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슬픔을 위로하며 행복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며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관계. 그게 함께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의 함께는 많이 달랐다. 슬픔은 배가 되었으며 서로를 비교하고 결국엔 이별이라는 파국을 맞이했다.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말이다. 전부 내 탓이었다.
나에게 손을 뻗어준 사람에게는 그 손을 끌고 같이 심연으로 들어가려 했다.
위로를 건네는 자에게는 마치 악마의 모습을 덧씌워 이중적으로 바라봤다.
그때의 나는 깊게 잠겨 있었고 그곳에서 나오려 들지 않았다. 남들의 걱정과 안부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만 만족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했으니까.
얕은 관계에도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우울을 과장하여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 관계부터 정리되기 시작했다. 대학교 동기 그다음에는 동네 친구 그러다 여자 친구까지.
지금의 내가 바라봐도 그럴 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들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고 자해도 했으니까.
그 광경을 보는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그들의 고통이 있기에 그런 짓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의 불행을 남에게도 퍼뜨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같은 처지가 되어야 곁에 있어 줄 거로 생각했다.
어리석은 짓은 어리석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 깨어나지 못했기에 그들의 선택을 당시에는 비관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도 하고 빌어도 보았지만, 등을 돌린 그들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제야 후회가 몰려오고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을 파악했다. 혈연을 제외한 모두가 나를 의심했다.
아니, 사실 혈연도 마찬가지였다.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언제나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뱉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들은 예전의 극단적인 행동을 기억했다.
트라우마를 남겼고 불행을 남겼고 좋은 추억을 남기기는커녕 악몽을 선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마음속의 병은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그 기쁨을 누릴 사람이 없어졌다.
우울함이 사라져가고 불안이 사라져가기 시작할 때 그 빈 곳을 채울 것이 없었다.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기에 기쁨도 행복도 존재하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과 함께하는 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을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으로 인식해야 했는데. 후회만이 남았다.
그러나 달라지는 게 없다는 점이 비참하기만 했다. 괜찮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렀다. 의심하던 이들은 둘로 갈라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준 사람과 떠나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이상하게도 기회를 준 사람보다 앞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여운이 깊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생각하는 것 보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이들에게 확신을 주어야 했다.
아직 남아있는 불안과 우울을 표현하지 않고 술을 끊고 자해하지 않았다.
안쪽의 썩은 이빨이 보이지 않게 환하게 웃지 않았다. 그저 하얗고 깨끗한 앞니만을 내비쳤다.
그 누구도 내 입속을 헤집어 놓지 않았다. 드러내지 않은 이빨은 치석이 쌓이고 충치가 진행되었다.
다시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갈수록 불안과 우울함이 되돌아왔다. 잃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 사로잡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함께 행복하다는 선택지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걸까.
고독한 존재로 남기에는 행복을 나눌 수 없고 사회적 동물이 되기에는 불행이 감겼다.
그 누구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른 이들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싶지도 거짓을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실과 거짓을 섞어 내면 위에 가면을 쓰고 무도회를 즐겨야 했다.
그래야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어디 가서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으니까. 남들처럼 평범해 보일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감당해도 감당하지 않아도 문제였다. 혼자는 공허하고 허탈하며 함께는 불행하고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