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학 중인 학교는 7월 22일에 여름방학을 맞았다. 이번 방학은 내 인생에서 몇 남지 않은 방학이다. 나는 대학 진학에는 큰 뜻이 없기에, 정말로 인생에서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이다. 7월 22일에 방학을 하긴 했지만, 10월에 예정된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강원도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공동교육과정에 참여하느라 7월 21일부터 7월 26일까지 원주에 있는 특성화고에 머물렀다. 그 학교는 강원도에서 많이들 알아주고, 전국대회 출전권을 위한 도대회에서도 가장 많은 성과를 이뤄내는 학교이다. 무엇보다 높은 취업률과 우수한 취업처도 가졌다.
나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 모두 그 학교의 기숙사에서 일주일간 생활하게 되었다. 기숙사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는 도대회 각종 종목들에서 수상한 학생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는데, 우리 학교도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학생들이 수상했지만, 이 학교는 차원이 달랐다. 현수막에 적힌 이름들이 개미 때로 보일 정도였다. 만약 내 이름이 거기에 함께 적혔다면 나는 아마 내 이름 못 찾았을 거다. 그리고 또 다른 현수막에서는 벌써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의 이름과 취업처들의 이름 또한 걸려있었다. 취업처들은 정말 이름난 회사들이었다. 중앙은행, 제1금융권의 투자회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관심 없는 사람들도 이름 들으면 놀랄 정도의 회사들이었다. 나는 놀란 입을 다물고 배정된 기숙사 호실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이후에는 일정에 따라 수업을 듣게 될 교실 건물에도 가보았다. 교실 건물의 내부에 설치된 화면들에서는 지금까지 취업한 각 학생들의 증명사진, 이름, 취업처, 자격증들이 한 화면에 연달아서 보이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조금 오래 구경했는데, 내 눈에는 취업처 보다도 취득 자격증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3년 동안 취득한 자격증의 개수가 엄청났다. 한 화면에 다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이 학교가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강원도에서도 정말 수준 높고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고, 면접 등에도 애쓰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도 내년에 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조금 괴리감이 느껴졌다.
일단 우리 학교는 취업률이 감소하고, 취업하겠다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또한 나는 과의 마지막 기수라서 선생님들도 몇 분 안 계신다. 그래서 내가 재학 중인 학교는 내가 속한 과에 취업준비를 위한 지원과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을 위한 다양한 수업도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취득하고 싶은 자격증이 생겨도 대부분은 나 혼자 준비해야 한다. 대부분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기에 학교에 대한 불만을 별로 품지 않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불만이다. 하지만 취업희망 학생들은 극 소수이기에 학교에서도 그다지 불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른 학교에서도 안타까워하는 정도이다. 그런 내가 이런 엄청난 학교의 학생들, 또한 전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막막했다. 고졸들의 경쟁이 치열해봤자 얼마나 치열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졸들의 경쟁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다. 정녕 그것이 고졸들 사이의 경쟁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특성화고에서 취업하기 위해서는 생활기록부와 자격증 둘 다 신경 써야 한다. 전자의 경우, 공기업이나 대기업이 아닌 고졸전형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다른 중소기업 등에 취업할 계획이라면 크게 상관은 없다. 하지만 취업 이후 대학 진학이 계획에 있다면 또한 신경 써야 한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내신은 상관없다고 하자! 하지만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성적이 아니라면 자격증이라는 수단 밖에는 없다.
그래도 이건 조금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성적은 각 학교마다 시험의 난이도가 다르지만 자격증은 아니기 때문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똑같은 날짜, 시간, 그리고 문제에 평가되기 때문이다. 물론 각 문제마다 점수가 있고, 아슬아슬한 점수로 합격하거나 월등히 뛰어난 점수로 합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합격의 여부만 중요한 거다. 합격점이 60점인 시험은 0점이나 59점, 60점이나 100점이 똑같다. 물론 기분은 다르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나도 70점이 합격점인 시험에 69점으로 불합격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아쉽다. 그래도 불합격은 불합격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이야 점수를 듣고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그 외의 3자가 보기에 나는 그냥 공부 안 한 사람이다.
나는 이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을 일찍 깨우치고 적당한 기업에 들어가 적당히 사는 삶과,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조금은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안 되는 걸 알지만 애초에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적당히 사는 삶은 경쟁 이후에도 할 수 있지만, 적당히 사는 삶에 먼저 만족하면, 다시 경쟁에 발을 드미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면 애초에 현실을 살다 보면 뭐 이상도 살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삶은 없는 걸까? 가끔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건지 동네 취업전문 학원에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생각이지만 현실과 이상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그게 이상이고, 이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그게 현실이 아닐까 싶다.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이런 건 좀 정답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두 발 편히 뻗고 잘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것도 내 이상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현실에 살며 이상을 꿈꾼다. 내가 현실에 살던 이상에 살게 되던 후회 없는 삶이 가장 큰 이상이라 여겨지면 좋겠다. 사회는 너무 각박하기에 조금 순탄해질 필요가 있다.라는 이상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하루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