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미생(未生) 입니까?
3화: 어린이집 적응기 - 낯선환경 속 새로운 시작 1
가장 큰 걱정 요인에 변화가 생기며, 우리 가족이 더 이상 이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다.
이때다 싶으면 또 실행력 하나는 기가 막힌 ‘나’이기에 빠르게 이사 갈 곳의 전셋집과 어린이집을 알아보았다. 저출산 국가로 정부에서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긴 하나, 동네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1년을 대기해도 대기번호는 여전히 뒷자리에 머물러 입소가 어렵다. 역시나 이사 가려는 지역의 어린이집 6곳에 전화를 돌린 끝에야, 민간 어린이집 한 곳과 가정 어린이집 한 곳에 겨우 자리를 알아냈다. 상담 후, 더 믿음이 가는 민간 어린이집으로 대기를 걸었다. 촉박한 시간 속에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대기 신청까지 마치니 정신없이 하루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래도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어 너무 다행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느낀 건, 아이와 관련된 전반적인 ‘기획 노동(계획 수립, 정보수집)’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조직을 예로 들어보자면, 핵심부서의 관리자들이 기업의 전략과 목표를 반영해 로드맵을 세우고, 구성원 또는 아웃소싱을 통해 팀의 세부 계획들을 실행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집안일이나 아이 돌봄은 부부가 나누거나 외주(가사도우미)를 맡길 수 있지만, 가족과 아이의 생활 전반에 대한 계획을 구상하는 것은 외부에 맡길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중요한 일을 조직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지만, 가정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노력과 그로 인한 부담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생색내지 않는 이상 누가 알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워킹맘의 95%가 퇴사를 고민했다는 통계가 이러한 고충을 대변하는 것 아닐까?
아이 있는 가정이 별다른 문제없이 일상이 돌아가고 있다면, 그게 남편이든 아내든 가정 내에 기획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기획자가 내가 아니다 싶으면, 배우자에게 중간중간 고마움의 표현을 꼭 해주자.
그렇게 우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사와 아이의 첫 어린이집 전원을 준비했다. 아이의 어린이집 방학시기에 이삿날과 나의 육아휴직 일정을 맞추며 ‘정말 기가 막히게 일정 잘 짰네. 애썼다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잠시나마 뿌듯했다. 그리고 이번 이사의 큰 목적인 남편의 출퇴근 시간 단축도 남편의 피로함을 덜어줄 수 있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사 후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생각보다 더딘 아이의 적응 과정이라는 태풍을 나 홀로 맞으며 체력뿐 아니라 정신까지 지쳐버렸다.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빈 집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