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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이들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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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Jan 06. 2022

아주 사소한 예의 (1)

제발, 미리 연락 좀 주세요

과외 선생은 사실 ‘보따리 장사꾼’이나 다름없다고들 말한다. 가방 하나 짊어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말로 돈을 벌고 있으니 말이다. 수업하는 것을 ‘장사’라고 표현하는 것이 지식 전달을 폄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어쨌든 말이 돈을 버는 수단인 것은 맞고 모든 직업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돈이 맞으니 우리들은 장사꾼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돈만 목적으로 해서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지식 전달만 해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고 상담도 해 주면서, 수업 시간 외에도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이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10대 후반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도움을 준다는 사명감과 보람이 있기 때문에 나 역시 20년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일을 오래 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이들을 그저 돈벌이 상대로만 여기는 이들은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하는 매 순간은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아이들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더럽고 치사한 시간들이 될 수밖에 없다. 더러는 그게 싫어서 자신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분풀이하듯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여전히 이 일은 ‘돈’이 아니라 ‘관계’가 바탕에 깔린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오래, 긍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선생들이 있듯, 학부모들 역시 우리를 ‘돈 주고 부리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고용인’이라 여기는 것이다.


수업 5분 전에 취소 문자


수업 취소는 가능하면 안 하는 게 좋지만, 부득이하게 수업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갑자기 장염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한다던가, 집안의 누군가가 돌아가시거나 편찮으신 경우, 또는 수행평가 때문에 급하게 팀별로 과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들 말이다. 며칠 전에 알았다면 그때 알리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몰랐다 하더라도 하루 전에, 아니 그것도 힘들다면 최소 1시간 전에는 사유와 함께 수업이 어렵다고 알리는 것이 예의이다. 그런데 꼭 하필 수업 시간 직전마다 아파서 몸을 아예 운신할 수 없다는 아이들이 있다. 이건 100% 핑계이다. 뭐 게 중에는 진짜로 심각하게 아팠던 아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20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습관성 아픔’을 호소한 아이들 중, 진짜로 아팠던 아이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 언제든 상관없이, 늘 수업 시간 5분 전에 극도로 아프다며 수업을 취소시킨다. 집 앞에 찾아가 벨을 누르는 순간, 취소 문자가 오기도 한다. 기왕 취소하는 거, 기왕 수고스럽게 문자 누르는 김에 조금이라도 일찍 보내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들은 내가 벨을 누르기 전까지는 나와의 수업을 기억하지도 못했던 듯 꼭 그 순간에 문자를 보낸다. 그럼 수업 시간에 늦을까봐 그 이전의 시간들부터 서둘러 움직였던 나의 노력들은 일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리는 기분이다. 심지어 늦을까봐 택시까지 탄 날이면 그 분노는 더욱 극심해진다.


나는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의 훨씬 전부터 나는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고, 집을 나섰으며, 그들이 문자를 찍어 누르는 순간까지도 그 집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휴가 간 거 모르셨어요?


내가 20대 후반이던 어느 여름, 그땐 엄청난 무더위를 자랑하던 해였다. 원체 더위를 많이 타지 않았던 나도 이동 시간에 걸으면서 등줄기와 가슴골로 흐르는 땀을 선명하게 인지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기.


그날은 아파트 단지 끝에, 그것도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 동으로 수업을 가는 날이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가며 크게 숨을 들이켰던 기억이 난다. 거기서 한참을 더 들어가고 들어가고 또 들어가서 올라가야 간신히 도착하는 그곳. 그러나 땀 범벅인 얼굴을 하고 현관 입구에서 벨을 눌렀을 때, 문도 열리지 않은 채 신경질적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만 나를 맞았다.


“누구예요, 아침부터!”

“네, 저는 석호 국어 선생님입니다.”


아침부터 귀찮게 찾아오는 잡상인 취급인 것도 억울한데 아주머니는 “선생이요? 웬 선생?”이라는 말로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이 집 식구들 여름 휴가 갔어요, 어제. 얘기 못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애들 없어요.”


아주머니는 내가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 인터폰을 뚝 끊어버렸다. 세상에나, 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깜박 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급한 약속이 생기거나 아픈 것도 아니고 휴가라니!! 전날엔 수업 시간 확인을 요청하는 문자도 보냈고, 당일 아침 출발 전에도 연락을 했던 나인데. 하지만 그 어떤 문자에도 응답은 없었다. 그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던 건가 보다. 이건 순전히 눈치 없고 둔한 나의 잘못, 이 아니라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그 가족의 잘못이었다.


오전 8시 30분 수업이라 아침도 못 먹고 부랴부랴 달려왔던 나는 갑자기 급격한 허기를 느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없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간신히 24시간 영업하는 김밥집을 하나 발견했다. 들어서는 순간 화, 하게 나를 맞이하는 에어컨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거울 속 내 몰골은 너무도 처참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그 위엔 땀에 범벅이 된 머리카락들이 제 멋대로 붙어 있었다. 제일 싼 김밥으로 그냥 끼니만 때울 생각에 들어간 식당이었는데, 내 꼴을 보고 나니 이대로 김밥만 먹으면 너무 비참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거기서 제일 비싼 스페셜 정식을 시켰다. 돈가스도 있고, 쫄면과 김밥도 나오는 나만의 조촐한 뷔페식 식사. 나라도 나에게 귀한 대접을 해주고 싶었던 날이다. 다행히 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휴가 준비로 너무 바빠서 깜박하셨나? 아니면 과외를 너무 많이 해서 수많은 선생님들께 일일이 문자를 보내다 나를 잊으셨나?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 학부모를 이해해 보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해 봤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납득은 되지 않았다. 매주 2번씩 2시간 동안 수업을 하고,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이후에 학생의 어머님은 사과의 말씀을 하긴 하셨지만 그저 형식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수업 약속을 잡고, 아이를 부탁하고 긴 시간 상담도 하셨다. 나도 그에 맞춰 아무 일 없었던 듯, 마치 그날 나는 그 집에 가지도 않았던 듯 행동하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학부모님께 정중하게라도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된다. 이제는 싫은 소리나, 민망한 이야기도 웃으면서 매끄럽게 할 수 있는 요령이 생겼지만, 아마도 그땐 어려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더 나의 감정을 감췄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 이후로 한 가지 분명하게 결심한 것은 누군가 나에게 예의없이 대하면, 나라도 스스로에게 예의를 지켜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남에게 귀하게 보이고,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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