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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색손잡이 Jun 07. 2024

나도 특성화고 갈래

올해 명절, 집안 어른들에게 등짝 맞기 딱 좋은 말.

  나의 중학교 시절은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 학년의 학생수는 120명이 조금 넘는데, 나는 100등도 했었고, 그나마 정신줄 붙들고 71등으로 졸업했다. 나는 졸업하기 전에 1년 정도 어울려 지낸 친구가 5명 있었다. 그래서 나까지 6명이 3학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중에 둘은 읍내에 있는 인문계에 진학하고, 나머지 둘은 나와 같은 학교의 공업과로 진학했다. 인문계에 진학한 친구 둘은 공부를 꽤나 잘했다.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들리는 얘기들도 보면 여전히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나와 특성화고에 진학한 내 친구들은 그렇게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원하던 고등학교에 성적 때문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먹고 이를 갈고 있었다. 공업과에 진학한 친구들은 공부를 잘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취업과 자격증을 목표로 입학을 준비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기대 이상으로 순탄하게 일이 풀렸다. 나는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수준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도 상위권의 성적을 받았다. 공업과에 진학한 친구 둘은 전공에 큰 관심을 보이고, 그만큼 실력도 나날이 늘어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인생에서 해본 적 없는 공부도 열심히 했다. 물론 우리 학교는 학기 중에 치르는 고사들의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조금만 열심히 공부하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고, 공부에 뛰어난 친구들도 많고 학생 수도 적어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인문계 학교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또한 나와 내 친구들은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생각하고 있어서 자격증도 학기 중에 공부하고 취득해야 한다. 그래서 온전히 내신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격증과 내신을 동시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스펙을 위해 대회를 출전하기라도 한다면 공부해야 할 분야의 종류가 늘어나고, 동시에 난이도도 상승하게 된다.


  나와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노는 것도 정말 좋아해서 남들보다 정말 열심히 놀기도 했다. 나는 학교에서 일과 중에 공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열심히 놀고, 일과가 끝난 후에야 딴생각 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걸 좋아했다. 요즘은 필요에 따라 공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선생님들께서 제발 공부 좀 하라며 속상해하실 정도였다. 또한 읍내에서 인문계에 진학한 친구들을 지나가다 만날 때면, 나는 항상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이 좋은 결과를 내고,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는다는 사실은 인문계에 진학한 몇 친구들에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학교와 집이 읍내의 끝과 끝에 있어서 동네를 자주 가로질러 다녔다. 그러면서 당연히 인문계 친구들과도 종종 오며 가며 마주치기도 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친구들과 서로의 안부를 전하다 보면, 심심찮게 들었던 얘기들이 있다. "어차피 특성화고인데…….", "거기서는 잘해봤자…….", "자격증 따는 거 쉽지 않아?", "나도 특성화고 갈 걸~" 솔직히 이제는 화도 안 난다. 자신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가 미리 진로를 정하고, 일찍 능력을 인정받으면 나였어도 질투 날 것 같다.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몇몇 어른들이다. 몇 어른들에게 특성화고의 인식은 딱 이 정도인 것 같다.

옛날보단 인식이 좋아졌고, 그럼에도 내 자식이 가고 싶다고 하면 약간 꺼려지고, 내 자식의 친구가 특성화고에 진학에서 잘 되면 후회되고, 내 자식이 갔으면 더 잘 됐을 것 같고, 티는 못 내고 질투 나서 괜히 화가 나는 곳


  정말 아쉽지만, 내 자식이 입학했으면 더 잘 됐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잘한다고 해도, 내신과 전공에 둘 다 뛰어날 거라는 보장도 없다. 내신이 좋으면 전공도 잘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때, 내신과 전공은 정말 별개의 영역인 것 같다. 내신은 정말 뛰어나지만, 전공에는 막상 흥미가 없어서 전혀 다른 전공으로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또한 전공에는 정말 뛰어나지만 내신이 별로 좋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는 학생들도 있다. 또 몇은 둘 다 잘하지 못해서 생각 없이 살기도 하고, 다른 몇은 내신이나 전공, 둘 다 잘해서 편하게 대학 또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전부 대학에 진학하는 건 아니듯, 특성화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전부 취업을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취업하기 힘들다.


  의외로 특성화고에서 취업하려면 내신이 중요하다. 특성화고 전형으로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하다못해 지역인재 9급 공무원까지도 지원하기 위해서는 요구하는 내신등급을 맞춰야 한다. 가고 싶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있어도, 그곳에서 요구하는 내신등급을 받지 못하면 지원조차 할 수 없다. 정말 높게 부르는 곳은 전 과목 평균 2.0등급 이내도 있다(전국에서 두 명 뽑는 공공기관이다). 만약 학교와 협력을 맺은 기업에 자리가 생겨 입사하려고 해도 무조건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는 3학년들을 대상으로 취업희망자를 신청받는다. 그리고 신청한 학생들을 줄을 세워 우선순위를 만드는데, 대부분의 특성화고에서 우선순위가 되는 첫 번째 기준은 내신성적이고, 그다음이 자격증이다. 그 말인 즉, 취업을 하려면 내신과 자격증을 동시에 챙겨야 한다는 거다. 특성화고에서 살아남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뭐든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스스로를 망칠 수 있다. 뭐든 큰 목표와 기틀은 잡아놓되, 너무 많이, 또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야 한다. 대학을 위해서도 큰 목표와 기틀은 잡아놔야 하지만, 너무 복잡하게 많이 생각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취업도 똑같다. 큰 목표와 기틀은 잡아놔야 하지만, 너무 어려운 목표와 과한 노력은 언젠가 무너진다. 나와 가까운 선배는,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자는 목표 하나만 세우고, 많은 곳에서 요구하는 자격증들과 적당히 너무 생각 없지 않을 정도로, 취업할만한 내신을 만들고, 취업하면 도움 될만한 활동들도 하고, 사고 치지 않고 생각 없이 살았더니 취업했다고 했다. 결론은 자신의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인문계고나 특성화고나 크게 다를 건 없다. 가장 작고도 큰 차이는 다른 과목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차이이다. 예를 들어 수학과 국어는 정 반대 성격의 과목이지만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내가 배우는 과목들 중, 회계와 마케팅은 정 반대 성격의 과목이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면, 나의 취업이나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된다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에서 인문계나 특성화나 서로의 노력을 존중하고,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같은 성격의 노력을 하고 있다. 특성화고의 노력도 고생도, 인문계고와 별 차이가 없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인생 첫 자격증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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