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마리나 반 주일렌
예년과 달리 올봄이 길어졌다. 덕분에 바깥에서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과 날씨의 축복을 맘껏
누리고 있다. 5월은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이라는 시인의 말은 6월에도 유효하다.
테디와 산책을 나가면 장미꽃, 접시꽃, 수국, 치자 꽃 등 계속 피어나는 걸 보게 되고 마음이
환해진다. 그런데 연말 전시회를 앞두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요즘 답답해서 마음에 맞는 친구나 멘토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마침 신간 소개를
보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레비나스와 안톤 체호프 같은 작가들을 언급하고 비슷한
성향과 경험을 한 점에서 공감이 되었다.
저자가 성공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데 약간 동의하지만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는 것을 우리가 가장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야망을
갖는 것이 아니고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성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웬만큼 먹고살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감내한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어느 정도 타협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자기 내면의 그늘을 감추고 '그만하면 괜찮다'면서 살아간다.
저자가 열등감을 극복하면서 오직 성공을 목표로 했던 좁은 시야를 벗어나게 된 것은 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를 통해서였다.
"삶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고 그저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이며, 이는 곧 기쁨과
성취감의 원천이 된다."
본명이 메리 앤 에번스(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소설가로부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삶이 내는 자그마한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사람이 되어야 하고 섣불리
드러난 모습에 따라 타인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무엇이든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평범함을 이루는 중용은 동양의 고전에서 으뜸 덕목으로 치기에 익숙하지만 그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을 말한 서구의 현자들도 '평범한 삶'에 높은
가치를 두었다.
중용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계속 찾아나가는 삶의 자세이다.
인간이 지닌 한계를 인정하면서 때로 오류에 빠지거나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돌아서 다시 반성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그림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그리게 된 대상이 이름 모를 '풀꽃'이었다. 위를 쳐다보지
않고 아래를 보며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워졌을 때였다. 저자는 대학교수로서 사회적 지위를 얻고
안온한 삶을 살게 되었으니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위한 고민이 없었다면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존재들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의 기대나 행복의 조건에 나를 맞추려 한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
나와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인간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사소하더라도 모든 일은 우리에게 나름대로 의미
있고 특별한 것이다.
지난 세월 좋은 딸이 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부족한 나를 돌아보게 되는데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통해
우리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