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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이들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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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Oct 17. 2023

혼자가 될 각오를 하라는 말

-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

중학교 1학년 형식이는 조금 아기 같은 친구다. 삼남매 중 막내인데, 나는 형식이의 누나와 형을 가르치면서 집에서 마주치는 형식이와 계속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말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마다 느낀 건 목소리나 말투가 아이 같고 몸짓이나 표정에 애교가 배어 있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누나, 형과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탓에 집에서 사랑을 많이 받아서일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형식이와 본격적으로 수업을 하면서부터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막내여서 갖고 있는 특유의 아이 같은 면뿐만 아니라, 수업 자체에 대한 집중도나 산만함이 여느 아이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라면 형식이는 유치원생의 느낌이 났다. 수업을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고, 수업 내용과 별도로 형식이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늘 안달이 나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다 해야 다음 수업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수업 중간에도 몇 번이고 아이를 다시 수업으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친구들과도 그리 썩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닌 것 같았고, 겁이 많으면서도 무서운 이야기에 집착하는 등 자극 추구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우리아이처럼 형식이 역시 ADHD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충동성이나 자극 추구의 모습이 매우 닮아 있었고, 사회성도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님도 그걸 느끼셨는지 대학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아 보셨다고 한다. 그러나 ADHD는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학교에서 실시한 기질 검사가 있었다. 당시 나왔던 결과를 읽어 보니, 사회성뿐 아니라 남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와 있었고 회피 성향이 강하게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가 수업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이 거기 그대로 적혀 있었다. 무언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맞닥뜨리는 걸 형식이는 힘들어 한다. 그래서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나왔을 때 다른 이야기를 꺼내거나, 엉뚱한 행동을 함으로써 분위기를 바꾸려는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학교에서 수행 평가나 시험을 본다고 해도 그것을 절대 나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다. 미리 말해서 준비를 하는 괴로움보다 이것을 피할 수 있는 데까지는 피했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허둥지둥 대는 쪽을 택했던 셈이다.

  

어쨌든 ADHD가 아니었던 덕에 형식이는 따로 약을 먹거나 하진 않는 듯 했다. 그렇다고 심리 치료나 놀이 치료, 사회성 치료 같은 것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영어, 수학 등 학습을 위한 학원을 다닐 뿐이었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아 아기 같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어머니는 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으시는 듯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성장 주사를 맞으면서 형식이의 키가 눈에 띄게 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정도 키만 돼도 학교에서 생활할 때 작은 축에 속하진 않을 듯 했다.      



 

그런데 지난 주 수업을 할 때였다. 형식이는 눈가를 문지르면서 그곳이 너무 아파 수업을 하기 힘들다는 식으로 말했다. 겉으로 봤을 땐 멍이나 상처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형식이가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식이는 실제로 누군가에게 얼굴을 맞은 상태였다. 안경을 낀 상태에서 맞았으니 잘못하면 안경이 부러지거나 렌즈가 깨지면서 눈을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경위는 이러했다.


  쉬는 시간에 형식이와 친구가 팔싸움을 했다고 한다. 첫 판은 형식이가 이겼단다. 그러자 친구는 형식이가 몸의 무게로 눌러서 이기는 반칙을 했다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고 한 판 더 하자고 했다. 형식이는 당연히 또 자신이 이길 것을 예상하고 팔씨름을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두 번째 판에서도 자신이 이기려는 찰나였는데, 팔씨름을 하는 와중에 상대방 아이가 형식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안경이 날아갈 정도의 세기였다고 하니, 맞은 형식이도 얼떨떨하고 무척 아팠을 것이다.


  “그럼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넌 뭐라고 했니?”

  “전 그냥... 울었죠.”     


형식이가 우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형식이는 눈물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조금만 야단을 치거나, 형식이가 숙제를 안 해 온 것에 대해 형식이 어머님과 이야기만 나눠도 옆에 있는 형식이는 벌써 눈가가 붉어지고 촉촉이 눈물이 차오르곤 했다.      


  “울고 끝이었어? 니가 걔한테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어?”

  “하려고 했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서 말을 못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단박에 핑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은 맞으면 맞은 즉시 화가 나야 정상일 텐데 형식이는 남몰래 눈물만 흘렸던 것이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가 버렸겠지. 그래도 그 와중에 형식이는 자기의 편을 들어준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 그 애들이 뭐라고 했어?”

  “야, 얘 아파서 울잖아. 왜 애를 때려. 이렇게 말했어요.”      

  

흠... 그 내용을 보아 하니 왠지 형식이 편을 든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면서 같이 빈정거리고 놀린 듯한 뉘앙스다. 하지만 형식이는 그게 자신을 놀리는 멘트였다는 걸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냐고 묻자 형식이는 쉬는 시간이 끝나 버려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나의 느낌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형식이는 아마 쉬는 시간이 남아 있었어도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끼리 팔씨름을 하면서도 이렇게 때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가. 친구들끼리의 팔싸움이란 그냥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할 텐데 이렇게까지 승부에 집착을 한다고? 남자 아이들의 승부욕과 서열에 대한 집착이 이 정도인 건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형식이에게 그 상대방 아이가 친구가 맞는지 물었다. 역시 그 아이는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팔씨름을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형식이었다. 왜 팔씨름을 제안했는지 물어보자 형식이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할 게 없어서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할 게 없는데 왜 갑자기 팔씨름을 하자고 한 거지? 처음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보니 상황은 이러했다. 반에서 힘 좀 꽤나 쓴다는 아이들이 팔씨름 시합을 하고 있었단다. 구경을 해 볼까 하다가 너무나 승패가 뻔한 경기라서 구경은 하기 싫고 자기도 팔씨름을 해 보고 싶었단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아이들이 주변으로 몰려 들거나 자기를 보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에 자기보다 약하고 만만하다고 생각했던 아이에게 팔씨름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니 상대방 아이는 친구가 아니라 형식이가 평소에 만만하게 생각하고 조금은 무시하고 있던 아이였다. 그리고 그 아이도 팔씨름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문제는 그 상대방 아이도 형식이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둘은 서로에게 절대 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하필 그 아이에게 팔씨름을 제안했냐는 물음에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니까 그 애를 이겨서라도 서열이 올라가고 싶었다’라고 형식이는 답했었다. 그 상대방 아이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반 친구들에게 평소에 무시를 당했을 거고, 따라서 자기랑 비슷해 보이는 형식이에게 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첫 판에 지고 나니 그 아이는 성이 났겠지. 그래서 형식이가 무게로 눌렀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면서 두 번째 시합을 제안한 것이다. 형식이 입장에선 그 경기를 끝으로 더 나가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한 판을 이기고 나니 자신감이 붙어서 두 번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대 아이는 두 번째에서도 자기가 질 것 같으니 그 불안감에 주먹이 먼저 나가 버린 것이다.      

  

너무나 슬픈 사실은 서열이 올라가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이 시합은 결국 형식이가 울면서 마무리가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힘 센 아이들의 팔씨름을 구경하던 아이들까지 몰려 와서 형식이가 우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 반에서 형식이는 ‘팔씨름에 지고 우는 아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말았다. 앞으로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쉬는 시간에라도 왜 그 상대방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냐는 나의 물음에 형식이는 이런 대답을 했다.     


  “전 이상하게 학교에 가면 화가 나지 않아요.”

   

그러나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화를 표현하지 못할 뿐.

  

  “화가 안 나는 거야, 아니면 화를 못 내는 거야?”  


내가 다시 한 번 묻자 형식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화를 내면요, 애들이 짜증을 내요. 발로 차고요, 욕도 해요.”

  

그래서 형식이는 지금껏 학교에서 자기 감정을 표출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나 이해가 됐기 때문에 나는 마냥 형식이를 나무랄 수 없었다. 혹시라도 화를 내고 기분 상한 것을 표현했다가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모든 아이들이 나를 싫어하고 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내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가짐으로, 혼자가 될 것을 미리 상정하고 나서야 내 기분이 상했다고,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형식이는 그 각오를 하지 못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눈 뜨고 정신 차리자마자 가야 하는 학교 교실. 그 안에서 8시간 남짓을 보내야 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혼자일 각오를 해야 하다니. 아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형식이는 아이들에게 자꾸 다가가려는 유형인 것 같았다. 이번처럼 팔씨름을 하자고 하거나, 힘 겨루기를 하자고 하거나. 며칠 전에도 악력으로만 힘 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손톱이 긴 아이가 형식이의 손을 손톱으로 찍어 누르는 바람에 상처만 난 채 마무리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형식이는 힘으로 누군가와 대적할 만한 덩치나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들에게 자꾸 힘 겨루기를 제안했느냐고 묻자, 자기가 봤을 때 아이들은 대체로 ‘피구’ 아니면 ‘힘 겨루기’를 하면서 노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피구는 자기가 싫어하기 때문에 힘 겨루기를 하자고 했던 것이란다. 듣는 순간,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으나 그 핀트가 어긋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실의 분위기를 잘못 파악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이들 각자의 속사정이야 어떻든, 겉으로 봤을 때 형식이 눈에는 아이들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즐겁게 노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면 자신도 즐거울 거라고 기대를 했겠지. 하지만 그건 서열상 위에 있는 아이들의 ‘자기들만의 놀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외에도 형식이는 무서운 이야기를 해 주겠다, 마술을 보여주겠다 하면서 수업 시간 내내 이상한 행동들을 했다. 전혀 무섭지도, 웃기지도, 신기하지도 않은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형식이는 얘기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자기 혼자 빵빵 터진다. 혹시나 싶어 나는 이런 당부를 했다.

 

  “형식아, 너 이거 나중에라도 애들 앞에서는 하지 마.”

  

그러나 이미 애들 앞에서 보여줬던 것들이란다. 아이들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고 한다. 뭐야, 하면서 지나가거나 아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 아이들이 형식이에게 공통적으로 한 말은 ‘자꾸 개긴다’였다. 형식이는 그 ‘개긴다’는 말도 온전히 어떤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전 애들한테 개긴 적이 없어요. 근데 저보고 자꾸 개긴대요.”

  

형식이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누군가에게 덤비거나 반항하는 의미로 그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꾸 자기들에게 와서 이것저것 해 보자는 형식이에게 ‘자꾸 건드린다’는 의미로 말을 한 것이라 짐작했다. 이 단어 뜻마저도 서로 이해하는 의미가 다르니, 교실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분위기를 형식이가 아이들과 비슷한 눈으로 이해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형식아, 할 게 없으면 그렇게 자꾸 아이들한테 가서 건드리지 말고, 니 자리에서 니가 할 수 있는 걸 해.”

  

차라리 아무 말을 하지 않거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으면 형식이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만들어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식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혼자 있는 게 싫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힘 겨루기를 하고, 팔씨름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니 친구가 되진 않아. 그냥 그걸 하는 순간만 너의 상대가 될 뿐이야.”

  

학기 초에 학교에 돈을 많이 가져갔던 형식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돈으로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사 주면서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 예상할 수 있듯이 그렇게 곁에 남는 친구는 제대로 된 친구가 아니다. 역시, 그때 돈으로 이것저것 사줬을 떄 좋다고 받아간 아이들 중 지금 형식이의 옆에 남아 있는 친구는 없었다.      

 


 

내가 형식이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건,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어서만은 아니었다. 형식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눈치가 없는 특징을 두 아이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도 나중에 아이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될까봐, 그래서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질까봐 염려가 됐다.

 

우리 아이의 사회성 치료를 받으러 간 날, 사회성 선생님에게 형식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제대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건인지 확인받고 싶었다. 사회성 선생님 역시, 형식이가 마음만 가득하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기술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아이와 준이는 결이 다릅니다. 준이는 아이들을 먼저 건드리지 않아요. 자기에게 다가와 준 아이와 놀거나, 스리슬쩍 다가가죠. 그 아이와 비슷해질까봐 염려하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말에도 안심은 되지 않는다. 혼자서 자기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행동이 좋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니 자리에서 니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하라는 말도, 아이에겐 가능성을 깎아 버리는 말이 된다. 남편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이로 하여금 자기 세계로 천착하게 만들 수도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했다면 형식이가 얼굴을 맞고 우는 모습을 반 전체 아이들에게 보일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게 낫지 않는가. 친구들이 많진 않아도, 누가 와서 먼저 건드리는 일이라도 없다면 학교 생활이 비교적 덜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결이 비슷한 아이들을 만나 그런 아이들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고. 난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의 교실 분위기나 문화에 대해 잘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눈에 띄지 않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너무 무사안일주의인가.

  

겁이 많은 형식이는 오늘도 무서운 이야기 수집에 열을 올린다. 아이들에게 말해주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이야기도 형식이가 하면 하나도 무섭지 않다. 이야기를 말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무서워 하고, 웃긴 이야기를 할 때도 본인이 먼저 다 웃어 버리느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김이 빠진다. 진짜 이런 것도 ‘기술’인 것일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이것까지도 돈을 내고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성향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배운다고 아는 게 아니야. 그때 그 순간, 그곳의 분위기를 남이 일일이 알 순 없어. 결국은 본인이 파악해야 하는 거지.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몰라.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아마도 본인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그런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점점 영악하고 악독한 아이들이 많아지는 교실에서, 서열에 집착하는 남자 아이들의 무리에서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부터도 이렇게 갈대처럼 휘둘리며 방황을 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잘 지키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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