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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이들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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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Oct 20. 2023

차가운 아스팔트 위의 서열 정하기

- 서열에 집착하는 아이들과 무심한 어른들의 콜라보

정식으로 수업을 하기 전, 상담 차  만난 재웅이는 대뜸 나에게 주먹부터 보여 주었다. 재웅이의 주먹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주먹 마디마다 모두 뭉개진 채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매일매일 주먹으로 무언가를 내리친 자국. 꽤나 긴 시간 동안 그래 왔던 것인지 굳은살은 손때 묻은 흔적처럼 오래 돼 보였다.


그동안 아이가 읽었던 책과 아이가 적었던 글들을 놓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재웅이는 책의 제목도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한 부분만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사실 그게 아이가 기억하는 내용의 전부인 것 같았다. 중심 내용도, 중심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도 아니어서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냥 흘려버렸을 부분이었다. 책에는 늘 자기만 알던 이기적인 주인공이 자기 반 친구들을 괴롭히던 불량배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처음으로 다른 아이들을 위해 그 불량배를 혼내주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런데 재웅이는 주인공과 관련된 건 쏙 빼놓고 반 아이들을 괴롭히던 불랑배에게만 꽂혀 있었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면 피가 얼마나 나는지, 도끼로 사람을 찍으면 과연 죽을 수 있는지 아이는 물었다. 그런 질문을 듣던 초반에는 재웅이의 성격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아이와 계속 수업을 해도 될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폭력'으로 돌아가고 마는 대화의 진행 속에서 손에 난 흉터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그런 자국이 생긴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첫 만남이라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먼저 그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왜 이렇게 됐는지 아세요?”

  “왜 그런 건데?”

  “제가 학원에서요, 너무 화가 나서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친 거예요! 또 선생님한테 혼나긴 했지만요.”


쾅, 내리쳤다고 말하며 재웅이는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 듯 벌떡 일어나 자기 책상을 주먹으로 쾅 쳤다. 선생님께 혼났다는 말을 할 때에도 서운함과 억울함이 배어 있다.


  “왜 그렇게 화가 났었어?”

  “날 억울하게 하니까요.”

  “뭐가 억울했었는데?”

  “애들이 먼저 괴롭혀서 내가 대항했을 뿐인데, 선생님이 나만 혼내잖아요!”
 

  그 말을 하면서도 재웅이는 못 참겠다는 듯, 책상을 한 번 더 강하게 내리친다.


  “아이고, 재웅아. 그렇게 치면 손 아퍼. 책상도 아프겠다. 둘 다 다치니까 하지 마아.”


아이를 저지하며 잡은 손은 내 손 안에 쏙 들어올 만큼이나 작다. 재웅이는 그 손으로 책상이나 벽은 칠지언정, 누군가를 아프게 때려본 적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잡은 손을 빼내며 호기롭게 외쳤다.


  “저 이렇게 쳐도 안 아파요. 저 힘 세요!”


아이는 시시때때로 자기가 강하다는 것을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써 온 일기 속에서도 아이의 화가 느껴졌다. 이유 없이 자기를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의 기에 눌려,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한 채 매일의 시간이 쌓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 듯 했다. 그저 재웅이를 놀리거나 때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라고 말하는 것이 고작일 뿐. 그럼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빈정거리는 말투의 사과가 나오고 재웅이는 어쩔 수 없이 그 사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일기는 점점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으로 바뀌고 있었다. 자신의 사연을 길게 적어 놓고 ‘이래도 되는 건가요, 선생님? 이 아이들이 정말 옳은 건가요?’라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해 놓은 부분도 눈에 띄었다. 결국 일기를 선생님께 내면서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란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일기를 읽으셨는지 어쨌는지 응답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검사한 날짜가 적힌 도장이 하나, 무심하게 찍혀 있을 뿐이었다.




수업을 할수록 재웅이는 그닥 센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여리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예의를 지키려 애쓰며 기센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원하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나는 재웅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담은 이야기나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주로 책으로 읽혔다. 그 안에서 재웅이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악한 아이들을 물리치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다. 인물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누구보다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했다. 특히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약자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재웅이는 문을 열어 나를 맞이하자마자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다쳤어요.”   


자기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듯 말을 하긴 했지만 얼굴 표정은 꽤나 담담했다. 다친 것에 많이 익숙하다는 듯이.


알고 보니 평소 함께 지낸다던 두 세 명의 친구들을 비롯해 같은 반 아이들과 학원가 광장 한복판에서 싸움을 벌인 모양이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폭행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일명 ‘서열 정하기 대결’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며 눈치를 봐야했던 재웅이도 결국 이 대결에 동의를 했는데,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늘 자기가 이유 없이 당하는 것이 억울했던지라 어쩌면 이 참에 진짜 자기의 힘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싸움은 이미 수적으로 열세였다.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둘러싸고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재웅이는 일방적으로 맞아야 했다.


시멘트 바닥에 얼굴이 눌리고 긁히면서, 팔이 꺾인 재웅이는 20여분 간 이어진 일방적인 폭행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말았다. 평소 친구랍시고 함께 다녔던 아이들 두 명 중 한 명은 방관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상대 아이의 편이 되어 그를 응원했다고 한다.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서열 순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건가?


  “서열 1위를 가르는 거였어?”

  “아니요, 서열 2위요. 1위는 이미 어떤 애가 계속 차지하고 있어요. 그건 절대 안 바뀌어요.”


어차피 고만고만한 의미 없는 서열이었던 건데, 왜 그렇게 아이들은 치열하게 싸웠을까.


  “그냥 너 2위 해, 라고 하고 피하지 그랬어.”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그건 어른인 나의 시선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속한, 그들만의 사회에서는 어쩌면 그게 전부였을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럼 애들이 저 볼 때마다 너 00한테 발렸다며? 너 발렸다며? 이렇게 자꾸 건드린단 말이에요.”


가뜩이나 아이들의 이유 없는 무시와 놀림을 견뎌야 했는데, 그 꺼리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 아이는 싫었던 모양이다.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때린 아이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자 재웅이는 짐짓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냥 무시하라고, 너희들은 너희 갈 길 가라고 하면서 대꾸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런 말을 할 배짱이 있었다면 재웅이는 애초에 이 일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웅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무시당할 정도로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아이는 친구들과 낯 모르는 타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차가운 시멘트에 얼굴이 갈리고 고개가 꺾인 채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 어쩌면 서열 정하기는 그저 명분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때리기 위한 구실이 필요했을지도. 얼굴의 상처와 움직일 때마다 아픈 근육보다 아이를 더 힘들게 한 건 잘게 찢겨진 자존심과 무겁게 자신을 누르는 수치심, 그리고 믿었던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어떻게 그걸 보면서 그래, 주변에 말리는 어른이 하나 없었니? 그것들 나한테 걸렸으면 아주 죽었어.”


난 재웅이가 속상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해서 더 분노하며 말했다. 재웅인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도 버릇없는 아이가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없지! 난 공부 못하는 건 참아도 버릇없는 건 못 참거든.”

  “나 때린 애들이 선생님한테 한 번 된통 걸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재웅아, 내가 아니더라도 어른이라면 누구나 그 장면을 봤을 때 그 애들한테 분노했을 거야. 그리고 그 애들을 욕했을 거야.”


난 그날의 재웅이를 보고 말려준 어른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고 슬펐다. 그곳은 24시간 내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이다. 늘 학원을 바쁘게 다니는 아이들의 무리와 그들의 손을 잡고 간식을 먹이거나 종종거리며 뒤따르는 어른들이 그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 중요한 자신들의 일상 때문에 재웅이를 지나쳤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재웅이의 이 일에 대해 함께 분노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재웅이는 그 일을 겪느라 수학 학원에 지각을 했고, 그 바람에 수학학원 선생님은 엄청나게 분노하시며 부모님께 전화를 주셨다고 한다. 당연히 학원 선생님이 분노하신 건 가해자 아이들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화내고 속상해하는 그 어른들 덕분에 얼굴이 벌겋게 상처 입은 재웅이가 조금은 덜 속상하고 덜 외로웠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애매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친구끼리 장난을 하는 건지, 때리고 있는 건지, 협박을 하는 건지, 위로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모습들. 그럴 떄면 선뜻 다가가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보고 싶다가도 잠시 멈칫 하게 된다. 내가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끼어들기가 조심스러운 탓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치는 무심한 눈길들 속에서 재웅이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 아이가 흙과 모래가 뒤섞인 신발에 얼굴이 무참히 밟혔던 순간을 떠올리면 이렇게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삼삼오오 몰려 하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학교 생활에 대해 종알종알 떠드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라며 담담히 적은 원고지 위의 글자들을 읽어보면서 혹시라도 나의 무심함이 지나치는 곳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어쩌면 그 안에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의 절박함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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