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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질서 속 질서 Aug 24. 2024

당신의 결혼생활은 안녕하신가요 - 부부의 세계

각자의 삶의 무게에 평행선을 달리다

“당신의 행동이 이해가진 않지만, 어떤 입장인지는 알겠어.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우리 둘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힐 생각은 없네. 나도 더이상 내 입장을 설득하려 하지 않을게. 우리 그만하자.”


슬펐다. 서로가 부러질 듯이 팽팽하게 맞서며 조금도 입장을 양보할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마음 보다는 내가 남편과의 대화를 포기한 이 순간이 너무 슬펐다.


우리의 인연은 올해로 6년차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해오며, 소소한 투닥임은 있었지만 곧잘 풀었고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행복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남편은 내게 꼭 맞는 ‘my other half’라 믿어왔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했고, 의견 차이가 생길때면 늘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대해 충분히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중간 지점을 찾아왔다.


결혼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도 많았지만, 우리는 연애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이 주는 안정감이 더해져 더 만족스러웠고, 독립적인 우리의 가정을 함께 잘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산 후에도 엄마라는 든든한 지원군 덕분에 나는 육아휴직 없이 바로 복직할 수 있었고, 쉽진 않았지만 ‘일’과 ‘가정’이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어 가고 있다고 믿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지방 발령을 받고 주말에도 격주로 출근하게 되었고, 사정상 엄마의 도움 마저 사라지면서 우리의 일상은 파도에 휩쓸려 무너진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엄마가 안 계신 첫 3개월은 남편의 육아기 단축근무와 나의 탄력근무로 어떻게든 돌려 막아가며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기 위해 열심히 일상을 살았다. 정확히는 겨우 일상을 ‘돌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서로의 배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시 쌓아 올린 모래성이 견고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면 금새 다시 무너지는 모래성일 뿐이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언제까지 파도에 흩어지는 모래성을 쌓으며 살 순 없었다.


지방 발령을 받은 작년 초부터 남편은 출퇴근에 매일 4시간 이상을 쓰고있었다. 체력적으로 지쳐가던 중이라 ‘이사’도 고려했지만, 아이의 새로운 어린이집 이동과 적응이 우리 부부에게 꽤나 큰 고민이라 이사는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슬아슬 맞벌이 생활을 이어가던 우리에게 변화를 만들 트리거(trigger)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의 장기 출장 직전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갑작스레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이집 또한 누군가에게는 직장일텐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너무 힘들어 인수인계 기간도 없이 며칠 뒤 바로 그만두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선생님”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마음 고생을 이해하면서도 육아에 있어 든든했던 또 하나의 존재가 없어지는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선생님과 정이 많이 들어버린 아이 걱정으로 막막한 마음이 드는 그 찰나의 순간, 나의 대문자 T 기질이 머리 속을 번쩍 스쳐갔다.


‘더 이상 이사를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네? 우리에게 변화를 줄 시기가 바로 지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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