕으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서 험난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예술세계에 전념하며 정직하게 살았던 예술가들이다.
그 누구보다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한 세 명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일생을 바쳐 형태를
탐구하였는데,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가 필요하였다."라고
결론 내린다. 저자 최종태는 반가사유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인체를 그런 간결한 형태로
제작하면서 아름다움은 한없이 큰 것이라 다 알 수 없고 다만 접근해 갈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미를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라고 말한 김종영의 생각에 공감해서다. 시작과
끝이 있는 인생에서 영원한 데다 뜻을 둔 김종영과 장욱진이 술에 취했다 하면 내뱉는
"나는 심플하다."라는 말은 같은 의미다. 세상적인 것에 거리를 둔 깨끗한 것에 대한 염원으로 서로 통한다.
그림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이지 그리는 게 아니다는 장욱진과 작위(作爲)의 흔적이
안 보이는 김종영의 작품은 닮아있다. 예술가들은 많지만 참 예술에 근접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천 개가 몽당붓이 된 추사처럼 '타고난 사람이 생사를 걸고 전심 전력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나를 돌아보니 부끄러워졌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예술과 조각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장욱진 선생이 주신
한 말씀이 있다. "비교하지 말라." 김종영 선생의 마지막 말씀 "신과의 대화가 아닌가."를 저자는
한 가슴에 품게 되었다.
절대로 옳은 그림이란 없고 진실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그림도 없기 때문에 그침 없이 변화한다.
그림 그리는 일이란 결국 나를 찾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예술에 있어서 최고의 목표가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 있다면 참 자기에의 도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이란 결국 나를 찾기 위한 모색의 흔적이며 몸부림의 흔적이다.
장욱진의 그림은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의 상념은 계속 변화하고 조금씩 보다
깊은 세계를 향하여 들어가고 있다. 10년쯤의 간격을 두고 보면 그가 얼마나 진행하고 있었는지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비교적 초년기에 자기의 어떤 특수성을 발견하고 그 자리를 끄떡 않고
지켜내면서 거대한 서구 미술사의 바람을 정면으로 항거한 것이다.
장욱진은 우리가 사는 평범한 모습을 그렸다. 해가 있고 달이 있고 아이들과 강아지가 놀고 산이 있고
하늘에는 새가 난다. 나무 위에 집이 있고 나무 안에 까치가 있다. 한국적인 특수성을 띤 단순한
모티브를 토대로 비어 있는 순수함을 드러냈다.
그것은 곧 인간의 본래적인 성품이며 보편성과 통해 있다. 자유롭고 즐거운 그림을 정성을 다해
그린 민화의 세계는 장욱진의 맑음과 밝음의 작품세계와 만나기도 한다. 감각적인 것을 넘어서
정신적인 것, 평생 추구한 깨달음의 세계에서 꽃 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욱진처럼 철저하게
외길로 산다는 것은 낮에도 술에 취해 있을 수밖에 없었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자기한테 주어진
길을 더 할 수없이 열심히 살고 승리한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