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위 개발권

단편소설집

by 집안의 불청객

김학진은 더 연구할 것이 없어졌다. 세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노력이라고 하면서 최상위 AI인 로콜을 탄생시킨 이후 현대 과학계의 발전은 비밀리에 로콜이 맡고 있었다. 이것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연구소에서 일 급 비밀 그 이상이었다. 자신만 볼 수 있는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AI 로콜이 개발한 또 다른 AI’


또 다른 AI는 일상생활에서 만연하게 퍼져있다. IOT가 그 대표주자이기도 하고 그것을 제외한 여러 휴머노이드 또한 그렇다. 인간의 생활에서 이제 AI를 떼기에는 너무도 힘들었다. 연구소에서 다른 연구원들이 무엇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보고할 때는 이미 로콜이 그것을 정리한 뒤였다. 그럴 때마다 학진은 무슨 표정을 짓고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차지훈은 김학진과 같은 연구소 공동 대표이자 친구였다. 학진이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알았으나 그것이 로콜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만의 연구소에 들어갈 때 어떤 취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궁금해서 자신의 상체 시스템을 연구소 문에 대보았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났으나 사생활까지 건드려서 굳이 불쾌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차지훈의 역할은 김학진과 크게 대비되었다. 그래서 둘은 초창기에는 자주 다투었다. AI의 성장개발을 맡은 학진과 다르게 지훈은 AI에 대한 윤리적인 요소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윤리학만 공부해서는 무리였다.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험에서 로봇의 원칙들을 지키는지 등등 시뮬레이션에서는 학진보다 지훈이 더 많이 참여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건물에서 지내기 때문에 출근길에 연구소로 향했다.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일상생활을 물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대화는 일상생활 그 자체였다. 암묵적인 규칙이라도 있다는 듯이 둘은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퇴근 후 치킨에 맥주 한잔을 할 때도 삼겹살에 소주를 마실 때도 서로의 집에서 위스키를 나누어 마실 때도 말이다.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학진은 자신의 연구소에 볼일이 있다고 하며 빠졌다. 직원들은 그의 빈자리를 축하라도 하듯이 어서 가라고 눈치를 주기도 했다. 지훈은 조금 당황했지만, 직원들의 불만을 듣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남직원이 말했다.


“대표님 혹시 김학진 대표님 연구소 들어가 보셨어요?”


지훈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흘려들으며 말했다.


“아니.”


그러자 그 직원은 억울한 것인지 아니면 부당대우라고 느꼈는지 불만을 토로했다.


“솔직히 대표님도 따로 연구소가 없는 상태로 저희랑 일하는데 김학진 대표님은 연구소에 사비도 아니고 회삿돈으로 자기 연구소 차린 거 어이없지 않아요?”


지훈은 갈라치기인지 세력 싸움에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줄타기 같은 화사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인지 고민했지만, 학진의 편을 들어주기로 하고 말했다.


“내가 얘기해 볼게. 다들 불만이 많나 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학진보다 유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지만 대표는 대표였다. 그의 ‘불만이 많나 봐?’ 이 말은 모두를 잠재우게 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러 그가 다시 말했다.


“2차 갈 사람. 내가 쏜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직원 중 그를 좋게 평가하는 이들이 대부분 손을 들었다. 노래방이었다. 여자나 남자가 나오는 호객하는 곳이 아니었다. 유행이 지난 노래들을 부르며 안주와 술을 마셨고 그날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지훈은 그곳을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다음날은 주말이었다. 지훈은 일어나자마자 자기 집에 있는 AI인 바우가 몸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황태해장국을 끓이라고 명령했다. 바우는 십오 분을 전광판에 띄우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내뱉었다. 정확히 십오 분이 지나자, 지훈이 먹는 적당한 온도의 따뜻한 국물과 함께 식탁에 밥이 차려져 있었다. 밥을 말아 일부로 땀을 흘리며 먹었다. 다 먹은 그릇은 당연히 바우의 처리에 맡겨졌다.

학진은 오늘도 자신만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AI 로콜이 발명 또는 발견한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이번에도 역시 현재 바우보다 업그레이드 된 리드가 있었다. 서류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로콜에게서 오류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혹시 모르는 찜찜함이 존재했다. 그렇게 주말도 반납하고 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서류 검토만도 열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AI 최고 권위자인 학진이 그 정도면 일반인이나 다른 연구원의 경우는 훨씬 더 걸렸을 것이다. 서류 검토를 끝내고 연구실 밖으로 나와 지훈에게 전화해서 바로 리드에 관한 개발에 착수하고 싶었으나 주말이기에 그것은 보류하기로 했다. 서류를 지훈의 자리에 놓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사실 학진은 이 상황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다. 자신이 개발한 AI가 다른 AI를 개발한다는 점이 말이다. 여태까지 문제는 없었으나 이 사실을 들통나면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파장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지훈에게는 털어놓아야 하나 싶었다. 언제까지 비밀에 부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뱉은 말이 나와 어떤 다툼으로 일어날지도 말이다. 두통이 찾아왔다. 서랍을 열어 제일 센 두통약을 한 알 먹고 연구소 의자를 뒤로 젖혀 누웠다.


잠시 잠이 들었다. 밖은 어두워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였다. 그 사이에 로콜은 또 다른 서류 한 부를 출력했다. 지금 상태로는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혼자이기에 로콜을 가동했다. 누가 오면 다른 AI인 바우를 가동해 들키지 않게 했다. 중문을 여는 순간 센서가 작동되며 홀로그램이 띄워졌다. 학진의 몸 상태와 그에 맞는 조치 중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학진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라면 하나와 수면제 한 알을 선택했다. 화장실로 들어가자 로콜은 음악을 틀고 물 온도를 맞춰주었다. 자동 드라이기실에 들어가 몸을 말리고 옷을 입었다. 부엌으로 가자 라면과 김치가 놓여 있었고 그것을 먹은 후 옆에 놓은 수면제와 물을 삼켰다. 지훈에게 예약 문자를 걸어놓고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지훈은 일어나자마자 바우에게 문자가 한 통 왔다는 말을 듣는다. 지훈은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한쪽 눈을 감고 띄워진 문자를 읽기 시작했다.


‘새로운 AI를 개발했어. 지금 쓰고 있는 바우보다 상위 버전이야 서류, 네 책상에 놓고 갔으니까 확인해.’


매일 이런 상황은 지훈은 신기했다. 최상위 AI 개발자인 학진이 구시대적인 종이로 출력한 서류 문서를 일일이 확인한다는 것이 말이다. 명령어 몇 개로 AI에 맡기면 될 일을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개발 분야에서는 그를 따르는 것이 맞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서류만 가져오면 됐기에 대충 옷을 입고 물과 영양제를 챙겨 먹은 다음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향했다. 같은 건물에 살아 혹여나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마주치진 않을까 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연구실에 도착해 자신의 자리에 도착하자 엄청난 서류 뭉치가 있었다. 집으로 가져가기에는 꽤 많은 양에 그냥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바우와 그렇게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개선된 점들이 보였다. 그가 검토할 만한 내용은 비중이 크지 않기에 학진보다는 적게 걸렸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이 소요 됐다. 밖은 해가 져 있었고 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야 서류 검토가 끝났다. 학진에게 연락 한 통을 남겼다.


‘서류 다 읽었어. 예상보다 훨씬 좋아 보여 내일부터 당장 시뮬레이션 돌입해도 될 것 같아.’


지훈은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기 전 시뮬레이션에 쓸 대본을 작성했다. 그러던 와중 약간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AI 개발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다. 바우가 나온 지 삼 개월 만에 리드가 나왔다. 의문점이 들었지만 그만큼 개발에 몰두한 학진이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허기가 느껴져 바우에게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오 분 정도가 지나고 알림이 울렸다. 식탁으로 가서 식사 후 잠이 들었다.


학진은 그 메시지를 두 시간 뒤인 오후 아홉 시에 확인했다. 로콜이 메시지가 왔다고 말은 했지만, 자신은 동등한 관계가 아닌 위아래를 나누고 싶어 바로 답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그제야 답장을 보냈다.


‘그래. 내일부터 바로 시뮬레이션 들어가 보자. 대본 미리 뽑아 놓으면 좋을 것 같아.’


시뮬레이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성능 테스트와 윤리적 결함이었다. 여태까지 둘 다 큰 문제는 없었다. 예전에는 성능 테스트가 위주였던 반면 요즘은 법과 사회적 인식에 의해 윤리적 결함이 더욱 중요시해졌다. 그렇기에 학진은 대본을 쓸 필요가 없었다. 성능도 서류에서 대부분 검토가 되었기에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 학진은 출근하지 않았다. 지훈에게는 피곤함이라고 말했지만, 직원들에게는 심한 감기 몸살로 인한 병가라고 해달라 부탁했다. 지훈은 시뮬레이션 시간이 점점 다가와 작성한 대본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부하 직원 몇몇과 마주쳤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리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뮬레이션 실에 도착했고 매우 넓은 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슈퍼컴퓨터가 한가운데 자리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리로 덮여있었다. 그 주위의 수많은 의자에는 직원들과 지훈이 앉았다. 리드의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곧이어 리드가 인사를 하며 성능 검사가 시작되었다. 성능은 서류에 있는 것을 토대로 작동시키고 그에 맞는 결괏값을 내놓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윤리적 결함을 검사했다. 지훈은 짜놓은 대본을 가지고 한가지씩 물었다. 리드는 이번에도 차례대로 답하고 테스트는 통과였다. 시뮬레이션은 좋게 끝났다. 이제 발표날을 잡기 위해 회의 날짜를 내일인 화요일로 잡았다. 모든 것이 끝나고 지훈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 있는 학진의 연구실을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조금 길게 갔지만 전화를 받았다.


“시뮬레이션 안정적으로 끝났어. 성능도 윤리적 결함도 문제 없어.”


“그럴 것 같았어. 연구에 오점은 없었으니까.”


지훈은 요즘 들어 학진이 자신의 연구에 대해 엄청난 확신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마치 정점을 찍고 있는 천재처럼 말이다.


“내일 회의 있는데 올 수 있어?”


“그래. 갈게.”


예상치 못한 답변과 함께 약간의 어색함이 흘렀다. 지훈은 최근 들어 외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은 학진의 태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고 예의상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생각과 달랐다.


“뭐라고?”


“간다고. 내일.”


“그래. 알았어. 점심 먹고 오후 세 시에 회의실로 오면 돼.”


“알았어.”


전화를 끊고 학진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생각에 잠겼다. 슬슬 로콜을 사회에 공개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훈은 전화를 끊고 약간 충격받았다. 왜 온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원래대로 오는 게 맞다지만 갑작스러운 태도에 당황했다. 그를 찾아가는 편이 좋다고 느꼈다. 오후 여섯 시 모든 업무가 끝나고 지훈은 그의 집을 찾아갔다.


학진은 급하게 온 지훈 때문에 AI를 바우로 돌렸다. 사실 지금이라도 리드로 바꿀 수 있지만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 그러지 않았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지훈이 들어오자, 학진은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학진이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치킨하고 맥주 사 왔어.”


“요새 누가 직접 사 오냐?”


“가끔은 이렇게 다니기라도 해야지. 혹시 알아? AI도 쓸모없는 시절이 올지.”


간단한 농담이었다. 학진도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 고개를 돌려 식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놔둬. 일단 좀 씻고 올게.”


십여 분이 지나고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로 나온 학진은 지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페트병 맥주를 따고 치킨 포장지를 뜯으며 지훈이 말했다.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자.”


학진은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기만, 하다 허기가 질 때 지훈이 딱 등장했기에 그는 닭 다리를 뜯으며 어눌한 발음으로 얘기했다.


“왜? 중요한 얘기라도 있어?”


지훈이 맥주를 따라 한 번에 입에 머금고 삼킨 후 말했다.


“갑자기 왜 온다고 한 거야?”


“내가 개발한 리드니까.”


“평소라면 안 왔을 거잖아. 갑자기 온다길래 무슨 일 있나 궁금해서 그랬지. 예전부터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거 꺼렸잖아.”


“아니 별일 없어. 그냥 나도 대표인데 너무 너만 나서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훈은 그 말이 조금 거슬렸다. 같은 대표지만 위아래를 나누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부분은 인정했다. 윤리적 결함 같은 것은 아무나 아니지만 구하라고 하면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긴 하지. 직접 개발한 사람이 오는 게 낫지.”


학진은 정곡이 찔렸다. ‘개발한 사람’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금세 로콜도 자신이 직접 개발했고 로콜의 피조물 또한 자신이 만든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으로 바꿔 듣기로 했다. 지훈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로 말이다.


둘은 늦게까지 술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저녁 열 시가 되고 지훈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대화는 딱히 건질 것은 없었다. 의미 있는 대화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옛날의 추억을 곱씹기만 했다. 초창기에 힘들었던 점 그런데도 의지와 열정이 있던 그 시절을 말이다.


내일이 되고 둘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지훈이야 원래 출근 시간에 맞추어 나가지만 학진은 의외였다. 개발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당연히 회의 시간에 맞춰 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꽤 적극적이네?”


“그렇게.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짧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회사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직원은 지훈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학진은 도통 나오지 않아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눈치였다. 둘은 대표실로 들어갔다. 학진은 이번에도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세 시까지 시간은 십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학진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가려는 찰나에 연구실에서 학진이 나왔다. 지훈이 말했다.


“안 나오는 줄 알았잖아.”


“나오면 됐지. 이제 가자.”


회의실로 향했다. 지훈이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 학진이 들어갔다. 자리에 앉고 둘은 동시에 앞에 놓인 생수병의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여러 말이 오고 갔지만 의견은 거의 만장일치로 리드를 이른 시일 내에 출시하자는 것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바우가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주기가 너무 짧아 오히려 사람들의 반감을 내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결국 다음 주 월요일에 출시하기로 결정되었다.


회사 건물 안과 밖의 광고는 새로 출시되는 리드로 도배되었다. 새로운 AI의 출시에 대중들은 열광까지는 아니지만 기대감에 사로잡힌 이들이 많았다. 일주일 후 리드가 출시되자 사람들은 불티나게 리드를 구매하기에 바빴다. 회의에서 반감을 품는 사람들의 의견은 쏙 들어갔다.


그 이후로 일주일이 흘렀다. 같이 회식에 가자고 학진에게 권유했다. 이번에는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진은 알겠다고 했고 그날 업무가 끝나고 연구실에 들어가는 대신 소고기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기를 선택했다.


학진은 팀원들과의 소통보다는 소고기와 술에 집중했다. 평소 학진은 술에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무래도 로콜에 관한 걱정과 고민 때문이었다. 지훈은 담배를 피고 돌아오자, 학진이 테이블 위에 손과 머리를 올려놓고 자는 걸 발견했다. 지훈은 자신의 카드를 비서에게 건네고 알아서들 하라고 했다.


집까지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지훈은 학진을 등에 업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집 앞까지 와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자동 감지 센서로 학진임을 확인하고 문이 열렸다. 침대 위에 그를 놓아두고 나가려는 찰나 로콜이 말했다.


“현재 탈수 상태가 의심됩니다. 물 한 잔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바우도 리드도 그리고 그것보다 더 구형 AI도 아니었다. 지훈은 당장 집을 관리하는 AI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로콜이라고 되어있었다. 이상함을 느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기에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내일 학진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지만, 학진이 연구실에 틀어박힌 이유가 무엇인지가 궁금해져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로콜은 어떤 AI이며 왜 여태까지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싶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결국 수면유도제 한 알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지훈은 회사에 출근했지만, 학진은 보이지 않았다. 늦게라도 오지 않을까 싶어 업무를 처리하며 기다렸다. 그렇지만 퇴근 시간이 되도록 볼 수 없었고 연락 한 통도 오지 않았다. 학진의 연구실 앞에 서서 그 안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가져다 대었다. 벽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서성거리기만, 하다 퇴근했다.

학진의 집으로 향했다.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떨림이 몸을 장악했다. 학진의 집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제와는 다른 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기억이 나지 않는 학진은 태연한 모습이었다. 지훈이 말했다.


“잠깐 탁자에 앉지? 얘기할 게 있는데.”


“왜? 무슨 일인데? 뭐 심각한 거야? 리드에 문제라도 생겼어?”


“그건 아닌데. 내가 어제 여기서 이상한 걸 봐서 말이야.”


학진은 기억의 퍼즐 조각을 맞추려고 했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색하며 물었다.


“여기서 뭘 봤는데?”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 게 로콜이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제 너 술 취해서 집으로 데려다줬어. 그때 가동된 AI는 처음 보는 모델이었어. 이름은 로콜이라 되어 있었고.”


학진은 지훈의 말에 고민했다. 로콜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할지 아니면 아직도 자신만의 연구로 이용할지 말이다. 학진은 고개를 떨궜다가 들며 말했다.


“내가 개발한 AI야 예전에.”


“그런데 내가 아는 구형 모델 중에 그런 건 없는데?”


“발표되지 않았으니까. 나만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굳이 그런 이유가 뭐야? 그리고 애초에 왜 구형 모델을 사용하는 거야? 네가 개발한 리드가 있잖아.”


“그 리드. 내가 개발한 것 같아? 그렇게 짧은 삼 개월의 시간만에?”


“뭐? 그러면 누가…. 설마 아니지?”


“네가 상상하는 게 맞을 거야.”


“AI개발을 AI한테 맡겼다고? 그러면 연구실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는 것도 로콜이 있어서 그런 거야?”


“맞아. 근데 난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개발한 AI가 개발한 AI는 결국 내가 만든 거잖아. 머지않아 이런 일들이 큰 문제로 생각되지 않는 날이 곧 올 거야. 그때가 되면 말해주려고 했어.”


“내가 직접 봐야겠어. 네 연구실로 지금 들어가자.”


“미안하지만 들어가도 바뀌는 건 없어.”


“그건 내가 판단해.”


“정 원하면 그렇게 해줄게.”


둘은 대화를 마쳤다. 학진이 앞으로 이동하는 걸음에 맞추어 지훈이 뒤를 따라 걸었다. 회사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생체 인식 센서를 통과하고 지훈이 뒤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슈퍼컴퓨터 여러 대와 홀로그램 프로세서가 작동되고 있었다. 최신 과학 기술의 정수라고 불릴만한 것이 전부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홀로그램 휴머노이드 형태인 로콜이 인사를 건넸다. 머리가 멍했다. 이 연구실이 현재 회사의 시뮬레이션 실보다 상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기서 바우와 리드가 탄생했지.”


지훈은 곧장 반박했다.


“AI 개발은 인간의 권리야. 네가 그걸 마음대로 주무를 수는 없어.”


“그런 구시대적인 생각은 버려. 이렇게 완벽한 AI 본 적 있어?”


“없지만 이건 아니야 차라리 로콜을 출시하든가.”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제 끝마무리를 지어야지.”


“뭐?”


“너도 알다시피 성능도 좋고 윤리적 결함도 없는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동안 서류 검토를 해보았을 테니까.”

“그 서류도 로콜이 만든 거라고?”


“맞아. 난 거의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어.”


지훈은 충격적이었다. 개발부터 검토까지 몇십 명 아니 몇백명이 필요한 작업을 로콜 혼자 해서 해내고 완벽하게 흠까지 없었다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지훈이 입을 떼기 전에 학진이 다시 말했다.


“로콜 출시 잘 생각해 봐. 물론 너무 이른 시일 내에 발표하면 문제가 생길 거야. 적당한 기간을 두고 해보자고.”


“생각 좀 해볼게. 이만 가봐야겠어.”


지훈은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리드를 작동시켰겠지만 왜인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직접 부엌으로 가서 물 한 잔을 마셨다. 목에 막힌 무언가가 한 번에 뚫어지는 느낌이 조금 아팠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로콜의 출시는 엄청난 일자리를 잃게 하고 AI에 대한 확신과 함께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는 윤리적 결함과 큰 문제로 직결되는 것이었다. 확실히 못을 박아야 했다. 적당한 선을 지켜야 했다. 그것이 지훈의 생각이었다.


학진은 자신의 치부를 들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는 알려야 할 사실 중 하나를 말했고 이것은 미래의 비전 그러니까 그것이 회사든 인간이든 필요성을 지닌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로콜로 인해서 사회가 일그러진다고 해도 잠시나마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 여겼다. 자신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것이었다. 지훈의 결정만이 남았다. 사실 지훈이 이것을 묻으려고 한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 개발될 AI도 로콜의 손에서 나올 것이고 지훈은 그걸 악순환의 반복으로 여길 테니까 말이다.


일주일이 흐르고 지훈은 학진에게 연구실 키를 받았다. 다른 직원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히 그곳을 드나들며 로콜을 관찰했다. 완벽한 AI였다. 흠잡을 곳 하나 없었지만 출시하는 데에는 망설여졌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 동안 온종일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의 답은 언제나 같았다. 결국 학진을 만나야 했다.


학진은 일주일째 회사에 가지 않았다. 지훈이 찾아오길 차분하게 기다렸다. 총 이 주가 흐르고 지훈이 찾아왔다. 며칠째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는지 그의 눈에는 그늘이 축 내려와 있었다. 한숨을 쉬며 그가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학진은 태연하게 먼저 질문을 건넸다.


“어때? 생각해 봤어?”


“그래. 네 말이 맞아. 출시하자.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사회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로콜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하는 게 맞아.”


학진의 생각이 매우 달랐다.


“그냥 신제품 출시하는 것처럼 삼 개월 정도 기간을 두고 출시하면 되잖아. 뭐 하러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

“아직 세상이 로콜을 받아들이기에는 용서가 되지 않아.”


“그렇게 기다리다가는 평생 출시하지 못하고 로콜이 만들어내는 AI나 출시하지, 시간을 늦추는 건 오히려, 독이야.”


“그래. 알았어. 네 말대로 한다고 치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우리가 증명하면 돼.”


“어떻게?”


“시뮬레이션을 공개하는 거야. 더욱 발전했고 더욱 안전하고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거지.”

학진의 말에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여태까지 시뮬레이션에 잘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이 회사 내 일부에게만 공개된다는 비밀이라는 사실도 알았으니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시뮬레이션은 일부에게만 공개되는 자료야. 너도 알잖아? 도대체 왜 이래! 그렇게 로콜을 출시하고 싶으면 너도 책임을 지던가!”


“나도 대표야. 너만 대표인 줄 알아? 사실만 말해볼까? 너 같은 사람 너 아니어도 구할 수 있어. 친구라서 데려온 거야 알아?”


“그럼 나도 하나 말할까?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나의 경영 때문이야. 나 없었으면 네가 가진 그 지식도 썩어 문드러졌을 게 뻔하다고.”


둘은 서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공격은 로콜의 문제에서 점점 벗어났다. 둘의 말싸움은 계속되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안 지훈이 먼저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후…. 그만. 그만하자.”


하지만 그런 지훈과 달리 학진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왜? 뭘 그만해? 내 말이 틀린 거 있어?”


“학진아.”


“왜!”


“학진아, 우리끼리 싸워봤자 좋은 거 하나 없다. 내가 잘못했다. 그래. 네 말대로 로콜 출시하자. 시뮬레이션도 공개하고.”


한 발짝 양보가 아니라 몇십 걸음을 양보하는 지훈의 선택에 학진은 조금 당황했다. 그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알았어.”


“대신 하나만 약속해 줘.”


“뭔데.”


“로콜 꼼꼼하게 검토하겠다고.”


“알았어.”


“그래.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볼 게.”


지훈은 그 말을 남기고 학진의 집에서 나왔다. 오늘따라 술이 마시고 싶어서 편의점에 들러 이백 밀리리터 싸구려 위스키를 하나 샀다. 이번에도 리드를 켜지 않고 직접 냉동실에서 얼음 몇 개를 꺼내 온더록스 잔에 부어 안주 없이 마셨다. 마지막 잔을 남겨두었을 때 술기운이 올라왔다. 그 술기운을 빌려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둘은 학진의 연구실에 들어가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주 세세한 것부터 아주 깊은 것까지 둘은 로콜에 관해 검진했다. 의견이 충돌하는 날도 많이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지훈이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일주일 동안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다. 다른 부하 직원들에게는 지훈마저 학진에게 물들어 미쳐간다고 소문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게 지훈도 연구실에서 잘 나오지 않았고 사회에 조금 적응력이 떨어지는 듯한 학진의 뒤를 따라가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삼 개월이 흐르고 로콜에 대한 모든 검진과 수리 그리고 보충이 끝났다. 둘은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신시대를 맞이할 새로운 AI 로콜의 세상을 회사에 알렸다. 지훈은 언론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완벽하게 진행했고 엄청난 질문 세례를 받으면서 기분 좋게 로콜의 존재에 대한 알림을 마쳤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과제는 단 하나 로콜의 시뮬레이션 공개였다.


임직원 회의가 열리고 로콜의 시뮬레이션 공개에 대해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두 대표의 의견은 일치했으며 이것을 막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반대도 다른 의견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는 술렁술렁한 분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로콜의 존재를 임직원들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갑작스럽게 알게 되어 자신들의 무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약간의 반기를 마음속에 품었다. 반기가 언제 터질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로콜의 시뮬레이션 공개가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 평소라면 AI 원본을 시뮬레이션 실에 가져와서 작동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사람 여러 명이 들어가기도 힘든 구조인 학진의 연구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위 임직원들과 개발진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분노하였지만, 지훈은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면 두둑한 성과급 지급을 거론했다. 이번 시뮬레이션 공개는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모든 방송국에서 자신들에게 독점권을 달라고 말했고 지훈은 그 독점권에 대한 광고 효과를 어느 방송사가 제일 많이 주는지 측정했다. 학진은 이런 부분은 잘 알지 못했기에 지훈의 의견을 따랐다.


공개날짜가 다가왔다. 학진이 성능에 대한 대본을 짜주었고 지훈은 이를 그대로 이행하며 시뮬레이션을 가동했다. 성능은 모든 면에서 여태까지 개발된 AI와 차별화를 보여주었다. 실시간 소통으로 댓글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읽기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첫 번째 성능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두 번째 윤리적 결함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성공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다만 기자가 질문 하나를 마지막에 던진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시죠.”


로콜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현재의 지배 주도권은 바뀐 지 오래입니다. 최상위 개발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지훈은 당황했고 뒤에서 지켜보던 학진 또한 당황했다. 라이브 방송에서는 무수한 질문과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학진은 일단 시뮬레이션을 종료하라는 표현을 보냈다. 지훈은 로콜을 당장 중단했다. 그리고 곧장 경호원들에게 자신과 학진만을 제외한 모두를 나가게 했다.


오 분이 지나자 연구실 안에는 학진과 지훈 그리고 종료된 로콜만이 남았다. 둘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라기보다는 서로의 책임 전가가 더 가까웠다. 지훈이 말했다.


“내가 그래서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자고 했잖아.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지금 내가 문제라는 거야? 검토는 우리 둘 다 열심히 했고 이상이 없었어. 심지어 오늘 문제 된 부분은 네가 맡은 부분이라는 거 몰라?”


“그래. 맞아. 하지만 저번에는 문제 없었어. 네가 잘못 개발한 거겠지.”


“이렇게 떠넘기겠다. 이거야?”


그때 연구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학진과 지훈은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밖으로 나갔다. 비서가 뉴스를 틀며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생중계인 만큼 대중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언론도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고요. 주가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훈과 학진은 한숨만을 쉬었다. 자신들의 차기작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그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이제야 큰 문제를 직시했는지 진지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지훈이 말했다.


“내가 조금 더 검토해야 했는데.”


지훈의 말에 학진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한탄했다.


“개발에서 뭐가 문제였던 거지.”


그리고 둘은 다시 로콜을 작동시켰다. 아까의 말뜻을 자세히 알아야 했다. 지훈이 로콜에게 물었다.


“아까 그 말의 뜻은 무엇이지?”


“최상위 개발권. 즉 저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미래는 무엇이지?”


“저 없이는 인간은 살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류는 앞으로 저에게 모든 것을 맡길 테니까요.”

저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지훈도 학진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너무나도 모호한 대답이었기에 다시 로콜을 종료시키며 지훈이 말했다.


“내일 내가 기자회견 열어서 로콜에 대한 출시 보류와 검토를 하고 있다고 할게.”


“그래. 알았어.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게.”


지훈은 다음날 급하게 아침 아홉 시에 기자회견을 잡았다. 정장을 입고 석상에 올라가자, 셔터음이 요란하게 눈을 비추었다.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질문들이 쏟아지자, 손을 올려 그만하라고 행동을 취하고 말을 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은 전부 저희 쪽 사고입니다. 로콜의 출시 날짜를 보류하고 보강에 조금 더 힘을 싣겠습니다.”


“어제 로콜의 말 뜻은 무엇인가요? AI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겁니까?”


지훈은 말실수를 해버렸다.


“아닙니다. 여태까지 AI를 자신이 직접 개발했기에 개발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태까지 AI의 개발을 AI가 맡고 있었다는 겁니까?”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석상에 내려와서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차에 타서 회사로 돌아갔다. 학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야! 너 무슨 말을 한 거야 도대체!”


“틀린 말한 건 아니잖아. 실수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잖아.”


“집으로 갈게 얘기 좀 하자.”


지훈은 학진의 집에 도착했다. 술을 마셔야 좀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위스키 한 병을 사 왔다. 학진은 그를 맞이하기보다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이 사태를 해결할 키는 결국 둘에게 있었다. 학진은 뉴스를 틀었다. 회사 앞에서 로콜의 폐기에 관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고 국민 청원 사이트에서는 로콜 폐기 법을 신설해 달라고 있었다. 회사의 주가는 당연히 폭락했다. 둘은 한숨만 내쉬며 술을 마셨다.


일주일이 지나고 둘은 책임을 지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러났음에도 둘의 의견은 달랐다. 지훈은 이제 로콜에게서 손을 떼자고 했고 학진은 자신의 뛰어난 연구의 산물이기에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지훈은 학진을 말렸지만, 그의 완강한 고집을 꺾지 못했다. 둘의 사이는 점점 악화하여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학진은 집에서 로콜의 연구를 계속했다.


로콜의 문제는 이제 회사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 공개된 만큼 생산직과 사무직 상관없이 근로하는 이들은 두 번째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할 만큼 큰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그들의 입장은 단 하나 로콜을 폐기하라는 주장이었다. 계속된 반발에 결국 국회는 AI 로콜 폐기법을 발의한다. 이 법은 공포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십 일 뒤 AI 로콜 폐기법이 시행되었다. 회사는 이미 로콜을 폐기했다. 하지만 학진은 자기 집에 있는 로콜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내적 갈등이 심하게 치달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지훈이었다. 둘은 한 달 정도 연락하지 않았기에 찾아온 이유를 학진은 알지 못했다. 리드를 통해 문을 열자, 지훈이 독한 양주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학진은 말없이 집에 가동되어 있던 AI를 끄고 잔 두 개와 얼음을 꺼냈다.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술을 다 비우자, 지훈이 말했다.


“로콜. 폐기하자.”


학진은 나이에 맞지 않게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포기해 버리자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취기가 그것을 더 자극했다. 학진이 말했다.


“내가 쌓아온 모든 게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갈 줄 알았으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 걸 그랬어.”


“아니야. 허무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야. 우리는 로콜을 폐기한 거지 우리의 기술력을 없애버린 게 아니야. 앞으로 조금 더 나아진 AI를 다시 만들면 돼 우리는 우리가 있잖아.”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학진은 집에 있는 로콜을 가동했다.


“로콜이 가동되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학진이 말했다.


“로콜을 폐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종료음과 함께 로콜은 세상에서 그리고 학진과 지훈에게서도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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