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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질서 속 질서 Aug 26. 2024

엄마도 개인시간이 필요해

어서 와, 타임푸어는 처음이지?

“네, 지금 바로 하늘이 데리러 가겠습니다”


원장 선생님과의 전화를 급히 끊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린이집으로 가는 동안, 괜한 내 욕심 때문에 순탄할 수 있는 아이의 적응 과정에 안 좋은 영향을 준 건 아닐까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부모가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더라도, 결국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의 하루와 감정을 제3자에게 전해 듣던 ‘워킹맘’이었을 때와는 달리 아이의 모든 감정 변화를 가까이서 직접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마음에 그날 이후, 당장의 편안함보다는 아이가 정서적 적응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 아이와 나는 매일 아침 9시에 등원하고 12시에 하원하는 일과를 반복했다. 아이는 엄마와 노는 걸 좋아해 낮잠도 잘 자지 않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삿짐을 정리하고 집안일을 해내다 보면 개인 시간이란 건 거의 없었다. 첫 2주 동안은 아이가 이렇게 엄마와 하루종일 함께하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많겠냐는 생각에 나들이도 가고, 새로운 집이 편해질 수 있도록 집에서도 다양한 놀이를 하며 꽉 찬 하루를 보냈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을 너무 좋아하는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평소와 달리 아프고 컨디션도 출렁였기에, 종일 육아는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몇몇 날들은 유독 힘들었다.


28개월이 된 아이는 기특하게도 이제 부모의 말을 생각보다 많이 이해하고 같이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마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직장 동료와 일어나자 마자부터 저녁 잠들기 전까지 밀착 생활을 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이 직장동료는 올빼미형인 나와 달리, 새벽 6시면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3주를 넘어가자, 내 마음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가득 찬 물컵 같았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피로함과 지친 마음이 누적되어 나의 상태는 물이 끝까지 찰랑찰랑 차있는 컵과 같았다. 이미 물이 찰랑거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가 몸이 아파 유난히 짜증이 심한 날에는 아이가 울 때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서 말이다.


4주 차가 되자, 정말 이러다 우울증이 올 것 같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낮잠을 자게 되어야 나도 개인시간을 가지며 재충전할 수 있을텐데, 생각보다 적응기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쓰며 이제 막 ‘괜찮은 엄마’로서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 상황에 나 역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25일째가 되던 날, 나는 강남의 한 안과에서 라섹 수술 경과 검진이 있었다. 예약 당시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다녀올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12시에 하원한 아이를 맡길 곳은 없었기에 올림픽 대로가 꽉 막혀있는 날, 집에 있겠다는 아이를 겨우 설득하여 예약시간에 30분이 늦어 도착했다.


“혹시 잠을 잘 못 주무시나요? 며칠 밤샌 사람 눈상태라, 눈이 너무 건조해 상처가 나있어요” 안과 선생님이 말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보며 “어려우시겠지만 충분히 주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검진을 끝내고, 아이를 태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히는 올림픽 대로는 아이에게는 너무 답답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출발 후 5분이 지나자, 아이는 카시트가 불편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40분간 울어댔다. 그날은 아침부터 어린이집이 가기 싫다며 울면서 시작하였기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집에 가면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잠시 맡겨두고 혼자 조용히 어디 가서 울면서 마음을 삭힐 작정이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을 버텨 집에 도착했다. 남편은 없었다. ‘차가 막히나?’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남편이 말했다.


“오늘 야근이라 9시쯤 집에 도착할 것 같아. 카톡 보냈는데 못 봤어?”


그 순간 꾹꾹 눌러뒀던 감정이 터졌다. 나도 회사 생활을 하던 사람이라, 갑작스러운 야근이 있을 수 있다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누구를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 울고 있는 아이 옆에 주저앉아 나도 울었다. 잠시 후,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빠 나 내일은 하루 쉴게”


갑자기 연차 쓰는 게 불편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오늘과 같은 하루가 하루라도 더 반복된다면, 나의 지친 감정은 결국 아무 죄가 없는 아이에게 튈 것 같았다.


이건 남편에게 보내는 나의 SO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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