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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질서 속 질서 Sep 03. 2024

워킹맘이 된 꿈 많은 소녀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

어릴 때부터 나는 늘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부모님이 이끌어주는 삶보다는 내가 주도적으로 그려가는 삶을 선택해 왔다. 누가 뭐라 하건 내가 마음 가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생 때까지는 내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언제나 ‘방향’이었기에, 꿈과 목표가 뚜렷했고 에너지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꿈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속한 조직에 적응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니 그 외의 삶에서 방향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회사가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다. 회사 생활에서는 어떻게 보면 방향은 다들 비슷비슷하였기에 ‘속도’를 우선순위로 살았다.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많이 성장했지만, 결국은 큰 틀에서 쳇바퀴 같은 하루를 살았다.


쳇바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나는 ‘노동’과 ‘노력’의 가치를 경시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이 YOLO 시대라는 큰 파도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노력의 가치를 믿는 사람에 가깝다. 10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2명의 매니저에게 완벽주의 성향이 있냐는 피드백을 들을 정도로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왔고, 그 덕분에 또래보다 빠른 승진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뿌듯함은 순간일 뿐, 두 번의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는 스스로 완벽주의자라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나는 시키는 일을 꾸역꾸역 마감기한에 맞춰 최선을 다해놓고서는 나는 빨리 가고 싶지 않은데 왜 내 레벨에 맞지 않는 일까지 하며 허덕여야 하는 거냐며 늘 투덜이 곤 했다. 사실 상대방은 그리 큰 기대하지 않고 한번 시켜본 일을 굳이 다 해놓은 것은 나인데 말이다. 결국 성격상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속도를 낸 것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느꼈다. 나는 지금 ‘뚜렷한 목적지 없이 달리는 자동차’라는 것을.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무대에서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것 같다. 회사에서는 속도를 내야 하고, 가정에서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처럼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틈은 없었다.


물론 사람 기질이라는 것은 잘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여느 K-직장인이 그렇듯 나는 가슴속에 ‘나 퇴사할 거야’, ‘나 유튜브 할 거야’라는 꿈을 가지며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중간중간 부지런히 사부작댔다.


“넌 하고 싶은 게 많아 좋-겠다”

내가 매번 새로운 걸 시작할 때마다 남편이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하는 사람이 장비라는 장비는 다 사고 시작한다. 한국인은 장비빨 아닌가. 그때마다 남편은 빈정대듯 말하지만 츤데레 같이 웹툰작가가 되겠다는 나에게 아이패드와 펜슬을, 유튜버가 되겠다는 나에게도 스마트폰 거치 삼각대를 툭 주며 늘 응원해 줬다. 하지만 나의 대부분의 에너지는 회사에서 이미 소진이 되었기에 이런 사부작댐은 오래가지 못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의 가장 큰 배움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서 완벽주의자의 끝은 번아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쉬어야 할 때 마저 노력한 자의 최후.


인생은 마라톤. 이 진부한 구절이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 깊은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는 평생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알기에,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니까.


나의 육아휴직은 ‘육아 공백’을 채우는 것도 있지만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쓴 1년이기에, 생각보다 길어지는 아이의 적응과 속절없이 지나가버리는 한 달이라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 같다. 그동안 나의 내면 깊숙한 저 어딘가에 구겨져 들어가 있던 ‘꿈 많던 소녀’에게 ‘그래 1년간은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봐’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까.


단순히 워킹맘의 고민처럼 보이는 이 시기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된다. 33년간 내가 해온 선택들의 조합인 지금의 내 인생이 나는 좋다. 늘 꽤 열심히 사는 나이기에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도 꽤 만족스러웠으면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이 여정의 끝을 나는 아직 모른다. 과연 워킹맘의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이 인생 전환점이 될지, 아닐지. 다만, 내 인생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나는 진부하지만, 뻔한 해피엔딩이 좋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한 삶을 위해 계속 고민하며 울고, 웃고, 미워하고 풀고 또 사랑하며 살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웃고 있는 삶을 기대한다.


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나와 비슷한 결의 고민을 하는 워킹맘, 전업맘, 육아대디, K-직장인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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