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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Aug 21. 202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SKAM norway 2, Noora


  그게 네게 왜 중요하냐고 묻는데, 밀란 쿤데라는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랑, 독재, 공허함, 외로움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읽은 책이 밀란 쿤데라였다. 그 때의 나는 민음사의 그 표지만 보면 아는 세계문화전집에 미쳐 있었고, 우연찮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집어들었다. 그 때 문학 전공인 담임 쌤은 야자 시간에 책 읽기를 금지했는데, 책의 강렬한 첫 시작,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테라자를 사랑하는 토마시를 보며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담임 쌤이 돌며 야자를 감독하다 옆 자리 남자애가 왜 나는 책을 덮으라고 안 하냐 묻자 이런 책은 읽어도 된다며 나를 가만히 두셨다. 그 때부터 이 책은 내게 명작 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으며, 내용으로도 명작으로 남아있다.


  고등학생 때는 인권 운동에 유달리 관심을 가졌다. 이성애자인 내가 게이 레즈비언 소설과 영화를 보고 미국 하이틴 드라마의 게이들을 응원했다. 학교에서는 한국사 시간에 5.18에 대해 배우며 독재의 부당함을 배우고 대학에 가서는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배우며 우파 독재 뿐 아니라 좌파 독재가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중남미 사회주의의 새로운 면을 보면서도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걸 보았다. 그 이후에 밀란 쿤데라가 체코 독재 정권을 비판한 이 책도 좀 달리 보였다. 이념이 내제에 덜 깃든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읽기에도 테레자와 토마시는 사랑 이외의 독재로 인해 고통 받는게 느껴졌다. 독재 사상은 멀쩡했던 이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그리고 왜 인간은 제 것도 아닌 부당함에 공감하는가.


  직업과 부 가졌지만 불륜하는 남자,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태도를 가진 부모에게서 벗어나고자 남자에게 집착하는 시골 여자, 자유분방하고 여유로운 예술가 여자, 학자이면서도 열렬한 짝사랑을 하는 남자. 지극히 선입견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네 주인공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사고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들을 얄팍하게 그려내지 않았다. 증오스러운 모습에서부터 가장 존경스러운 모습까지 각 인물들에 모두 담아냈다.


  바람을 피는 토마시는 테레사를 사랑한다. 그녀의 잠들어서 물에 떠내려오는 듯한 아기 같은 모습, 가장 성적으로 분방한 그에게 그녀의 순수성과 일편단심은 매력이자 거부할 수 없는 아련함이다. 그런 사람이 도덕 관념과는 다르게 조국의 미래에서는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 테레자를 버린 적도 없다.


  테레자는 바람을 피는 걸 알면서도 토마시를 사랑한다. 그 덕분에 부모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고, 기자로서 사회에 뛰어들 수 있었고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지쳐있다. 완전하지 않은 사랑, 위치에 그녀는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안한 존재처럼 자리하고 있다. 새아버지는 그녀를 희롱했고, 어머니는 그녀의 젊음을 질투해 그녀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며 훼손했다. 이런 그녀에게 토마시는 안정적인 애착을 주지 못한다.


  사비나는 돈과 예술가로서의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갈망한다. 유부남과 애인이 있는 남자들을 만난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이는 그녀는 가장 자유로운 인물이다. 성에서, 논리에서 자유로워질 수록 그녀는 더욱 매력적으로 변한다. 우리는 보통 토마시는 많이 접하지만 사비나 같은 캐릭터는 접하기 힘들다.


  프란츠는 가장 강직하면서도 연약하다. 환경적으로 가장 연약해보이는 테레자보다 더. 그는 아내에게서, 직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도피하고 숨으며 사비나의 자유를 갈망하며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불륜과 바람을 혐오한다. 이로 다치는 이들을 많이 봐왔고, 도덕적 흠결이 그 사람의 다른 모든 일에도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도 공허함을 느끼고 배신 당하면 우울해하는가. 이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는 거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어째서 매력적인가? 참을 수 없는데 연애관에 있어 가볍기만 한 토마시와 사비나는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가?


  밀란 쿤데라의 매력이라면 결국 바람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아진다는 점이다. 토마시를 보며 바람이 좋다는 사람은 없을거다. 그도 결국 테레자에게 돌아가니까. 오히려 내연녀, 상간녀의 위치였던 누구와도 관계를 깊이 맺지 않은 사비나만이 자유로운 상태로 남아있다. 일부일처가 적합한 제도인가? 폴리아모리는 어떠한가의 질문처럼 이 소설은 한 주장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일부일처로의 회귀, 진정한 폴리아모리는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소유욕을 가진다. 질린다는 마음으로 상대가 주는 편안함과 소유욕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 어리석다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돌아갈 것이고 정착할 것이다. 토마시의 역설을 보자. 가장 난잡한 이가 강물에 떠내려 온 듯한 열이 나는 여자를 보며 소중함을 느끼는 그 모습. 그 역시도 지고지순을 못 이겼다. 가장 쿨하고 나쁜 남자일 것만 같은 토마시의 귀여운 부분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저자밀란 쿤데라출판민음사발매2018.06.2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저자밀란 쿤데라출판민음사발매2009.12.24.



민음사 2009 버전으로 처음 접했지만 더 좋아하는 버전은 2018년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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