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

단편소설집

by 집안의 불청객

캠프파이어 중 나방 한 마리가 불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타들어 가는 냄새와 소리가 역겨웠다. 구토가 쏠렸고 하수구를 찾았다. 속을 게워 냈지만, 편하지 않았다. 목구멍에 뜨거운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넘기려고 물을 마셔도 음식을 집어넣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숫자의 나방들이 불로 뛰어들었다. 그것들에 불이란 무엇일까, 밝은 이상향을 찾아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것일까. 철학의 재정립이 아니라면 왜 뛰어드는 것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꿈은 사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것을 사치로 만들었다. 나중으로 미루며 일단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공부에 열중했다. 전교에서 상위권 안에 들었고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나에게 모범생이라 말했다.


그때는 그 칭호가 좋았다. 남들과 다르게 특출나다는 장점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외적으로 더욱 노력했던 것 같다. 안이 썩어가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집중해야 할 건 학업과 성품이었다. 좋은 대학이 전부였다고 생각했기에 그것만을 위해 목표를 잡고 방향을 잡고 노력했다.


최상위권 대학을 진학했다. 합격이라고 붙은 화면을 보자마자 거실로 나가 부모님에게 보여드렸다. 생각보다 반응은 덤덤했다. 그때 느낀 약간의 공허감을 무시했으면 안 되었다. 좋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어야 했다.

대학교 OT 날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기에 고등학교 때 입력되었던 것들이 대학교에서도 이어졌다. 달라진 점은 그들이나 선배들과 친해지기 위해 담배를 배우고 술을 마셨다는 점이었다.

그들과 섞이면서 이상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고등학생 때는 내가 제일 위였는데, 그렇기에 이상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날고 기는 애들이 있었다. 단단히 잘못되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첫 학기가 끝나고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부모님은 계속해서 물었다. 학교 생활이 아닌 학교 성적이었다.


“이번에 성적 잘 나올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대답은 해야 했다. 심장과 뇌가 따로 놀았다. 그나마 쥐어짜 대답했다.


“글쎄다.”


그 이후로 말이 없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아버지는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것마저도 눈치가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 짐을 옮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 여섯 시를 가리켰고 어둠이 내리 앉았다.

방은 차가웠고 거실은 따뜻했다. 아니, 뜨거웠다. 부모라는 열기는 나를 덥게 만들었고 혼자라는 고독은 나를 차갑게 만들었다. 핸드폰을 켜서 동기들과 연락한 내용을 쳐다봤다. 대부분 성적에 관한 얘기와 나중에 언제 모일지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과연 이들과 어울릴 자격이 있나 싶었다. 위에서 아래만을 쳐다보던 내가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려니 적응되지 않았다. 어쩌면, 적응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순위만을 매길 것 같았다. 그중에서 나는 몇 등일까. 알고 싶지 않으면서도 알아야 했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간마다 계속해서 생각이 들었지만, 최대한 무시하려고 애를 썼다. 짐을 다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원래 층고가 이렇게 낮았었나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려고 했다. 거실로 나가는 순간 어머니가 잠시 탁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성적은 언제 나와?”


“이 주 뒤에 나와.”


“그래. 그때 말해줘.”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내 생활에 관해 묻지 않았다. 지금의 나를 봐주지 않고 미래의 나만을 바라봤다. 옳은 길을 가라고 인도해 주는 것은 좋았지만, 이대로라면 길을 걷기도 전에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압박감이 느껴졌다. 고등학생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분명 설레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째서 두려움만 남겨진 걸까.


성적이 나왔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기대하지 못했다. 높은 난도의 시험문제 그리고 최상위권 학생들과의 경쟁은 말로 이룰 수 없었다. 처참했다. 평균도 마치지 못한 성적이었다. 주변에서 천재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배반을 느낄 정도였다. 이럴 거면 기대치를 높이지 말지, 실망감만 커질 뿐이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퇴근 후 돌아오는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을 드려야 하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내 편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학부모이기 전에 부모 아니 인가.


그러나 막상 앞에서 성적을 요구하는 부모님을 마주치자, 고개가 자동으로 수그러졌다.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수준이었고 눈은 질끈 감았다.


“삼점영.”


“뭐?”


성적에 관한 대답은 되돌아오는 물음이었다. 마치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들었다. 한없이 작아졌고 수치스러웠다. 사실 지금 와서야 말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최상위권 대학에 합격했을 때 엄청나게 기뻐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두 분 다 의대를 나오시고 대학 병원 교수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당연한 순서 중 하나였고 남들에게 그나마 잘 보이는 시선에 불과할 뿐이었다. 부모님은 마치 계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모아 쓴소리를 뱉어냈다. 사실 쓴소리보다는 자존감을 깎아 먹는 비난에 가까웠다.


목구멍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어떤 단어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이 반쯤 나간 멍한 상태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적막이 두려웠다.


부모님은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마치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아 자신들이 가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나가도 숨통은 조여왔다. 들리는 소리가 없으니, 머릿속에 의문과 생각들이 가득 차버렸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반신이 찌릿했고 마비가 걸린 듯했다. 의무를 저버려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는 압박감이었다. 외롭고 홀로 선 고독을 느꼈다. 내 주변에 나뭇가지를 건네며 잡으라고 말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추락해버리는 게 나을지도. 그동안 키워준 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면 나는 부모에게 어떤 용도나 쓸모가 없어져 버린 걸까.


방 안에서 아무도 없기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닦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몸 안의 울분은 빠져나왔지만, 걱정과 두려움은 그대로 있었다. 그들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공간의 소유는 그들의 것이었고 그들의 영역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버린 게 큰 문제였다. 차라리 야생화였다면 이런 것들은 쉽게 견디지 않았을까 싶었다.


논제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해답을 찾지 못할 때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걷는 소리가 방바닥을 울렸다. 그 소리가 내 문 앞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빌며 자는 척을 했다. 다행히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천장에 그려진 움직이지 않는 구름을 보며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책임 전가를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책임 전가를 했다. 그 둘의 모습이 나를 잘못 키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남 탓에 불과했다. 둘은 합의점을 찾았다. 바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었다. 즉, 두 번째 학기는 공부에만 매진해야 했다. 행사, 생활 이런 것보다 그것이 우선순위여야 했다.


방학 동안 나는 교양, 철학, 언어를 공부해야 했다. 잠시 쉬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이런 것들이 나중에 대학교 수업과 연관되어 있다며 계속해서 책을 가져왔다. 한 권을 읽으면 두 권이 되었다.


웃긴 점은 성적만 오른다면 부모님은 내게 담배를 허락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점점 더 태우다 보니 어느새 하루에 한 갑을 피웠다. 연기를 들이쉬고 내쉴 때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연기가 나 같았다. 우리는 둘 다 자신의 의지 없이 남의 의지로만 움직이고 있다.


이 학기가 되고 동기들과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못하던 중에 동아리 알림 제가 열렸다. 학생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는 도중 글쓰기 동아리에서 무언가를 건넸다. 초췌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며 대충 받고 가방에 구겨 넣었다. 밥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 침대에 퍼질러 누웠다.


그것도 잠시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일정 조건에 반응하는 로봇처럼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고 간 대화는 ‘잘 지내니?’ ‘오늘 어땠어?’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요즘 시험 기간이지?’,‘공부는 잘하고 있니?’ 따위의 말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했다. 꿈속에서도 공부해야 할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고 곧장 책상에 앉았다. 책을 꺼내던 도중 아까 받았던 포스터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포스터에는 글쓰기 동아리. 그 아래에는 작은 목차 비슷하게 ‘감정을 써 내려가 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철학자처럼 고뇌에 빠졌다. 내 감정은 무엇인지 재정립할 수 없었다. 과연 내 마음이 누구의 뜻대로 움직이는 걸까. 현재 나를 정의하면 이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들이 지워지지 않았다. 복잡한 생각은 얽히고설켰고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솔직히 말해서 공부는 학기가 시작되고 압박감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감정의 배출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아리실을 찾아갔다.


중앙 동아리로 지정되어 있기에 규모가 꽤 클 줄 알았으나 실제로 방에 있는 사람은 네 명 남짓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가입 신청서를 쓰고, 얘기를 하려는 그들을 말리듯 재치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뛰었다. 심장박동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고 울렸다. 약간의 어지러움 그리고 흐릿한 시야가 마치 극심하게 불안한 것 같았다. 하지만, 불안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울림이 재미있었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는 단계 중 하나였다.


심호흡하면서 기숙사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자, 호흡이 점점 더 빨라졌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책장을 봤다. 저명한 작가의 소설이 한 권 놓여 있었고 스탠드를 키고 읽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을 덮었을 때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 스탠드 불빛만이 번져있었다. 커튼을 젖히자 어두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초승달이 보였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소설 때문인지 아니면 밤공기의 적적함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의자에 앉고 휴지를 뜯어 눈물을 훔쳤다.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깨어났을 때는 핸드폰에 요란한 알람이 울릴 때였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확인해 보니 단체방에 초대되어 알람이 계속 울렸다. 새로 들어온 나를 맞이해주는 인사와 함께 공지를 확인하라는 방장의 연락이 있었다. 공지에는 동아리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모임, 합평 등이 적혀 있었다. 단체방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았다. 공지를 자세히 읽어보니 다들 수상 경력이 존재했다. 그러한 이유로 수가 적은데도 중앙 동아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받아주었을까 싶었다. 글은 이 주일 후 합평을 하니 일주일 전까지 올려달라고 했다. 모임은 합평과 날짜가 똑같았다.


일주일 동안 수업 후 글을 썼다. 사건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등장인물들도 나의 시선으로 보아도 전부 난잡하고 난해했다. 그렇지만, 겨우 완성했고 오늘까지 올려야 했기에 퇴고할 시간도 없이 업로드했다.


메신저의 연락 옆에 확인하는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긴장했다. 과연 이들이 보기에 내 글은 얼마나 하찮을까. 합평 날짜가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작품도 보았다. 나와는 다르게 가독성도 좋고, 내포된 의미도 확실했다. 방향성 없는 내 글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오후 열 한시가 되었을 때 침대에 누웠다. 눕고 나서 눈을 감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였다.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녔다. 어머니는 통화를 걸자마자 말했다.


“공부 중이야?”


긍정의 대답을 해야 일찍 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부모님에게 아들의 공부 방해는 그들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짓 중 하나였다.


“응. 담배 피우고 와서 방금 앉았어.”


“그래? 알았어. 다행이네. 안부 궁금해서 연락했어. 그럼 공부해 아들.”


“응.”


공부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왠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했다. 두꺼운 전공책과 노트를 폈다. 죄책감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세 시간이 지나고 새벽 한 시가 되었다. 오늘은 공강이기에 늦게 자도 큰 무리는 없었다. 합평 시간도 다른 이들의 수업이 끝난 후인 다섯 시였기에 깊숙한 잠에 들기로 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지만, 일어나자마자 개운함이 느껴졌다. 오후 두 시였다. 이미 읽었지만, 혹시 몰라 다른 동아리원의 작품들을 찍개로 찍었다. 이번 합평에서 작품을 제출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세 명이었다. 다른 두 명에 비해 보잘것없다고 느껴졌고 어떤 혹평이 나올지 몰라 긴장되었다. 도서관의 독서실을 빌려 그곳에서 모이기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 층으로 올라갔다. 사실 기숙사에서만 공부하고 읽은 책이라고는 교과서 밖에 없기에 도서관에 갈 일이 없었다. 생각보다 도서관은 복잡했고 약속 시간에 겨우 맞추어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하필이면 자리가 딱 가운데 하나가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다들 부담이라서 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반강제적으로 앉자마자 각자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그것이 끝나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합평을 시작했다.


세 시간 동안 합평이 이루어졌다. 부담되게도 마지막이 내 차례였다. 사람들의 평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몰라 난해하다는 평가와 오히려 그렇기에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시선이 담겨있다는 평가로 나뉘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낄 여력이 없었다.


두 개로 나뉜 그룹은 서로 양보할 줄 몰랐다. 합평회는 마치 말로 하는 전쟁터로 변했다. 제발 그들이 진정하고 넘어갔으면 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집어서 표현할 때마다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만 있을 때 말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곧이어 조용히 끊겼다. 동아리장이 잔열도 남지 않도록 분위기를 식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내가 나가려는 순간 동아리장은 이름을 부르며 잠시 남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둘만 같은 공간에 남자 그가 말했다.


“사실 우리 동아리는 합평회를 기준으로 여부를 판별합니다. 상훈 님은 좀만 다듬으면 좋은 글을 쓰실 분이라 생각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한 동아리였다. 원래 동아리가 이런 곳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아무튼 합격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 주마다 합평하고 글을 쓰자 실력이 나날이 늘었다. 문예창작학과와도 견줄 만한 정도로 성장했다고 주변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다들 작은 소설 공모전부터 나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기했다. 대학교 소설 부문 공모전 모집 중이었고 그곳에 투고했다.


결과가 우선시였던 나는 공부보다 글쓰기에 흥미를 더 가졌다. 아니, 공부를 아예 하지 않았다. 겨우 출석만 할 뿐이었다.


종강하고 방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문이 급하게 열렸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시체라고 믿을 정도의 싸늘한 온도를 가진 아버지였다. 단 한마디가 나를 얼어붙게 했다.


“나와.”


거실에서 부모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둘의 태도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앞에 보이면 안 되는 것이라도 있듯이 말이다. 아버지도 똑같은 한숨이었지만, 분노가 담겨있었다. 그 둘의 한숨 바람이 내 어깨에 스칠 때 직감했다. 아버지가 우편을 던지며 말했다.


“이게 뭐냐? 설명해 봐.”


봉투는 이미 뜯어져 있었고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사실 여섯 개의 과목 중 세 개가 F 학점을 받았다. 학사경고에 관한 우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그 길로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번엔 학업을 병행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평균은 가겠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아버지. 제가 하고 싶은 게 생겨….”


순간 아버지의 손이 내 뺨으로 날라왔다. 얼얼한 뺨보다 더 서러웠던 건 내 말 한마디조차 들어주지 않았다는 서러움이었다.


“야. 공부가 뒷받침돼야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그 이후에는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내가 꿈꾸는 미래를 짓밟는 모진 말들이었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말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야! 내 말 안 들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여태까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반항심이 마음속에서 꾸역꾸역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불타는 눈으로 아버지를 원망하듯이 쳐다보고 있다는 걸.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었다. 뒤따라왔지만, 어머니가 말리며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아버지와 나는 같은 공간에 존재할 뿐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다. 서로 사과의 한마디조차 하지 않은 채 서늘한 감각만이 어머니를 곤란하게 할 뿐이었다.

그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출근하길 기다리며 방에서 버티며 나오지 않았다.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고 전화를 받자마자 걸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말했다.


“여보세요?”


“이상훈 님 맞으세요?”


“네. 맞는데요.”


“아. OO문학상입니다. <빙판 위에 왈츠> 작품 맞으실까요?”


“네. 맞습니다.”


“당선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축하합니다.”


집안 사정으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예전에 동아리에서 넣어보라고 한 공모전이 당선이 된 것이었다. 물론 대학 부문이었기에 등단이나 높은 명예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뻤다. 스스로 원하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정이 심장을 흥분시켰다. 박동이 빨라지고 혈류가 급하게 흐른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감사합니다.”


“시상식은 OO대학교에서 진행합니다. 날짜는 조율해야 해서 그러는데. 안되는 요일이나 날 있으시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요.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시간 정해지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두 손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부모님 두 분 다 나가셨기에 할 수 있었다. 곧바로 동아리원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들은 축하 파티라도 하자며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곧바로 승낙했고 기쁨을 만끽했다.


부모님에게도 이 소식을 알리면 응원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이 집에 오기만을 기다린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저녁 여섯 시면 다른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들어오셨다. 그런데 부모님은 아홉 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정이 되어도 귀가하시지 않자 그냥 잠에 들기로 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소파에서는 아버지가 핸드폰으로 신문을 보고 계셨고 어머니는 요리 중이었다. 내가 나오자마자 시선이 쏠렸고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들이 내게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 과연 성과를 인정해 주기는 할까. 겁이 났다. 그래서 다시 시선을 피하고 문을 닫아 잠갔다.


나중에 말해도 늦지 않았다. 시상식에 가서 상패와 상금을 받고 나서 말하는 게 더 나을 거로 생각했다. 금요일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들은 성과를 인정해 줄 것이고, 일원의 한 명으로 제대로 받아들여 주기 때문이다. 즉, 나는 사회적 인정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것에 제일 적합한 대상이 그들이었다.


금요일 아침 부모님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약속 시각은 오후 일곱 시였으나, 미리 나간 이유는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가자마자 어디로 향할지 몰랐다. 길을 걷기에는 너무 추웠다.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렀다. 하지만, 여기서 머무르기보다 미리 그 근처를 배회하는 게 나았다.


약속 장소는 식당이었다. 일본식 라면 가게였다. 그 식당을 지나쳐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금요일 이른 오전이었기에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편안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최대한 느리게 마시면서 밖 풍경을 바라봤다.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렸다. 시간이 지나도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오지 못하겠다는 연락들이 왔다. 오는 사람보다 오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카페에서 오랫동안 있으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커피를 총 석 잔이나 시켰다. 커피 덕에 배가 불러오니 약속 시각까지 한 시간만이 남았다. 이십 분 정도가 남았을 때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무려 열 시간 만에 피우는 것이었다. 어지러움이 동반해 다리가 살짝 풀리려고 할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동아리장이었다. 내적 친밀감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깨에 팔을 걸었다. 다른 이들도 속속히 도착하고 라면 가게로 들어갔다. 동아리장은 나와 일회성에 그치는 얘기들을 나누며 친해졌다.


식당에서 나와 대형 술집으로 들어갔다. 방을 두 개 잡아 네 명씩 나누었다. 이상하게도 동아리장은 내가 없으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반강제적으로 같이 들어갔다. 술을 거의 물처럼 마셨다. 나중에는 물과 술이 헷갈릴 정도였다.


두 시간이 지나고 술을 잘 마시는 편임에도 심하게 취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했다. 특히, 친할 수도 있는 동아리장도 말이다. 밖에 담배를 피우면서 내가 물었다.


“형은 이름이 뭐예요?”


“이한철. 아직 내 이름도 몰랐어?”


“말씀 안 해주셔서 몰랐죠. 근데 형은 그 나이에 어떻게 등단하셨어요?”


“별거 없어. 그냥 잘 쓰면 돼. 너처럼.”


“에이. 제가 어떻게 형처럼 잘 써요.”


“너 재능 있어. 그 길로 쭉 가 봐. 나 먼저 들어간다.”


예술에서의 재능은 축복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독점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편을 들어줌과 동시에 나를 밀어주는 최초의 사람이 형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주기로 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애석하게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그것만큼 의지하는 게 없었다.

시상식 날 와준 사람은 형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부모님과 왔지만, 그것이 부럽지는 않았다. 나한테 있어서 형은 부모님 보다 나를 인정해 주는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시상식은 나의 소설에 관한 평론과 사진을 찍고 끝났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와 그 대학 근처 아무거나 보이는 포차에 들어갔다. 포차에서 시상식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하고 진로 얘기로 넘어갔다. 사뭇 진지한 말들이 오갔고 그런 와중에 부모님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예술이라는 게 집안이 좀 돼야 버텨주거든. 부모님도 너 하는 거 아시지?”


소주잔에 술을 따라 말없이 마셨다. 가슴이 턱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거짓말이라도 쳐야 하나 싶을 때 그가 말했다.


“모르셔?”


“알긴 아는데….”


“반대하시는구나.”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맞벌이라서 유복하긴 해요. 근데 부모님은 이쪽 진로를 원하시지 않아요. 아주 강력하게요.”


“버텨라. 버티다 보면 답이 나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더라.”


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취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같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다음에 만날 날짜도 정하지 않고 뒤를 돌아 각자 갈 길을 걸었다. 형이 마지막에 말한 버티라는 단어의 의미를 계속해서 되뇌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창밖의 내리는 눈을 멍하니 보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일부로 집 주위를 계속해서 걷다가 부모님이 자는 시간에 몰래 들어갔다. 어쩌면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부끄럼이 없을까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누웠다. 술기운 덕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버티라는 단어의 의미를 계속 뇌리 시켜서일 수도 있다. 결정을 내려야 편하게 아니, 불편하더라도 잠이 올 것 같았다. 머릿속은 쉽사리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동이 트고 노르스름하게 해가 뜨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가셨고 결론을 내렸다. 지지를 보내든 뒤를 돌아서든 하고 싶은 건 해야 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는 부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시자, 목에서 꽉 막힌 바윗덩이가 내려가는 듯했다. 개운함과 고통이 적당히 반반 섞였다.


아버지가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오셨다. 눈이 마주쳤고 서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초간 바라보다가 지나쳤다. TV를 틀자 높은 볼륨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급히 소리를 줄였지만, 너무 컸던 탓인지 어머니도 거실로 나오셨다.


정수기 앞에 서 있는 나, 소파에 걸쳐 앉은 아버지, 문을 열고 나와 마주친 어머니까지 어색함이 즐비했다. 화목함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우리 가족은 어느새 동떨어져 있었다. 부모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나는 어긋난 틀을 강제로 맞추려 하는 거였다. 그에 반해서 나의 시선에는 부모님이 정해진 틀을 맞지도 않는 모양인 나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는 거였다.


솔직히 얼굴을 맞대지 않은 지도 일주일이 넘었기에 삼자대면이 언제 적이었는지, 기억에서 사라질 정도였다. 어색한 정적이 언제 깨질까 싶던 그때 분위기를 부순 것은 아버지였다.


“앉아봐. 얘기 좀 하자.”


저번과는 다른 목소리였다. 강압적이고 주입식이지 않았다. 부드러운 어투로 아기를 달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 옆에 앉았다.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분위기라면 허락해 줄 것 같았다.


“잠시만.”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상장을 찾기 위해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가자, 아버지가 상장을 들고 있었다.


“이거 찾냐?”


“아. 네.”


내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사형선고라도 하듯이 아버지는 상장을 억지로 반으로 가르려 했다. 하드커버라서 잘 안되자 구부리고 접고 발로 짓밟았다. 어머니는 이 일에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순간 머릿속의 빨간 선이 뚝 하고 끊어졌다.


“뭐 하는 거야!”


그 이후로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는 식탁의 다리가 부러져 있었고 아버지가 뺨을 때리며 한마디 툭 던졌을 때였다.


“나가라.”

방으로 들어가 가방에 옷을 구겨 넣었다. 이 곳을 탈출해야 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가방을 다 싸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쓰레기들.”


작게 말했지만, 그 안에는 큰 분노가 담겨있었다. 그들이 듣고 생각이 바뀔 거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해주고 싶은 말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효자손을 들고 슬리퍼를 신어 현관까지 나왔지만, 어머니는 그냥 보내주라는 듯이 말렸다.


떠오르는 곳이 자취하는 형 방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형에게 연락해서 상금을 전부 줄 테니 앞으로 같이 있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 빨리 와.”


자취방에 도착할 때는 해가 저문 지 오래였다. 알려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형은 말없이 안아주며 위로해 줬고 간단하게 짐 정리를 하고 뒤쪽 공터로 향했다.


장작이 놓여 있었다. 형은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그리곤 의자 두 개를 가져와서 앉으라고 말했다. 나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도 일정한 박자감을 유지했다. 나무에 푸른빛이 돌았을 때 벌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큰 나방 하나가 눈에 돋보였다. 불로 들어가자마자 날개가 타고 추락하더니 불 속에서 재가 되어버렸다.


날개가 타고 몸통이 타고 곧이어 재가 되어버리는 목숨. 그렇지만 밝은 곳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부러웠다. 그런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형이 말했다.


“불나방이네. 상훈아. 이상향을 위해서라면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하지 않겠어?”


“목숨이라…. 그러면, 저도 불나방이 되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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