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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병마와 싸우는 틀니]

 여느때와 다름없이 저는 터벅 터벅 치과 진료 의자를 향해 걸어갑니다. 기다리시는 할아버지의 뒷 목이 보입니다. 잠시 멈춰섭니다. 항암 치료를 하시는 할아버지의 뒷 목. 털모자를 쓰신 걸 보니 아마도 강한 방사선 치료로 머리가 빠지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의 손목 만큼이나 가늘어져 있는 할아버지의 뒷 목. 만감이 교차합니다. 여윈 목에 주름도 잔뜩 날이 서 있고, 저 목을 통해 잘게 부수어진 음식들이 잘 내려가 주어야 할 텐데, 이가 서너개 밖에 안남으셨으니, 덩어리째로 흘러넘어가겠지요. 소화가 더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간병을 하시는 아내. 미소가 고운 할머니께서 서 계십니다.



“내가 지금 당장에 먹는게 너무 힘든데! 틀니를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지! 안그래요, 원장님?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빨리 해 주소!”


 작년에 오셨을때는 만 75세가 되지 않으셔서 보험혜택으로 틀니를 만들수 없는 상황이셨던 분입니다. '조금 몇달 기다리시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나중에 다시 오세요.. 치아가 조금은 있으니 아직은 조금 씹히시죠?'

마침 남은 이도 부러지셔서 다시 오셨네요. 그간 입원하셔서 못나오셨답니다. 이제 보험 혜택이 가능합니다. 참 다행이지요. 비용이 절반정도 덜 들게 되었습니다.


 말기 간암. 말기 간암은 저의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저의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도 붙여진 병명입니다. 그래서 묘한 기분이 듭니다. 고약한 식도계통의 암은 급기야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큰 형벌입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 금술도 좋으셔서 참으로 다정하십니다. 티비에서 혹세무민하는 항암 건강식과 기타의 정보를 들으면, 부리나케 그것을 서로 챙기시고, 다독여 주신답니다. 그 정성에라도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님께서는 길고 긴 간병의 시간에도 고운 미소가 일그러지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입안에 남아있는 치아가 서너개 밖에는 없으니, 할아버지는 씹기가 당연히 불편하십니다. 그래도 잘 드시고 싶은 욕구가 있으시고, 생에의 의지가 있으신 모습에 제 마음도 좀 위로가 됩니다. 자포자기하는 표정과 심정으로 먹구름처럼 어두워져있는 표정의 항암 치료를 받고계신 환자분을 볼 때면, “요즘 의술이 많이 발달했으니, 좋아지실 겁니다. 힘내세요.” 라고 말을 하면서도,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께 했던 거짓말의 반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말 끝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전 어떤 라디오 방송 강의를 듣는데, 오십이 넘은 남자 진행자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아버지 제사 전날, 제가 꿈을 꾸었어요. 아버지께서 산 위에서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셨죠. 그래서 온 가족이 산 위에 모였어요. 그런데 큰 누님이 산위의 식사자리에 안 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아들아, 내가 산 아래에 내려가서 너의 큰누이를 데리고 와야겠다 기다려라.’ 하셨어요. 저는 내려가려는 아버지를 말렸죠. 하지만 막무가내였어요. 그래서 내려가시라 했죠. 그리고는 꿈에서 깨었어요. 그리고 다음날 제사를 지내고 형제간에 같이 밥을 먹는데, 큰 누님이 식사하면서 이러는 거에요. ‘얘, 내가 어제 밤에 꿈을 꾸었거든. 그런데 꿈에서, 아버지가 산 위에서 다같이 가족이 밥을 먹자고 했는데, 내가 그만 늦은거야. 그래서 꿈에서 아이구 늦었구나.. 하면서 부리나케 산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아버님이 나를 마중하려 내려오시더라구. 그런 꿈을 꾸었어.’ 그래서 제사 후 식사자리가 조금 숙연해 졌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저 저의 어머니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게 제 속마음이 편합니다.

 

 “할머니, 할머님이 간병하시느라 고생이시죠. 너무 애쓰시죠. 최대한 일정을 빠르게 해보겠습니다.” 해드릴게 없어서 손을 잡아드렸더니, 손이 따뜻하십니다. 제 손을 아주 힘있게 강하게 잡으셔서 건강은 좋으시구나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구, 원장님, 너무 무리하게 하면 안되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새로 만든 틀니로 또 당분간은 적응하느라고 힘드실텐데, 또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의 새로운 짜증과 푸념이 더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 그래도 이렇게 간병을 잘 해주시는 할머님과 일평생 사셨으니, 정말 장가는 잘 가신 거 같아요. 그쵸?”


“암! 내가 장개는 잘 갔어! 이런 사람이 어딨겠어? 고맙지! 암! 고맙고 말고!”


할머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투박한 제 아버지는 평생 살가운 표현을 어머님께 못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자, 그것에 어머니께서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저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 감사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최선을 다해서 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더 신경써 드릴께요.”


이젠 저도 이런 말을 다정하게 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되었습니다.


새싹이 돋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지요. 할아버지의 몸에도 기적처럼 봄의 기운이 스며들어, 10년정도라도 기분 좋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예전에는 살 날이 얼마남지 않으신 분이 틀니를 만들러 오시면, 조심스레 그분의 아드님에게 그냥 쓰던 걸로 충분하니 새로 만들지 마시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새 신발 신고 기분이 좋은 것처럼 좀 한번이라도 즐거우시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신은 저물어가지만, 치아라도 남보기에 건강한 혈색으로 보인다면 좀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 예쁘게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씹히는 틀니라도, 주인이 사라지면 정성스레 만든 맞춤 틀니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주인은 사라지고, 광이 번쩍번쩍나는 새 틀니만 덩그러니 세상에 남는 일이 없게, 할아버지께서 좋은 컨디션으로10년만 더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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