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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질서 속 질서 Aug 27. 2024

워킹맘의 육아휴직 적응기

타임푸어 엄마, 자체휴업을 선언하다

내가 기대했던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 일정이 지나가면서, 그날만을 바라보며 견뎌온 나의 지친 체력과 감정이 더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보통 이런 감정들은 일시적이라는 걸 알기에 매몰된 환경에서만 벗어나면 다시 빠르게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육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대부분이라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는 적시에 해소되지 못했고, 이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치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지친 일상이 남편의 공감과 응원으로 잠시 잠재워질 수 있을까하여 지난 주말 둘만의 시간을 잠깐 가졌으나, 남편 또한 회사 생활에 지쳐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위로하기 보다는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각자의 스트레스에 묻혀 팽팽한 평행선을 걷는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거나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할 의지 조차 없어 보였다. 어느 한쪽의 잘잘못이 아닌 그냥 우리의 상황이 그랬고, 나는 더 무기력함을 느꼈다.


지난 주말의 대화에서 깜빡이를 켜긴 했지만, 갑작스런 ‘하루 휴식’ 통보는 남편에게는 일방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다음 날 별다른 말 없이 연차를 쓰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주었다. 나와 함께 한지 벌써 6년차에 접어든 남편은 ‘이제 그만하자’라는 지난 주말의 대화와 갑작스러운 휴식 선언을 통해 아내가 지금 평소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어제 아이와 함께 울면서도, 엄마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우는 것이 아이 정서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강제로 울음을 멈추려던 찰나, 작년에 우연히 본 영상이 불현듯 떠올랐다. 유리컵에 들어간 흙을 인생에 비유하는 영상이었는데, 인생의 힘든 순간들인 ‘흙’을 퍼내려는 노력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흙을 없애려 애쓰기보다는 깨끗한 물을 흙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부어주는 것이 가장 효율 적일거라고.


이 순간 마저도 아이의 정서적 성장을 걱정하고 흙탕물 영상을 떠올리며 다음 행동을 계획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TJ형 인간’인가보다.


최근 한달간 힘든 마음이 생길때면 애써 부정하며 그 감정들을 덜어내는데 애를 쓰다 실패한 ‘TJ형 인간’은 그렇게 갑자기 다시 좋은 에너지를 넣기 위한 하루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하루 만에 나의 감정 컵을 완전히 맑게 할 수는 없겠지만, 이 하루는 CPR 필요했던 나에게는 골든 타임이었다. 일단 사람부터 살려두고, 어떻게 더 잘 살아갈지는 천천히 고민하기로 했다.


짧은 하루이긴 했지만, 잠시 매몰되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조용한 공간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휘몰아치는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지쳤던 나의 마음을 들어주고 보듬어주니 다시 좋은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곧 아이가 낮잠을 자고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시기가 올 것이고, ‘육아’로 무게중심을 옮겨 가면서도 틈틈히 개인시간을 가지며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정리할 시간이 생길 것이다.


흙탕물 같던 내 감정들이 조금은 맑아진 상태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늦지않게 돌아갔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다른날과 달리 육아에 지치지 않아서인지 나는 아이를 재우고나서 읽다만 책을 마저 읽고 싶었다. 가방 쪽으로 몸을 돌려가는데 마침 남편이 다가와 나를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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