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방송작가 Oct 05. 2023

정말 웃기는 똥

쓸쓸한 가을에도 나는 웃는다.


 웃기는 똥의 시작은 아무도 모른다. 

이색 사연 있는 재혼 남녀를 방송에 섭외하기 위해, 온갖 재혼카페에 가입을 하고, 사연을 읽었다. 출연에 적합한 사람들을 찾아 섭외 메일을 보내고, 전화통화 하느라 저녁을 노트북 앞에서 때웠다. 피디는 늦게 편집본을 넘겨서, 원고를 쓰느라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이다. 오늘만 견디면 휴가다. 언제 걸려올지도 모르는 출연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 휴대폰을 가고,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이동하며 가래떡으로 배를 채우는 일이, 일주일 후 다시 반복되더라도.     


 물처럼 퍼지는 몸을 끌어 모아 대구에 사는 언니 집에 내려갔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쪼르르 세살 조카가 뛰어왔다. 큰일을 앞둔 사람의 비장한 눈빛과 비밀을 머금은 듯 입을 오물거리며 내 앞에 섰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어, 주저앉아 눈높이를 맞추자, 조카는 한방을 날렸다.     

 

“똥!”

“어이? 똥! 으하하하”     


나는 웃었다.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가사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똥 한방을 맞자, 정신없이 웃음이 나왔다. 조카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 손을 내밀어 내 귀를 잡고, 승자의 여유로운 웃음을 띠고, 외쳤다. 

“똥! 똥!”

한방도 버거운데, 두방이라니! 

나는 조카의 똥 두방을 맞고, 장렬히 쓰러졌다. 웃지 않고 버틸 수 없다는 걸 녀석은 알고 있었다. 녀석은 휴가 온 이모를 웃기기 위해 칼을 갈았던, 아니, 똥을 뭉쳤던 것이다. 요런, 귀여운 녀석.      

도대체 이 웃기는 똥은 어떻게 된 건지 물었더니, 언니도 모른단다. 똥 하면 사람들이 웃으니까, 그게 좋아서, 사람들만 보면 똥, 똥똥 외친단다. 마트에서도 시장에서도, 길을 가다가, 틈만 나면 똥을 외친단다. 그렇다면 참을 수 없지.     

  

 나는 조카가 다른 사람들에게 똥을 어떻게 날리는지 궁금했다. 언니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조카를 데리고 나갔다. 길거리에 선 녀석은 보통이 아니었다. 고수였다.      

 녀석은 똥을 아무에게나 날리지 않았다.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 나이든 여자에게만 날렸다. 여자들이 잘 웃는다는 걸 녀석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녀석이 선방을 날릴 때는 진지한 얼굴로 똥을 외쳤다. 한 사람 당, 딱 두 번만 똥을 외쳤다. 첫 번째는 똥, 두 번째는 똥똥, 너무 많이 자주 외치면 웃음이 줄어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웃기는 똥을 만든, 이런 놀라운 녀석. 정의를 전파하는 무림의 고수처럼, 녀석은 웃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녀석은 알고 있을까? 나를 웃겨주려는 어린 아이의 마음 때문에 어른들이 웃는다는 걸. 살다가 힘든 날, 조카의 웃기는 똥을 떠올리며, 나는 슬며시 웃는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해지기 참 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