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재고를 위해서
“아, 씨발 왜 자꾸 깨우냐고, 미친년아!”
열 아홉 살 유빈이와 수업을 하는 도중, 밖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나는 너무 놀란 채로 유빈이를 쳐다 봤는데 그 애는 의외로 꽤나 담담하다.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시큰둥한 말투로 유빈이는 말했다.
“우리집 찌질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욕설의 주인공은 유빈이의 동생 찬이었다. 미술을 공부하는 유빈이와 달리 열 다섯 살 찬이는 영재고에 입학할 목적으로 수많은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유빈이와 수업을 하는 3년 동안 찬이의 앞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늘 터덜터덜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과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르는 어머님의 모습만 봤을 뿐. 어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접시 한 가득 신선한 과일 간식이 놓여 있었다.
“우리 찬이가요, 을매나 공부를 잘 하는지 모릅니더. 학원 쌤들도 우리 찬이는 무조건 영재원 갈 끼라고 했다 아입니꺼.”
찬이 어머님은 찬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영재고 진학을 위한 특별학원이 따로 있었는데, 거기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도 찬이의 수학, 과학 성적이 대단히 좋은 모양이었다. 유빈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찬이 어머니는 늘 유빈이에 대해 공부를 못하는 ‘돌대가리’, 찬이는 공부를 잘 하는 ‘자랑거리’라는 것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그런데 그런 찬이가 지금 욕을 한 것이었다. 그것도 자기 엄마에게.
“왜 욕을 하는 거야?”
“찬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잘 때 깨우는 거거든요. 학원 가야 한다고 깨우면 맨날 저래요.”
나는 종종 뉴스에서 부모에게 욕설을 날리거나 부모를 폭행하는 아이들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실제로 부모에게 욕을 하는 아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난 그렇게 유빈이 엄마가 자랑해마지 않던 아들에게 욕을 먹고 산다는 것이, 그럼에도 그 아들을 자랑하고 다녔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다 찬이 수업을 맡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가 치른 첫 번째 내신 시험에서 수학 과학 성적은 잘 나온 반면 국어는 평균 이하의 성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내로라 하는 대형 학원을 보내놓고 당연히 성적이 잘 나올 거라 믿었던 찬이 엄마는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기말고사 대비를 부탁하셨다.
첫 번째 수업이 있던 날, 찬이 방에 들어가자 찬이는 팬티에 러닝 셔츠 하나만 입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여지껏 그런 모습으로 날 맞이했던 학생은 없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머니가 간식을 들고 방에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아이의 엉덩이를 두들기셨다.
“우리 찬이가 새벽 3시까지 숙제를 하느라꼬 잠을 몬 잤더니 마 오늘 하루 종일 이런다 아입니꺼. 아까 일어나서 수업 준비 해 놓으라 켔더마는. 찬아, 찬아 퍼뜩 일라라!”
엄마의 큰소리에도 찬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간신히 바지를 입혀 의자에 앉혀 놓은 뒤에도 찬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앉아 있어도 자꾸 옆으로 고꾸라졌고, 내가 설명을 할 땐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영재고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빡센 수업 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찬이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제대로 앉아 있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그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다. 어떻게든 수업을 해 보려는 최소한의 성의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첫 번째 수업이 마무리 된 후 다음 수업을 이어가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비단 첫날만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숙제 때문에 유난히 피곤해하던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찬이는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디폴트값인 아이였다. 내가 설명을 시작하면 자연스레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교재를 보라고 하면, “제가 눈은 감고 있어도, 다 듣고 있어요. 그냥 말 하세요.” 라고 말하는 아이였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와 버릇이 없었다. 등짝도 때려 보고, 밖에 나가 물을 마시고 오라고도 하고, 분위기를 환기할 만한 다른 이야기를 꺼내도 딱 그때 뿐이었다. 수업을 할라치면 찬이는 다시 흐물흐물한 오징어로 되돌아가 있었다. 국어 교과서와 프린트에도 필기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쪽지 시험을 본다고 예고를 했음에도 공부를 해 오지 않았고, 간신히 풀어온 객관식 문제마저도 모두 틀리기 일쑤였다. 그냥 아무 답이나 체크해 온 문제들이 산더미였다. 찬이의 어머니는 진도에 집착하셨지만 오답이 엄청나게 많아 그것을 고치는 데만도 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나는 이런 태도를 가진 아이가 수학 과학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님, 찬이가 수학 과학은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국어는 아무래도 시험을 못 볼 듯 합니다. 외워야 하는 영역이 있고 이해해야 하는 영역이 있는데, 찬이는 둘 다 안 하려고 해요.”
시험이 다가오는데도 변하지 않는 아이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이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의구심이 일었다. 언제나 나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고, 아이는 내 말을 튕겨내며 내내 눈을 감고 있는 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국어 학원을 보냈을 때 아이가 아예 잠만 자고 왔다면서, 그래도 이 수업 시간에는 아이가 듣는 거라도 있다는 것에 만족하신다고 하셨다. 아니 그러면 근본적인 문제, 그러니까 수업 시간 내내 자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영재고 진학을 위한 공부 때문이라면 그 양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저 새끼 저거, 새벽까지 숙제하느라 못 자는 거 아니예요.”
유빈이는 찬이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건 숙제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미리 숙제를 하라고 해도 늘 1시 넘어까지 그 숙제를 끝내지 못하는 게 이상해서 자기가 몰래 찬이 방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찬이는 숙제가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12시면 잠들기 때문에 찬이가 게임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거라고 했다.
“제가 시험 기간 내내 2시까지 공부하면서 찬이 방을 봤는데요. 하루도 안 빼놓고 계속 게임 중이었어요.”
그러나 어머님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도리어 새벽까직 공부하느라 고생인 동생을 못 잡아 먹어 난리라며 유빈이를 잡았다. 그리고 내가 찬이 수업을 시작하려고 집에 오면 늘 찬이의 수학과 과학 성적표를 눈 앞에 내미셨다. 영재고 진학을 위한 학원에서 테스트를 본 것이라고 했다. 찬이의 수학 과학 성적은 전체 아이들 중 3위였다.
“이걸 저한테 왜 보여주시는 거예요?”
내가 의아해 하며 물어보자, 어머니는 조금 수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슨생님이 하도 우리 찬이를 공부 안 하는 아로 보시는 것 같아갖고, 수학 과학은 잘 한다꼬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더.”
어머니는 자존심이 상하셨던 것 같다. 자기 집의 자랑거리인 아들을, 수업 시간 내내 조는 문제아로만 보는 나의 시선이.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욕설을 퍼붓고 발길질을 하고, 수업 시간 내내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찬이가 좋은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머님, 저는 찬이의 수학 과학 성적에는 관심 없어요. 제 시간에 보이는 태도만 신경쓰고 그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수업 시간에서도 찬이는 선을 넘고 말았다. 그 무렵, 찬이는 국어에서 어려운 축에 속하는 ‘중세 문법’을 배우고 있었다. 학교에서 이미 진도를 나갔고, 내 수업 시간에도 예습을 했던 부분이었는데 외워오지 않아서 매 시간마다 테스트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외우지 않으니 테스트를 보는 족족 틀리고 말았다. 빨간 색연필로 틀렸다는 표시를 하면서도 내 팔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들였던 시간과 노력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런데 나즈막히 이런 소리가 들렸다.
“씨ㅂ…”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잘못 들었겠거니 하고 다음 문제를 채점했다. 또 틀렸다.
“씨ㅂ…”
이번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찬이는 분명히 욕을 하고 있었다.
“너 뭐라고 했니?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
“아니예요, 쌤. 썜이 잘못 들으신 거겠죠.”
“난 공부 못하는 애보다 버릇 없고 싸가지 없는 애들 더 싫어하는 거 알지? 조심해.”
그리고 다음 문제를 채점하는데, 또 틀리고 말았다.
“신발”
나와 찬이의 눈이 마주쳤다. 찬이는 자기가 뭘 어쨌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씨발은 안 돼도, 신발은 된댔어요.”
그 말을 당당하게 하는 찬이의 태도에 나는 기가 막혔다. 그걸 정말 너희 엄마가 허락하셨다고? 찬이는 ‘쌍시옷’만 빠지면 욕이 아니라고 하면서 엄마가 신발은 허용해 줬단다. 어이가 없었다.
“너희 엄마는 가능한지 몰라도, 난 아니야. 오늘 수업 여기까지! 난 너같이 싸가지 없는 놈은 더 이상 못 가르친다.”
방금 전까지 채점하던 테스트지와 자료들을 모두 두고서 나는 황급히 그곳을 나왔다. 찬이와 계속 앉아 있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몰라 두려웠다. 그날은 하필 찬이 어머니가 집에 없었던 날이라, 이 일은 문자로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발’을 허용해 주었다는 어머님과 통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상식이 없는 그곳에서 당장 나오고 싶을 뿐이었다.
더 이상 찬이의 수업이 어렵다는 문자를 남긴 후, 찬이 어머니께 장문의 톡이 왔다. 찬이가 자신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어머니는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응답을 받은 기분이라는 내용이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흐릿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 잡고 한 자 한 자 읽어 보니 어머니는 전부터 찬이가 욕을 많이 하는 것 때문에 기도를 했었다고 하셨다. 부디 아이가 정신 차리고 욕설을 끊게 해 달라고. 그런데 이렇게 오늘 내가 분노를 하고 수업을 끊겠다고 말함으로써 찬이가 드디어 욕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깊이 반성했다는 것이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찬이는 욕을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아이에게 오만정이 떨어져서 다시 수업을 재개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 유빈이의 수업만 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밝혀야 했다. 지금껏 내가 먼저 학생을 자르거나 그만둔 적이 없었기에 내가 먼저 ‘끝’을 말해야 하는 일이 무척이나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더더욱 어머니가 그저 내 뜻을 그냥 받아주시길 간절히 바랬다.
“그라믄 우리 아가 상처받을낀데….”
그 문자를 보고 나는 잠시 멍해졌다. 찬이의 잘못 때문에 이 사달이 났음에도 찬이가 받을 상처만 생각하고 있는 찬이 어머니의 말씀에 더 이상은 말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태도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과 상처보다는 그것을 거절 당하는 아들의 마음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그러나 멀리 생각하면 찬이를 지금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 찬이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다. 결국 찬이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결국은 찬이가 외로워질 테니까.
찬이 어머니가 찬이에게 그토록 허용적이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이가 영재고에 진학할 똑똑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찬이가 욕을 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모두 공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영재고에 진학만 하면 이 모든 비상식적인 언행은 없어질 거라고, 다시 예전의 착하고 애교 많은 아들로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그 모든 욕설과 폭행을 참아낼 수 있었을 테지. 어머니는 그것이 자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영재고에 들어간다고 찬이의 그런 행동이 변했을까. 이미 찬이에게 엄마는 자신이 욕을 하고 폭행을 저질러도 다 넘어가 주는 사람일 뿐이다. 어른에 대한 존중감 따위는 전혀 없다. 그러니 자신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 앞에서도 욕설에 대한 욕구를 참지 못했다고 본다. 영재고에 들어간다고 해서 어른에 대한 존중의식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찬이가 버릇없는 행동을 했을 때, 눈물 나도록 따끔하게 혼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찬이 엄마가 성적보다는 아이의 인성과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찬이가 지금보다는 바르게 컸을지 모른다. 지금의 찬이를 만든 것은 엄마를 비롯해 성적에만 집착하는 어른들이다. 그 이후로 나는 찬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찬이가 영재고를 갔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찬이 같은 아이가 영재고에 가게 되는 미래가 나는 두렵다. 그런 아이가 권력을 잡게 되는 미래가 나는 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