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상황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어렵다
결혼 전에는 미디어에서 이혼의 사유로 자주 등장하는 ‘성격 차이’라는 표현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혼이라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분명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단순히 성격 차이라니? 나는 그것이 그저 남들에게 속속들이 말하기 부끄러워 돌려 말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 때나 결혼 후에도 나는 ‘(서로 다르지만) 정말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해서 너무 행복하다’라며 살아왔기에 여전히 그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이제는 그 ‘성격 차이’라는 그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그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인간관계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갈등을 풀 수 있는 그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몇 배를 더 노력하지 않으면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누구 한 명이 피해자이거나 가해자가 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서로가 좋지 않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관계 회복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들 하지만, 골든타임에 적절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칼로 찢어진 감정의 골이 꽤나 깊어진다. 아마도 ‘성격 차이’는 아쉽게도 이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부부들의 이혼사유가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표현도 잘했었지만 아이가 생기며 일상에 지쳐서인지 표현이 줄어든 남편에게 그동안 ‘엎드려 절 받기’로 흘러가듯 표현을 듣는 것 또한 소통의 방식이라 스스로를 다독여왔다. 하지만 정말 힘들 때엔 엎드려 절 받고 싶지가 않다. 나가 찔러서가 아닌 정말 진심 어린 말 한마디 위로가 필요하다. 육아공백기를 메꾸기 위해 나도 큰 마음먹고 쓴 육아휴직이었고, 이사정리와 더딘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으로 나는 지금 한 달간 개인시간이 전혀 없어 많이 지쳐있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물었다.
“왜 엎드려 절 받는 건 고마움의 표현이 아닌 거야?”
더 이상 대화를 나누기 싫었다. 질척이며 설득하기도 싫었다. 그 한마디였다. 남편과의 대화를 포기하였던 게. 그렇게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나 홀로 외로이 골든타임에 CPR 한 그날 집에 돌아오니 남편도 ‘수고했다’라는 한마디를 얹어주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오랜만에 엎드려 절 받지 않는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완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위로가 되었다.
다음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이 아이와 동요를 들으며 대화하던 중 말했다.
“하늘아, 아빠 오늘 ‘문어의 꿈’ 한 시간 동안 반복재생하고 왔어!”
문어의 꿈은 아이들 동료라기엔 꽤나 심오한 가사라 마치 지친 어른들을 위한 노래에 더 가깝다. 아이를 키우며 우연히 알게 된 노래인데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롭고 무서워 매일 밤하늘을 날아 ‘오색찬란 문어가 되는 꿈’을 꾸는 문어의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을 울렸기에 한 시간 동안이나 반복해서 듣고 왔을까. 평소 개복치인 나와달리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스타일인 남편은 출퇴근시간에는 아이돌 노래만 즐겨 듣는 아저씨인 걸 알기에, 귀여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얼마나 마음을 울렸길래 그렇게 한 시간을 듣고 왔대. 아빠 외로워?”
나는 무심한 듯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동안 맞벌이 기간에도 남편을 배려하며 집안일이며 아이의 생활은 대부분 내가 챙겨 온 나지만, 엊그제까지만 해도 우리의 갈등은 극에 달해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남편의 마음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날 작은 위로를 받아서인지 보고 싶지 않던 남편의 마음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루를 보냈다.
결혼생활의 최대 갈등 시기에 우리 부부는 다행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