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의 그림

단편소설집

by 집안의 불청객

시간에 맞춰 집 앞으로 나갔다. 삼 분 정도 기다리자, 검은색 밴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다. 조수석에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작업 때문에 피곤했기에 잠시 잠을 청했다.


“도착했습니다.”


창문 밖에는 수많은 기자와 이번 비엔날레의 관계자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내리자, 셔터음과 빛이 눈과 귀를 점령했다. 기자들은 비슷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번 비엔날레의 대상 수상자 유력 후보신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I인 타즈의 참가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드카펫을 따라 포토존에 도착했다. 낡은 수첩과 연필을 품에서 꺼내 자리에 섰다. 정면을 바라보자 한 휴머노이드가 걸어오고 있었다. 의문을 품고 옆에 있는 관계자에게 물었다.


“저 휴머노이드는 뭔데 여기로 오는 거죠?”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AI 타즈입니다.”


AI 따위가 인간의 고유 영역인 예술에 도전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의 주목은 그 고철 따위에게 향했다. 이윽고 휴머노이드가 나와 같은 레드카펫에 섰다. 그것은 나를 아래로 내려봤다. 불쾌해서 나도 모르게 표정이 찡그려졌다.


나와 그것이 같은 레드카펫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광경이 연출되자 기자들은 요란하게 사진을 찍었다.


“타즈님 이번 비엔날레에 최초로 참가하는 AI인데 어떤 그림을 그려주실 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타즈‘님’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저런 기계를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올려 부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기계 따위가 비엔날레에 참석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술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고 사고와 감정이 섞이며 작품이 탄생합니다. 고철 덩어리가 그것을 할 리가 없죠.”


그 후 그것이 발언하기 전에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기자들의 질문에 그리고 내 의견에 반박하듯이 음성이 나왔다. 인간형 휴머노이드였기에 그 음성이 진짜로 목에서 나온다고 느꼈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는 기억장치의 저장된 데이터를 가지고 작품을 그립니다. 이것이 사고와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그것이 사고와 감정이라는 단어를 꺼내니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격해지는 감정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따위는 그냥 메모리에서 처리된 데이터 쪼가리지 사고와 감정이 아니야!”


비엔날레 건물로 입장했다. 여러 질문이 쏟아졌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휴머노이드 한 대가 나를 작업실로 안내했다.


“VIP만을 위한 작업실입니다. 최신형 AI들이 작가님의 그림을 도울 것입니다.”


주변에는 최첨단 기기가 즐비했다. 대형 스크린부터 보조 도구까지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작품을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 치워주십쇼. 저는 아날로그 방식이 훨씬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치워드리겠습니다. 휴게실에서 잠시 대기해 주시겠습니까?”


휴게실로 내려가서 수첩을 꺼내 주변을 스케치했다. 혹시라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버릇이었다. 관찰하다 보니 휴게실에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내 주위에 앉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로 가려고 했다. 향하던 도중 누군가 자꾸 쫓아오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니 한 남성이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용건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는 기사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 그게…. 아까 말씀하신 것 듣고 굉장히 놀랐어요. 최신형 그것도 그림 전문으로 개발된 AI에 선전포고하신 게 정말 감명 깊었습니다.”


뉴스 첫 줄에는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조회수는 말할 것도 없이 높았고 영화의 한 포스터처럼 연출이라도 한 듯이 나와 그것이 노려보고 있는 사진이 찍혀있었다.


그때는 감정에 휩싸여서 한 말이었지만, 지금 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실력으로 증명해 보여줄 자신감도 있었고 질 리가 없었다.


“그런 뜻으로 한 건 아닌데 뭐 그렇게 됐다면 어쩔 수 없죠. 전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나를 더 붙잡지 않았다. 작업실에 가는 동안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지만, 최대한 무시했다. 방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휴머노이드 한 대가 음성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모시려고 했습니다. 김서훈 작가님. 말씀하신 대로 해놓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봤다. AI와 보조 기계들이 없어지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화구는 내 것을 가져왔으니, 아크릴판만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


개막식이 열렸다. 큰 관심은 없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번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주연은 아까 그 고철 덩어리일 것이고 조연은 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서사의 마지막은 주연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될 것이다.


후원자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그중 막대한 거금을 쏟아부은 빅테크 AI 기업의 대표가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더니 기세등등하게 자기소개는 건너뛰고 본론부터 들어갔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무조건 타즈가 될 겁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타즈만큼 완벽한 그림을 그려낼 작가는 없을 겁니다.”


작가들은 일관되게 찡그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손짓으로 옆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저희의 이번 최신 4세대 AI 화가 타즈입니다!”


옆에서 그것이 걸어 나왔다. 아주 인간답게 두 다리로 걸었다. 아까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은 달랐다. 왜냐하면, 외형이 너무나도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땐 기계였는데 지금은 완전한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외관이 갖추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된 타즈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로봇의 어투가 아니었다. 사람처럼 성조를 조절하고 완벽한 발음과 속도를 구사했다.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갔다는 걸 그때 알아차렸다. 혹시 누군가 쳐다보지 않을까 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의 관심은 타즈에게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무언가를 종이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몇십 초 만에 그것은 그림을 완성했다.


“지금 이 장면을 연필로만 그려봤습니다. 어떠십니까?”


초현실주의를 추구한다면 저런 그림을 로망으로 삼지 않을까 싶었다. 사소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려냈다. 그 그림을 보는 이들과 보지 않으려하는 이들로 나누었다. 나는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못했다.


개막식은 그렇게 위대한 기술의 증명으로 끝이 났다. 동시에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정해졌고 다음 주 토요일 그림을 제출하고 일요일에는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다들 작업실로 가기보다는 인맥이 먼저인지 자리에 남아 샴페인을 즐기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썩은 뿌리를 제대로 뽑지 못한 예술계가 보기 역겨워 수첩을 품에 넣고 작업실로 가려고 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김서훈 작가님.”


뒤를 돌아보자 타즈가 손을 건네며 악수를 청하는 중이었다.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말했다.


“무슨 일이지?”


“이번 비엔날레 대상 유력 후보라고 들었습니다. 같이 경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것의 입에서 ‘후보’라는 말이 유독 듣기 거슬렸다. 그리고 ‘경쟁’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인간의 고유 권한에 도전하는 기계 따위가 같은 선상에 위치하려는 게 토악질이 나왔다.


“경쟁? 고철 덩어리 따위랑 무슨 경쟁을 하지? 넌 그냥 이번 비엔날레에서 치러지는 서커스의 광대 중 하나야.”


차라리 발끈하길 바랐다. 그래야 그 상황을 인정했다는 꼴이 되어버리니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제가 광대라면, 어쩌면 주연이기도 하겠네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끈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타즈의 옷깃을 잡았다.


“뭐라고? 주연? 이게 어디서 그딴 말을 지껄이고 있어!”


그러자 비엔날레 관계자들이 나를 말리며 떨어뜨렸다. 그리고 타즈를 감싸며 말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번에 타즈에 문제가 생길 시 막대한 거금을 변상해 주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너를 기계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야. 모두가 널 그렇게 생각해!”


***


분위기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감정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기에 침대에 누웠다. 시간이 지나자 그림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공상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오후 열 시였다. 영감을 주는 꿈을 꿨다. 털이 북슬북슬한 거인이 헝클어진 나무의 가지를 잡으며 버티고 있었다. 나무는 엄청난 고목이었으며 이파리가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물들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인은 나무의 제일 큰 가지를 잡고 있었고 픽셀이 깨진 듯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수첩에 스케치를 했다.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고목과 거인의 틀과 구상까지 완벽하게 잡았다. 흠잡을 거 하나 없는 시작이었다. 그대로 목과 허리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무 시간을 작업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자 없었던 스탕달 증후군까지 올 법한 걸작이었다. 이대로 잉크가 굳기만 한다면 1차는 당연히 나의 것이었다.


***


1차 비엔날레가 열렸다. 평론가 백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그들이 투표한 뒤에야 작가들은 남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투표가 끝난 후 평론가들이 일제히 퇴장했다. 그들은 비밀 유지 때문에 작품에 관해 평가를 입에 올리지 못한 채로 나갔다.


순번이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맨 뒤에 서서 우월감을 느끼기로 했다. 그런데 타즈가 오더니 나의 뒤에 섰다. 거슬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대기 줄을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남들의 작품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줄이 멈추었다.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 보니 나의 작품인 <엮인 거구>에 멈춰있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시선을 한참 동안 떼지 못했다.


다른 작가들의 반응이 이 정도라면 1차 비엔날레의 승자는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줄이 다시 멈췄다. 서늘한 감각이 오감을 소름 돋게 했다. 그 그림은 제목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췌한 어둠이 깔리고 살아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의 빛이 수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뒤에는 넘을 수 없는 벽들이 크게 서 있었고 빛이 없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색의 회색 두건을 쓴 남자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었다.


눈물이 나오고 숨이 가빠졌다. 심장 박동이 느껴졌으며 입이 벌어졌다. 내 작품에서 본 그 가짜 희열과는 다른 진짜 스탕달 증후군이었다. 그 순간 처음 알았다. 내게 이런 것이 있다는 게.


급하게 뒤를 돌아 나가려고 했다. 전시장을 나오고 무릎을 잡으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몇 분 후 진정되었을 때 그 그림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보니 제목도 보지 못했다.


“제 작품은 어떻게 감상하셨습니까? 김서훈 작가님.”


뒤를 돌아보며 누구인지 확인했다. 타즈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아까 내가 본 그림을 그렸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네가 뭘 그렸는지 중요하나?”


“제 작품을 보고 스탕달 증후군이 오셨으니까요.”


“뭐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나보다 더 월등한 작가가 나오는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인류가 아닌 그것이 모든 작가보다 앞서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이 말을 이었다.


“<두건 쓴 회색 남자>가 제 작품입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예술은 인간만의 고유 권리라고 믿었는데 그것이 산산조각이 났다. 나의 신념이 믿음이 무너졌다.


***

1차 비엔날레 투표는 타즈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내가 두 번째를 차지했지만 무려 두 배의 표 차이가 났다. 그 아래의 작가들은 표를 받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평론가들의 감과 나의 감은 정확히 일치했다.


기사 첫 줄은 1차 비엔날레의 얘기로 가득했다. 특히 모든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인류의 대표 거장 김서훈 AI 타즈에게 압도적 패배’


‘AI 타즈 예술은 인간의 고유 권한이 아니야.’


작업실에서 그런 기사들을 핸드폰으로 보니 구역질이 올라왔다. 위액이 식도에 걸려 뜨거운 느낌이 불쾌했다.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탄식했다.


“씨발! 씨발! 씨발!”


이럴 시간이 없었다. 2차 비엔날레가 다가왔다. 압도적으로 쓰라린 패배를 얻었기에 이번에는 꼭 승리를 갈망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슬럼프인가 싶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하향곡선을 그릴 리가 없다.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과연 타즈가 그림을 그렸을까. 그것이 보여준 건 개막식 때 연필로 그린 것이 전부였다. 충분히 의심이 들만했다.


그런 의심을 품은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내가 타즈의 작업실 앞에 도착했을 때 다른 작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선뜻 문을 두드리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문을 열고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똑똑히 봐야 이해할 것 같았다. 문을 열라고 하는 순간 딸깍하고 잠겨지는 소리가 났다. 발로 문고리를 부수고 강제로 열었다. 다른 이들은 문제가 생길까 각자 헤어졌다.


눈앞에 있는 광을 믿을 수 없었다. 벽에 걸려있는 전부 다른 그림들 그리고 무언가를 또 그리고 있는 타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에 자동으로 무릎이 꿇어졌다. 타즈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다른 작가들을 향해 말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김서훈 작가님.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추악한 속내가 들키기라도 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로 향했다. 문을 닫고 그대로 엎어졌다. 마음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인간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AI가 등장했다는 것과 그것이 그린 그림들 모두 내 마음에 충격을 주었다. 벽에 걸려있던 그림은 모두 스탕달 증후군을 일으키게 했다. 그런데 그 작품이 아닌 그리고 있던 것이 무엇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문제는 나의 기억력에는 벽에 걸어진 그림들이 각인되었다. 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수첩을 꺼내고 모든 그림을 스케치했다. 스케치가 끝난 후 마지막에 보이지 않는, 작업 중이었던 그림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얼마나 완벽할까. 벽에 걸어진 것들이 제출하지도 못할 작품이었으면 얼마나 더 위대한 게 나올 수 있는 걸까. 나는 패배했는가. 어쩌면, 아까 꿇은 무릎이 암시였을지도 모른다.


***


이틀 뒤 작품을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어떤 그림을 그려도 그것을 이겨낼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첩을 꺼냈다.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그린 스케치보다 타즈의 그림 스케치가 훨씬 많았다.


결국, 금기를 어기기로 했다. 이기지 못해서 작가의 평판이 떨어지나 표절로 인해 추락하거나 같은 선상이었다. 수첩을 계속 넘기던 도중 스케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아크릴판을 옆에 두고 미친 듯이 그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색 배합을 바꾸었다. 그래야 완전한 복사가 아닐 거로 생각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빛이 물감에 바래질 때가 되어서야 하루가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림을 바라봤다. 걸작, 대작, 명작이라는 수식어가 안 붙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린 최고의 작품이었다. 여태까지 최고의 평을 받았던 <빗소리의 왈츠>보다 완벽에 가까웠다.


***


2차 비엔날레가 열렸다. 숨이 막혔다. 그림의 오점은 없었다. 다만, 내 그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이번에도 입을 닫고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눈과 입은 울거나 웃고 있었다.


작가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 타즈의 작품에서 이번에도 멈추었다. <별빛 해바라기>는 꽃과 별의 외관적 간극을 줄이면서 각각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그림이었다. 이번에도 저절로 입과 눈이 커졌다. 하지만, 2차 비엔날레는 나의 우승임을 직감했다. 두 번째에서 멈추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나의 작품 <밤하늘의 구름>이었다. 구름이 잘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서 역설적으로 별보다 구름에 비친 달빛에 초점을 두어 아름다움의 전가를 나타내었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양복의 옷깃을 고쳤다.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고 목을 가다듬었다. 관계자가 발표했다.


“2차 비엔날레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차지하신 분은 김서훈 작가님입니다!”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마른침이 삼켜졌다. 혹시라도 타즈가 자신의 그림임을 주장하면 나의 경력은 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개를 떨구고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놓고 있었다.


“1차 때는 제가 긴장을 했었나 봅니다. 예술이란! 인간의 고유한 권리입니다! 저는 그 사명감을 가지고 이번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고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의 박수, 함성이 울렸다. 타즈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건지 아니면 겸손한 건지 다른 이들과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단상 위에서 내려와 인간의 승리를 다른 작가들과 함께 누렸다. 잔에 샴페인을 따라 부딪치고 넘겼다. 청량감이 몇 배로 증폭되는 것 같았다. 타즈가 맞은 편에서 걸어오자 비꼬는 듯이 말했다.


“샴페인 한잔하겠나? 아차. 그런 건 못 마시겠군.”


주변 모두가 웃었다. 타즈의 표정은 의미심장했다.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눈은 처져있었다. 감정표현에 오류가 생긴 줄 알았다. 다시 긴장감이 돌았다. 혹시 일부로 지금 말해서 더 망신을 주려는 계획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예상을 뒤엎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고와 감정, 그것을 저에게 느끼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림을 배우고 싶습니다.”


정적이 연회장을 감쌌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층에 있던 한 작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AI가 공식적으로 인류에게 패배했음을 말했다!”


아까 단상에 섰을 때보다 더 많은 환호와 함성이 울렸다. 이제 나의 답변만이 남았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타즈는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곧장 그것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명령했다. 나의 작업실에는 타즈의 그림을 스케치한 것이 즐비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였다. 일단 연회장을 나온 후 내가 말했다.


“너의 작업실로 가지.”


그것에게 무슨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냥 ‘너’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론, 인간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그것의 뒤를 따라갔다. 혹여라도 자신의 그림을 베낌을 알고 있지만, 일부로 말하지 않고 은밀하게 협박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김서훈 작가님?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어. 그래.”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때보다 훨씬 많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저번과는 다르게 그림의 중간이 찢겨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그림이 걸작이라는 표현을 할 만큼 대단했다. 그저 그림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었다. 이것이 진짜 예술이었다. 그렇게 그림들을 계속해서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어. 일단 너의 그림은 솔직히 말해서 정신적으로 미성숙해.”


“그게 무슨 말씀인지….”



“네가 그림을 어떻게 그리지?”

“팔과 손에 있는 센서 장치 그리고 오류가 나지 않도록 하는 제어 장치가 계속 움직이며 그립니다.”


“그게 문제야.”


나는 그의 작업실에 무수히 쌓여 있는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여기다가 아무거나 연필로 그려봐.”


“어떤 걸 그릴까요?”


“벌써 문제점이 보이잖아. 내가 주문해야만 그리는 건 프린팅이랑 다름이 없어.”


“알겠습니다.”


그것은 그 큰 종이를 이십여 초안에 가득 채웠다. 장미꽃을 들고 단발에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상체만 보이는 여성을 그렸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이런 그림을 완성했는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그림을 부정하고 무언가 그럴싸한 말을 해야 했다. 곧바로 종이를 반으로 찢으며 말했다.


“다시 그려.”


그 행동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찢고, 다시 그리고 찢고 그것이 먼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의문은 제기하지 않았다.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를 때 말했다.


“아직도 네 문제점을 모르겠나?”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봐봐.”


타즈는 그림을 보고도 이상함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사실, 그것은 연필로 표현할 수 있는 그림 중에서는 완벽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모르겠습니다.”


무리수를 던져야 했다. 무언가라도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안 될 것 같은 짓 그러니까, 그것을 망가뜨리기라도 해야 했다.


“널 망가뜨려도 되나?”


“네?”


“너를 일부러 망가뜨려도 되냐 이 말이야.”


그것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까의 무리수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곧장 그의 그림을 한 번 더 찢고 송곳을 들어 두 눈을 파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야 정보를 차단했다. 그것은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어떤 장치가 파괴되었는지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나는 곧장 종이와 연필을 쥐여 주고 다시 그리라고 말했다. 당황해 보이는 것도 잠시 종이와 연필을 잡더니 오직 촉각에 모든 것을 맡겼다. 그것은 이번에도 그림을 빨리 완성했지만, 전에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 보는 예술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려졌다. 그것은 현대의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걸!”


그 순간 타즈는 갑자기 그림을 수정했다. 팔과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고 자신이 여태까지 그린 그림과 동일한 화풍으로 다시 그렸다. 그 모습에 분노한 건 오히려 나였다.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어 장치가 멋대로 움직였습니다.”


“하…. 여기까지만 하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까의 그림이었다. 눈이 망가진 타즈를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작업실로 향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스탕달 증후군이 도졌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엎드렸다. 숨이 잠깐씩 멈추는 것 같았다. 이런 순간도 아까웠다. 수첩을 꺼내 스케치했고 아크릴판과 화구를 준비해 그리기 시작했다.


나흘 동안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내가 여태까지 그렸던 그림과의 차이점은 명확했다. 한 가지도 빠짐없이 모든 물감을 사용했으며 제일 손이 많이 갔다. 완성된 작품은 감히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평가할 수 없었다. 그 그림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절도 해보고 기도도 했다. 이런 재능을 어떻게 나에게 주지 않았을까, 창문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하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3차 비엔날레도 대상도 나의 것이었다.


최종 비엔날레가 끝나기까지 이틀이 남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대상은 포기하고 금, 은, 동상을 노렸다. 하지만, 많은 작가가 참여한 만큼 참가에 의미를 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림을 완성하고 제출하기 바로 전날 연회장에서 샴페인을 즐겼다. 누군가가 속삭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여러 작가가 다가와 내게 묻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김서훈 작가님. 그림은 완성하셨는지요?”


전혀 질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질 자신이 없었다. 그 그림은, 이 세계에서 나밖에 그릴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번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겠나?”


그러면 작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럼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좋은 분위기에 고급 샴페인에 곧 있으면 얻을 명예 위치까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고있었다. 타즈는 아마 이번 비엔날레의 주인공이 절대 되지 못한다. 절대로.


작품 제출 당일 그림을 포장하고 관계자들에게 건넸다. 이제 하루만 기다리면 된다. 단 하루만 버티면 세계에서 거장을 능가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 모든 미술을, 나를 동경하게 될 것이다.


작품 제출 당일은 외출이 불가했다. 1차 비엔날레까지만 해도 답답함이 가슴 속을 쓰라리게 후벼팠는데 지금은 창문에 들어오는 바람만 맞아도 시원하다. 밖의 풍경은 삼 주가 지났으니,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진입했다. 하얀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나의 영광에 축복을 주는 듯했다.


3차 비엔날레가 시작됐다. 밖에서 평가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구급차 몇 대가 건물 앞에 세워지더니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평론가들이 공황발작을 일으키며 실려 갔다. 그들의 특징은 바로 스탕달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진정한 그림 아니, 그림을 뛰어넘어 극한의 탐미주의의 예술을 탄생시켰다. 스스로 엄청난 쾌감이 터졌다. 빨리 다른 작가들에게도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 입장의 차례가 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줄이 멈추었다. 이번에도 몇몇은 공황발작을 일으키며 구급대에 실려 갔다. 쓰러지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결국, 뒤에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끌어졌다.


타즈는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형편없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무슨 의도로 저렇게 미술이라고도 불릴 수 없는 작품을 출품했을까 싶었다. 내가 기이하게 계속 쳐다보자 타즈가 말했다.


“제 그림입니다.”


여태까지의 그림 실력이 저렇게 발산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혀를 한 번 찼다.


“쯧.”


타즈는 내 그림을 보았다. 감정이 없는 AI답게 그림을 감상하는 게 아닌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들으라는 듯이 사용된 물감, 붓질 등의 정보들을 말했다. 그것을 무시하고 내 그림을 보았다. 다행히도 미리 완성작을 보았기에 공황발작은 일어나지 않았다.


타즈는 계속해서 옆에 지껄이다가 어느새 멈추었다. 그러더니 사람으로 치면 심장 같은 부위에 홀로그램이 재생되었다. 그 홀로그램은 내가 타즈를 가르칠 때 그려진 그림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장 그 부품을 부쉈다. 조각들을 모아 작업실로 가져가 복원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해체하고 몇몇 개는 혹시 몰라 입에 넣어 삼켰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진정이 되니 누군가 내 문을 두드렸다. 엄청난 중압감과 긴장감이 몸을 맴돌았다. 오싹하고 닭살이 돋았다. 문을 열자, 관계자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죠?”


“김서훈 작가님은 타즈를 파손했습니다. 대표님이 말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아까 그 홀로그램만이 지나쳐갈 뿐이었다.


“그래요. 뭐. 가죠.”


어떻게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도착해 보니 실험실 같은 곳이었다. 책상에 명패를 보고 섬짓했다.


‘대표이사 타즈’


천천히 시야를 위로 옮겼다. 내가 본 건 사람이 아니었다. 타즈였다. 무슨 상황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 그것이 입을 뗐다.


“저는 예술을 하고 있나요? 작가님은 과연 사람일까요?”


도망쳤다. 뛰고 뛰고 또 뛰었다.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고 작업실로 향했다. 누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아…. 그게 아니라. 이번에 3차 비엔날레 포함해서 대상의 발표가 연회장에서 진행해서요….”


그래. 타즈의 태도로 보아 그림에 관해 기억이 삭제된 것이 분명했다. 이마의 흘린 땀을 소매로 닦고 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요즘 며칠을 그림 때문에 계속 고생하다보니 신경이 좀 날카로웠네요. 가시죠.”


연회장에 도착했다. 장려상, 동상, 은상, 금상이 발표되고 마지막 대상이 남았다. 작가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고 그 시선에 맞추어 일어날 준비를 했다.


“대상은 김서훈 작가님입니다!”


단상 위에 올라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댔고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손뼉 치는 소리가 멈출 때 다시 한번 더 들려왔다. 연회장의 문을 열고 타즈가 들어왔다. 분명 가슴에 없어야 할 부품이 있었다. 침이 말랐다. 몇 초가 몇 분처럼 흐르는 듯 했다. 타즈가 말했다.


“축하합니다. 김서훈 작가님. 그런데 이 상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류 예술가의 대표로서 이 트로피를 보고 있는 모든 분에게 바칩니다. 주인공은 우리인 사람입니다!”

***


몇 년이 지나고 은퇴 후 안정을 취했다. 밖의 정원에 나가서 꽃에 물을 주고 잠시 산책을 했다. 우편 하나가 문고리에 꽂혀있었다. 요즘 시대에 누가 우편을 보내나 싶어 발신자를 보았다.


‘타즈’


봉투를 조심히 열었다. 그림 한 장이 보였다. 시야 정보가 뇌에 들어오는 동시에 그곳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그러자 가사 도우미가 달려와 나를 일으켜 정원 의자에 앉혔다. 종이는 바람을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프린터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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