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새끼 키우기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서로 절친이라고 부르는 그런 관계였는데, 1년이 지나면 새로운 학년에 반 배정도 새롭게 되어 바뀌어 버리니까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둘이 꼭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손을 맞잡았다.
2학년의 시작. 어떤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었는지 반 배정을 확인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이름도 조금은 보였지만, 낯선 이름의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내 절친과도 다행히 같은 반이 되어 다시 1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친구에게 달려갔다.
“진짜 너무 다행이야. 이번에도 계속 붙어 다닐 수 있겠다!”
라며 친구는 너무 기뻐했고, 나도 기뻤다.
새 학기의 시작에 들뜨기도 하고 1학년 때는 이 친구랑만 거의 붙어 다녔어서 다른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새로운 친구들에게 인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몇 명의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첫 등교 날 학교가 끝날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친구에게 다가가니 아침에 환하게 웃던 친구의 표정은 사라지고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왜 그래?”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친구에게 물었다.
“아니야. 근데 아까 누구랑 엄청 재밌게 웃던데.”
“오늘 새로 친해진 친군데, 같은 아파트에 살더라고.”
“아 그랬구나. 오늘 우리 집에 놀러 갈래?”
“미안... 아까 그 친구랑 집에 같이 가기로 했어. 다음에 놀러 갈게.”
새롭게 친해진 친구가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앞으로 등하교를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터라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표정이 안 좋았어서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내일 다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헤어졌다. 친구는 그 뒤부터 점점 말수가 줄어갔지만, 별일 있겠나 싶어 괜찮다는 말을 하면 그냥 넘어갔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수련회 일정이 잡혔다. 다들 가서 받을 훈련이 걱정됐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안 하고 놀러 간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수련회에 가서는 절친한 그 친구가 잘 보이지 않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수련회가 끝나고 다시 등교한 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내가 오면 조용해지는 것 같지?’ 시끄럽다가도 내가 나타나거나 다가가면 묘하게 조용해지면서 친구들이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었나?’ 싶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해 봤지만 크게 잘못했던 건 없었는데, 왜 이럴까 싶었다. 한동안 매일같이 함께 등교를 하던 친구도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며 하굣길에 먼저 쌩하니 가버렸고 등교를 할 때도 결국 혼자 가게 되었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나를 멀리하는 기분이 들었다.
시끄러운 교실 안에서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고 친구들과 같이 있지만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땐 몰랐지만, 그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었다.
며칠간 반복되는 이런 상황들과 기분을 가득 안고 침대에 누웠다. ”나 혹시 왕따 당하는 건가? “ 말로만 들어봤던 왕따의 실체가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계속 외면해왔는데, 외면할수록 더 짙어졌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나를 피하고 내가 말을 걸어도 무시하기 일쑤였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며 절망스럽게 한탄하기도 하고 자책도 심했다.
‘내가 못생겨서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거야.’
‘친구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했으니까 이렇게 됐지.’
나한테 모진 말들을 스스로 반복했다.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은 못생겨지고 점점 더 뚱뚱해 보이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밥도 적게 먹고 운동을 하는 데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보였을 뿐 실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 옆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버린 후 혼자가 된 나에게 절친이었던 친구가 다가왔다.
”오늘 우리 집 놀러 올래? “
”그래도 돼? “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해 주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전처럼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니 너무 고맙고 기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날 뻔했다. 방과 후 친구와 함께 친구 집으로 걸어가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친구를 보고 의아해서 질문을 했다.
”너는 나랑 같이 노는 거 괜찮아? “
”왜? 너랑 나는 절친이잖아. 같이 노는 게 어때서? “
”요즘 애들이 나 피하는 것 같아서... “
”신경 쓰지 마. 나랑 놀면 되지. “
다른 친구들은 신경 쓰지 말라는 친구의 말에 1학년 때처럼 둘이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집에 같이 가자며 말을 걸어왔고, 함께 집에 가게 되었다. 그 친구는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나에게 그동안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알려줬는데, 그 이유가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실 수련회 때 그 친구(절친)가 너에 대해서 험담을 하고 다녔어. 나도 그 말을 듣고 잠깐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멋대로 생각해서 미안했어. “
‘진심을 다해 좋아했던 친구가 나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고 망쳤구나.’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 ”나도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야. “ 화가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어서 죄 없는 베개를 연신 때리고 이불을 걷어찼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됐다. 수없이 자책하고, 울고 또 울었었는데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무얼 잘못했을까 매일 고민했는데 모든 일의 결론이 절친의 거짓말이었고 이기심이었다.
학교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와서 자리에 앉아 쉬는데 분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친구를 내 자리로 불렀다.
”너 도대체 왜 그런 거야? “ 도통 이해가 안 돼서 친구에게 물었다.
”뭐가? 무슨 말이야? “
”네가 나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 퍼트리고 다녔다면서. 다 들었어. “
친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땅만 쳐다봤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 더 쏘아붙였다.
”왜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서 친구들한테 말하고 다녔냐고. 정확하게 무슨 말 한 건지 이 자리에서 말해봐. 그게 사실이면 말해보라고! “
언성이 높아지자, 등하교를 같이 하는 친구와 초반에 친해졌었던 친구들 몇 명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너 그때 했던 말 거짓말이었어? “ 그 친구들도 옆에서 거들었다.
”당당하면 말해보라니까? “ 몇 번을 물어도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땅을 쳐다보며 눈만 꿈뻑일 뿐이었다. 주변에 다른 친구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나 스스로에게 말하듯 친구들 앞에서 외쳤다.
”나 나쁜 짓 한 적도 없고 잘못한 적 없어. 앞으론 나에 대해서 소문내고 다니지 마. “
그러자 친구는 나에게만 들릴듯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가 먼저 배신했잖아. “
그 친구는 내가 자신의 절친이고, 나에게도 자기가 제일 친한 친구여야 하는데 내가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고 어울리는 것이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수련회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느라 잘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그렇게 그날의 소동은 끝이 났다. 나는 그 뒤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고,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와 같이 다니는 듯하더니 전학을 갔다.
내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이 나에게 닥쳐왔을 때 방구석에서 울기만 하고, 자책하며 하루를 버리는 나날들이 많았었다. 호구가 되기 싫었는데 결국 호구가 되어버린 내 모습에 화가 나고 질리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참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 ‘누구한테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거야.’라고 마음에 문장을 새겨 넣었다.
착한 아이는 사라졌고, 나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거절을 하지 못해 쩔쩔매던 모습이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말투도 달라졌다. 남들에게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이제는 욕을 쓰기 시작했고, 내 문장 안에는 항상 욕이 들어있었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욕을 쓰는 내가 재밌다며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왜인지 전보다 강해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욕이 습관이 되어갔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혹시 오늘 했던 욕이 너무 심했나?’
‘내가 착하지 않아서 친구들이 또 떠나지 않을까?’
쾌감과 동시에 불안함을 느꼈고, 내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참고 살아왔던 지난날들에 대한 감정의 분출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욕을 뱉어냈다. 친구들은 나중에 커서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을 하라고 하기도 했다. 이때는 그 말이 참 웃기고 ‘내가 멋진가?’ 라며 착각에 빠져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창피한 과거 중 하나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마주한 나는 화산처럼 터지는 나의 감정들을 주워 담지 못하고 전부 토해냈는데, 건강하지 못한 잘못된 방식이었다.
감정을 무작정 참는 것도 문제지만 필터 없이 쏟아내는 것도 참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떠오른 감정에 취하기보단 감정의 길을 따라서 돌아가 봐야 한다.
”감정의 길을 따라가 본다는 건,
지금 화가 난 이유 뒤에 숨어있는 외로움 혹은 서운함 같은 것들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
이때 가장 좋은 것이 글로 남기는 것인데, 보이지 않는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으니 좀 더 직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글‘씨’를 남기는 거다. 굳이 매일 같이 일기장에 일기를 쓰지 않고도 핸드폰 메모장 하나면 충분하다. 직접 수기로 쓰는 것을 선호한다면 작은 수첩 하나를 마련하면 좋다.
욕을 하며 시원해졌던 속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보다 더 답답해짐을 느꼈던 나는, 그때부터 쓰는 것으로 답답함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공책 하나를 올려놓고 TV를 볼 때, 게임을 할 때, 만화책을 빌려와 읽으면서도 무슨 중요한 정보를 접하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전부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공책 들은 책장을 하나 둘 채우다가 자리가 부족할 지경에 이르렀다. 쓰기만 하지는 않았다. 내가 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중요한 내용은 한 번 더 새기고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 재밌었다. 공책이 쌓여갈수록 날뛰던 내 마음의 진동도 점차 작아졌고 더 일부러 사용하던 욕도 줄었다.
”말로는 해결되지 않던 마음을, 종이에 적으니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