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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아 Oct 25. 2023

혈연 관계 “분리”구성원

4C0=1


  우리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래, 대뜸 듣기에 썩 좋은 표현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단어를 입에 넣고 곰곰히 굴려보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가장 적절한 표현인 듯 하다. “풍비박산”!


  분명 그리 불우한 가정은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딸, 그리고 강아지. 겉보기에 여느 평범한 가정과 다름이 없었다. 가난한 축에 살짝 더 기울어 있었으나 찢어지게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뮤지컬과 클래식 공연을 종종 보러 다녔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 가족은 서로 매우 달랐으며 동시에 너무나 닮아있었다. 서로를 절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싫어하는 서로의 모습을 적어도 하나씩은 은연중에 품고 눈치 채지 못하는 새 그리 행동하고 있었으므로, 이 가족이라는 집단 구성원의 틈에 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4인과 1견은 1인 가구 셋과 1인 1견 가구로 분리되었다.


  이 가족의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난 아주 어렸을 땐 틈만 나면 다투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불안했고 그 사이에서 다소 감정적인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컸을 땐 모든 게 무던해져 다 지겨울 뿐이었다. 마침내 성인이 되어 홀로 상경하여 생활하게 되자, 혼자라는 외로움은 있었지만 어쩐지 홀가분했다. 그렇게 조금씩 서울에서의 내 삶의 영역을 넓혀갔고, 조금씩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슬금슬금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 하루는 15년을 함께 한 강아지, 우리 푸름이가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심으로 슬펐다. 하지만 사무치는 아픔은 아니었다. 어라, 나 꽤나 정이 없는 매마른 인간이었나. 그런 생각에 푸름이에게 슬픔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요즘도 종종 예전에 찍은 그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뱃속부터 부글대며 혀뿌리까지 끌어오르던 그 알 수 없는 기분은 아마 평생 알 수 없을테지.


  나는 아빠와, 오빠는 엄마와 매우 닮아있다. 생김새는 물론, 성격까지도.

  아빠와 나는 회피형에 대체로 잔잔한 성격이었다. 아빠는 종종 욱하는 성질이 있었으나, 나는 화가 나도 애써 표정을 지우고 치솟으려는 마음을 꾹꾹 눌러댔다. 그래서 어리광 없이 꽤나 어른스러운 나였지만, 어렸을 땐 말없이, 어쩌면 더 유치한 방법으로 투정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입을 꾹 닫고 대답하지 않는다거나 단답으로 툭툭 말한다거나 한다는 것들.

  반면 엄마와 오빠는 절대 참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감정의 폭도 매우 크며,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해버리는 사람들이었다. 어릴 땐 엄마와 아빠의 충돌이 잦았는데, 시간이 흐르며 부모님이 헤어지신 이후에는 엄마와 오빠의 충돌이 더 잦고 크기도 더욱이 커져버렸다. 제 3자인 내가 볼 땐 당연한 일이었다. 둘은 상당히 닮았고, 그런 닮은 면을 싫어하는 것 마저 닮아있었으니까. 그렇게 (과격한 표현이지만,)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하필 정이 많은 것도 비슷한 바람에,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혈연으로 이뤄진 그 관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엔 정말 한 번 “죽일 듯” 다툰 이후로 연락이 단절되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둘은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고 증오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걸.


  나는 스스로를 꽤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이 많고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구르고 구르다보니 나는 어느새 생각보다 더 많이 덤덤해져 있었고, 나를 제외한 그 3인과 1견의 존재를 각각의 구성원으로 보고 있었다. 가끔 두세달에 한 번 정도 안부 차 연락을 묻곤 하지만, 사실상 남이나 다를 바 없는 이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도망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가족이라는 구성원 안에 매어 있을 땐 전전긍긍하고 불안하기 그지 없었는데, 제 3자로 떨어져 나와 각각을 마치 사회에서 만난 지인처럼 바라보니 더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비록 표면적인 것일지라도). 실제로 현대 사회인들의 다수가 혈연 관계보다 사회적 관계와 더 자주 소통하지 않는가. 마치 그런 것처럼, 나는 이러한 상태가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았다. 이토록 거리가 생긴 부모님으로부터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떤 감정이 들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리 슬피 울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 깨닫자, 어쩐지 마음이 쓸쓸해졌다. 아아, 핏줄로 이어진 이 관계란 대체 무엇일까,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꼬인 실타래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내게 가족은 그리 소중한 것이라거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각 개인으로 생활하고 종종 소식이나 전하는 근래가 함께 했을 때보다 더 편안하다.


  그러나 무의식 중에는 모두가 화목한 가정을 많이 부러워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꿈에 오빠랑 엄마랑 어린 푸름이가 나왔다.

  잠에서 비몽사몽 반 쯤 깬 상태에서 문득 이곳이 어디지,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고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는 예능 방송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으려나,

나도 엄마도 오빠도 모두 벽없이 웃고 있었다.

아빠가 거기에 없는 게 아쉬웠다. 만나지 않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꿈에는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완전히 잠기운이 가시고,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음 번 꿈에는 푸름이와 아빠까지 다섯의 가족이 함께 단란히 웃고 있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혈연이라는 이 관계란, 정말 무엇일까. 참으로 지독하고도 애틋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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