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망구엘, <나의 그림 읽기>
드디어 완연한 가을이 왔다. 바람이 차가워졌다. 어느새 예쁘게 물든 나뭇잎이 마른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태양의 열기가 서서히 잦아들고 오늘도 비가 오더니 대기 중에 찬 기운이 스며들었다. 비 온 후 바람이
세차게 불면 길에 떨어진 낙엽만큼 사라진 것들이 많을 것이다. 가을의 한가운데서 빗소리를 듣는 이 순간
삶을 진실하게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그득해진다.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시각적 형상을 이야기로 바꾼다. 그런데 그 어떤 이야기도 그림의 의미를
모두 담아낼 수 없다. 그림과 해석은 마치 사방이 거울로 만들어진 방처럼 서로를 비추고 또 비춘다.
그림에 대한 탐구는 결코 끝이 있을 수 없고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결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예술은 사회의 변화를 앞서나가거나 반영하게 된다.
“만물에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구나.”라는
전도서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처럼 공통된 상식에 부합되는 상징 표현에서 벗어나 현대 미술은 작가의 주관적, 개인적인 것으로
전이가 이루어진 상태다. 이미 이야기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그림에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상징체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주제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 지 오래다. 작가에게 표현방식에 대한 고민이 커지면서 설치와 미디어 아트 분야가
생겼다.
어떻든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 감동과 영감도 다르다. 미술은 단지 시각적 경험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작가의 창조 행위의 결과물인 예술 작품을 경험하면서 자유롭게 느끼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림에서 색채와 형태는 직접적인 그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작품에서 무언가를 느끼거나 의미를 찾는 것은 관람 자의 몫이다..
따라서 완전하고 결정적인 해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그림은 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어린아이들이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몇 개의 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그림은 화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은 스스로
주권적인 세계를 갖고 있지만 말을 기다린다. 책의 독자처럼 자신의 환상 혹은 삶과 결부시켜서 읽어낼 사람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관점에 따라 많은 것을 시사하면서도 동시에 애매모호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진정한 예술 작품이 아닐까? 모나리자의 미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