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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질서 속 질서 Sep 03. 2024

어린이집 적응기 - 낯선 환경 속 새로운 시작 (2)

당신은 미생(未生) 입니까?

이사 후 나는 ‘아이의 적응’에만 집중했었지, 출산 직후 지금까지 혼자서 full-time 육아를 해본 적이 없는 ‘나의 적응’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기존에 어린이집 경험이 있고, 적응을 잘했던 아이기에 1-2주 내에 잘 적응할 거라 띄엄띄엄 생각했다. 하지만 4주째가 되도록 아이는 낮잠 전 12시쯤 하원을 계속하였고, 개인시간이 전혀 없는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며 나는 지쳐갔다. 아이가 조금 더 빠르게 적응을 해주었다면, 나의 감정도 이렇게까지 지하 바닥을 뚫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 며칠 동안, 아이는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이 낯설기라도 한 듯 자신의 미끄럼틀 하나도 “엄마, 이거 우리거야? 이거 하늘이거 맞아?”라며 엄마, 아빠와 재차 확인을 하며 사용을 했다. 그런 새로운 공간에서 잠이 들기엔 어색한지 계속 밖에 나가자고 했다. 어른에게 ‘이사’는 삶의 일부만 바뀌는 일이지만, 이제 28개월이 된 아이에게는 집, 어린이집, 선생님, 친구, 거의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아이는 새로운 환경 적응하느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평소보다 자주 울고, 보채며, 엄마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덕분에 그동안 ‘워킹’에 더 치우쳐있던 내가 ‘맘’으로 인생의 무게 중심을 옮겨가며 ‘성장통’을 제대로 겪고 있었다.


휴직 첫 주는 이제 자기표현도 곧 잘하며 언어 소통이 되기 시작하는 아이와 교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아무래도 방학 기간이라 남편 퇴근 전까지는 개인시간이 전혀 없었지만, 동굴이 아니라 끝이 보이는 터널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아이와의 시간을 꽉 채워나갔다. 아이들은 너무 신기하게도 물리적인 시간과 애정을 쏟는 만큼 즉각적으로 느끼고, 또 그 사랑을 나눠준다. 남편의 육아기 단축 근무 동안 아빠와 가장 가까웠던 아이는 방학 이틀 만에 엄마와 절친이 되었다. 남편은 서운하다 말하면서도 아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존재에서 내심 숨통이 트이는지 남편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고,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이 귀여웠다. 개인시간이 전혀 없어 힘은 들었지만,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나면 그동안 떨어진 에너지는 그때 회복하자라며 나의 지친 체력과 마음은 잠시 모르는 척 밀어 넣었다.


등원 첫 두 날은 내가 함께 있어서 그런지 어린이집에서 1-2시간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에게 떨어져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도 어색하지만 탐색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했다. 그리고 셋째 날은 같이 놀다 점심시간에는 엄마 없이 혼자서도 식사를 시도해 보았는데 성공이었다! 세 번째 만에 작은 성공을 한 나와 담임 선생님은 자신감을 가지고 넷째 날에는 혼자 등원하고 낮잠까지 자보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심상치가 않다.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리는데, 그늘이 많은 산책로를 통해 가다 보니 새벽형 인간인 우리 아이에게는 잠깐 잠들기에도 딱 좋은 시간과 코스였다. 마침 그날은 아이가 잠을 설치며 새벽 4시 반부터 깨어 있었던 덕분에 등원 길 유모차에서 백색소음을 들으며 졸기 완벽한 조건이 되었다. 쎄한 느낌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단잠이 든 아이를 깨우자 역시나 엄마 곁을 떠나기 싫어하며 결국엔 울음을 터트렸다.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기우가 아니었다. 12시 반, 점심을 준비하던 중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하늘이가 낮잠을 자지 못하고 많이 울어서요. 어머님이 오늘 낮잠 재우라고 하셨나요?’


담임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 주셔서 낮잠을 시도한 것이지만, 내심 아이가 잘 적응하니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도 컸다. 그래서였을까, 큰일은 아니었지만 찔리는 마음에 전화를 받자마자 심장이 철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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