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유난히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습도는 다행히도 높지 않아서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피부가 살짝 따가웠다.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갔다. 내리자마자 여자 친구인 박채원에게 학교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했다. 그다음 흡연 구역으로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담배를 피웠다. 담배 향이 몸에 뱄을 때쯤 그곳을 나와 강의실로 향했다. 열한 명밖에 듣지 않았고 그날은 유독 학생들이 잘 오지 않았다. 강의가 시작되고 학생들은 다섯 명뿐이었다. 교수는 전자 출결이 아닌 종이 출석부로 일일이 확인했고 내 이름을 부르자 ‘네’하고 대답했다. 강의는 지루했고 빨리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더 태우고 싶었다.
강의가 끝나고 제일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한 번 더 연락했고 만나서 담배를 태웠다. 향수와 담배 향이 섞인 냄새가 오늘따라 묘하게 끌렸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 강의 끝나고 뭐해?”
“저녁이라도 먹고 갈까?”
“그럼 좋지.”
그녀는 집이 학교와 거리가 멀기에 기숙사에 살았다. 나와 같이 늦게까지 있고 싶었으나, 언제나 집에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주말에 다른 곳에서 만나지 않는 이상 평일에는 오래 있지 못했다.
점심을 먹으러 같이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학식은 맛이 그리 좋지 않았으나, 저렴했기에 반강제로 먹는 편이었다. 우리는 둘 다 고민 없이 나폴리탄을 선택했다. 줄을 서기 전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차례가 다가오고 음식을 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먹는 속도가 느리기에 언제나 맞춰주어야 했다. 원래라면 십 분 만에 끝날 식사를 최소 삼십 분까지 느리게 먹어야 했다. 불편했지만, 그녀가 좋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뒤쪽 공터로 가서 담배를 더 피웠다.
평화롭고 지루한 틈에 그녀가 온 것은 불행 속에 찾아오는 잠깐의 행복이었다. 그렇기에 질릴 수가 없었고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날만이 계속된다면, 세상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의가 다 끝나고 그녀를 학생회관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핸드폰 하거나 지나가는 친구가 있으면 잠깐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직 세시 삼십 분이었고 그녀는 다섯 시에 수업이 끝났다. 자보기도 했고 잠깐 산책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느리게 흘러 지루했다.
다섯 시가 되고 바로 핸드폰으로 수업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인문학관 앞에서 본 다음 바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생각해 보니 저녁 메뉴를 정하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늘 술 마시자.”
우리 둘은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만취가 되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까지가 아닌 적당히 합쳐 두 병 정도 마셨다. 술기운을 빌려 깊은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셔틀버스에서 내리고 근처 분위기가 괜찮은 술집에 들어섰다. 밀푀유나베와 소주 한 병 그리고 탄산음료 하나를 시켰다. 십오 분이 지나자, 음식과 술이 나왔다. 음식을 먹기 전 소주 한 잔을 부딪치고 마셨다. 그리고 그녀의 앞접시에 안주를 덜어주고 그 후 내 것을 덜었다. 예전부터 가정을 세워 만약을 좋아했던 나는 질문했다.
“만약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녀는 내가 하도 많은 가정을 한 탓에 대답을 회피하거나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지했다.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손을 턱으로 괸 채 말했다.
“같이 있을 거야. 설령 네가 헤어지자고 말해도.”
술기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말은 약간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좋네. 그 말.”
좋은 말만 오가며 술자리는 끝이 났다. 오후 일곱 시가 되었고 버스 정류장까지 손을 잡고 걸어갔다. 더운 날씨였고 손에 땀이 났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내가 버스를 타는 모습을 그녀는 끝까지 남아 지켜봤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 아마도 그녀는 셔틀버스를 타러 갔을 것이다.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이 들면서 학업에 관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때문인지 설사나 복통도 자주 있었다. 병원에서는 장염이라고 하며 약을 처방해 줄 뿐 다른 조치나 검사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약을 먹으면 그 순간은 나았기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금요일 수업이 없기에 오전 열한 시까지 잠을 잤다. 일어나고 나니 해가 중천에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타기에 선풍기를 틀었더니 일어날 때는 약간의 한기가 몸을 감돌았다. 선풍기를 끄고 일 층으로 내려가서 담배를 피웠다. 오늘따라 속이 좋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울까도 했지만, 샤워하기로 했다. 그래야 정신이 조금 맑아질 것이다. 샤워 후 드라이기로 머리를 대충 말리자 다시 더워져 선풍기를 틀고 책상에 앉았다. 중간고사 기간이기에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야 했다. 두꺼운 전공책을 꺼내 책상 위에 놓고 스탠드를 켠 채로 읽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던 와중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복학하면 뭐든 잘 될 줄 알았던 마음 때문에 말이다. 잡생각이 많아지자 어느새 문득 그녀에게 일어났다고 연락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공부 중이라고 연락했다.
그녀는 오후 한 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워 편하게 핸드폰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모습이 한심해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공부는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원하는 그녀의 모습이지 그녀의 모습은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갔다. 이번에도 설사였고 장염약과 위장약을 먹었다. 화장실을 세 번을 가고 나서야 아픈 것이 멈췄다.
그녀는 갑자기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자신이 보던 영상에서 커플들이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마침, 공부도 하기 싫었고 미루면서 침대에 누워있기보다 그것이 이롭다고 판단했다. 대학교와 내 집 그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머리를 대충 말렸기에 가르마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다시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섬세하게 가르마를 나누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캔버스화를 신었다. 나가려는 순간 그녀가 화장 때문에 삼십 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발걸음을 방으로 돌렸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졸음이 몰려오는 턱에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이대로라면 잠들 것 같아 알람을 이십 분 후로 맞춰 놓고 음악을 들었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니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버스를 오 분 정도 기다리고 탔다. 시간대가 아직 퇴근길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에어컨이 나오고 있어 인공적으로 시원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도착했다. 도착 장소에는 아직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삼 분 정도가 지나고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멈춰 서더니 그녀가 내렸다. 보자마자 포옹하며 내가 말했다.
“예쁘네.”
“고마워. 밥은 먹었어?”
“난 먹었어. 너는?”
“나도 먹었어.”
“맞다. 얘기해줬지.”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계획을 세우지 않아 일단 번화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 오락실에 들어갔다. 우리는 다트의 점수 환산 방식을 몰랐으나 카페에서 간식 내기로 다트를 시작했다. 올라가는 점수를 보며 서로 의문이 들었지만 의외로 치열했다. 이십 점 차이로 내가 이겼다. 그녀는 아쉬워하며 조금 봐준다는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는 듯했지만, 장난인 것 같았다. 베이커리 카페를 갈까 싶었지만, 식사를 이미 한 우리는 그냥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갔다. 마카롱이 먹고 싶다고 한 그녀는 키오스크에서 고르기에 바빴다. 라즈베리와 크림치즈 그리고 녹차 맛까지 마카롱을 세 개를 시키고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두 잔을 시켰다. 영수증에는 만 칠천오백 원이 찍혀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꽤 많고 노랫소리도 컸기에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로 말해야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카롱을 먹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고 대부분 조각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자 다시 배가 쓰려왔다. 누군가 쥐어짜는 느낌이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약을 챙겨왔다. 약을 먹고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나온 사이 그녀는 마카롱을 한입씩 정도만 먹고 남겨두었다.
“남긴 거야?”
“아니, 너도 먹어야 하니까 반씩만 먹었지.”
어떤 사람들은 누가 먹다 남긴 거여서 꺼려진다고 할 수 있었으나 우리 사이에서 이런 행동은 흔했다. 그녀만 그러는 것이 아닌 나도 저런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마카롱을 한 번에 다 먹을 수도 있지만 조금씩 베어 먹었다. 그사이 그녀는 나를 기다렸다. 그녀는 참 신기한 게 식사는 느렸지만, 디저트는 빠르게 먹었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물론 그렇다고 디저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식사조차 하지 않고 달콤한 것은 먹기가 꺼렸다.
카페에서 두 시간 정도 얘기하고 나왔다. 얘기는 대부분 일회성에 가까운 소모성 말들이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건강한 대화와 미래 건설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식사 후 다섯 시간 정도가 흘렀다. 내가 물었다.
“배 안 고파?”
“조금? 뭐 좀 먹을까?”
우리는 예전에 일본 여행을 갔다 와서 우설 구이에 빠져 나중에 발견하면 꼭 먹자고 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야끼니꾸집이 있었고 그냥 지나칠 수 없던 내가 말했다.
“저기도 우설 구이 있지 않을까?”
“당연하지. 가서 하이볼도 조금 마시자.”
“그래.”
망설임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시간은 여섯 시를 가리켰다. 내부에는 열다섯 명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테이블은 없고 다찌만 있었다. 우리 외에도 세 명이 더 있었는데 다들 혼자 온 것 같았다. 오픈 주방형식이어서 열기가 조금 느껴졌으나 그만큼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우설을 두 개 주문했고 동시에 하이볼의 종류를 물었다. 일본풍이 강한 가게 분위기 만큼 하이볼은 일본의 위스키로 만든 것밖에 없었다. 다른 일본주나 사케를 시키기에는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었기에 그냥 하이볼 두 잔도 주문했다.
앞에 화로가 놓이고 고기가 나왔다. 우설을 일본에서 먹은 만큼은 아니었으나 가격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먹고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배가 불러 거리를 조금 걷고 싶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걷기보다 어디 들어가고 싶은 나였지만 맞춰주기로 하고 삼십 분 정도를 걸었다. 그리고 그녀가 집에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마지막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아홉 시였다. 거리를 걸으며 흘린 땀 때분에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함이 쏠려와 먼저 잔다고 한 후 잠이 들었다.
하이볼도 술이라서 그런지 복통이 잦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무언가 잘못됨을 깨달았다. 혈변이 보였다. 순간 일반적인 장염은 아니라 생각했다. 심각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아침 아홉 시가 되자마자 병원으로 갔다. 도착하자 증상을 얘기했고 복부 CT를 찍어보자고 말했다. CT를 찍는 순간까지도 걱정스러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CT결과 현재 폐와 위에 덩어리가 있다고 말했다. 나의 증상을 큰 병원에 가라고 말하며 소견서를 작성해 주었다. 진료비를 수납하기까지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다. 엄마는 어쩔 줄을 몰랐고 아빠는 당장 큰 병원에 가자고 했다. 그런 결단력에 차를 타고 대학 병원으로 향했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갔기에 줄이 길었다. 우리는 내과에 접수했고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박채원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기에 걱정시키기 싫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소견서와 증상을 말하자 이른 시일 내에 대장 내시경을 하기로 했다. 예약은 삼 일 뒤 화요일로 잡았다. 공복 상태를 유지하라고 말하며 관장약을 주었다.
그녀는 내가 병원을 갔다오고 집에 도착한 후에야 일어났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이상했다.
“잘 일어났어?”
“응 잘 잤어.”
“사실 할 말이 있어. 지금 마음이 복잡해.”
“무슨 일 있어?”
“오늘 새벽에 잠을 못 잤어. 계속된 복통하고 설사 때문에 그래서 동네 병원에 갔어. 그런데 바로 큰 병원에서 검사받아 보라고 하더라고 소견서 가지고 갔더니 대장 내시경 해봐야 한데.”
“암인 거 아니야.”
“아직은 정확하진 않아. 근데 그럴까 봐 나도 머리가 지끈거려.”
정적이 흘렀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서로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어색한 시간이 싫어 정적을 깨기 위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별거 아니겠지.”
울먹이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랬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위로는 내가 받아야 할 상황이었지만 내가 그녀를 진정시켜야 했다.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그리고 월요일하고 화요일에 학교는 못 갈 것 같아.”
“그래. 알았어. 건강이 우선이지. 제발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말을 끝으로 전화는 종료됐다. 그녀에게 알리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안정될까 싶었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화요일이 되고 병원으로 향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더욱 잘 느껴졌다.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최악의 결과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내시경은 수면으로 진행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거의 바로 기절하다시피 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많이 비몽사몽인 상태였다. 무슨 말을 뱉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한 시간이 지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부모님은 누워있는 내 옆에서 손을 양쪽으로 잡고 있었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온 몸의 털이 그 한숨에 집중해 바짝 곤두섰다. 의사가 말했다.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그 말은 사실상 나의 대한 한정된 기간의 사형 선고였다. 의사는 대장암 말기며 암이 폐, 위, 복막에 전이되어 있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당장 시작해도 육 개월의 시간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생각을 많이 한 다음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엄마는 의사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의사는 죄송하다는 말만 남길 뿐이었다. 아빠는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끊었던 담배를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연이어 피웠다. 나는 삽시간에 엄청난 우울감을 느꼈다.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큰 병에 걸릴 거라고는 예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빠는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모르지만 엄마를 진정시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안에서 독려의 말을 했다. 그 말 이후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이 이어졌다. 방으로 들어가며 내가 말했다.
“나 좀 쉬고 싶어.”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침대에 누웠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엄마의 우는소리가 들렸다. TV를 틀었지만 그 오열은 묻히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그녀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전화로는 도저히 얘기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타자를 두드렸다. 주요 키워드는 대장암 말기, 암 전이, 시한부 선고였다. 일 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그녀도 울고 있었다. 왜 나는 눈물이 안 나오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어떡해…. 어떡해….”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네가 죽는 게 상상이 안 가 무서워.”
대답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태어나서 이런 상황의 시나리오는 단 한 번도 예측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데?”
“항암치료르 동반해도 육 개월이래.”
“지금 거기로 갈 게.”
그녀가 오는 동안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두통이 몰려왔고 더욱 싫은 것은 인정하기 싫은 복통도 몰려왔다는 것이다.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니 어떻게 죽어가야 하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미치고 싶었다. 예전에 그녀에게 한 말이 화살로 돌아왔다. ‘만약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이제는 현실이었다.
그녀는 두 시간이 조금 넘고 도착했다. 부모님에게 여자 친구를 보러 간다고 하고 나왔다. 급하게 나온 만큼 화장도 옷도 꾸미지 않은 차림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껴안으며 울었다. 그녀의 품 속에서 시야는 건너편을 향해 퀭한 눈동자로 허공만을 응시했다. 근처 정자에 앉았다. 날씨는 더웠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에 있으면 버틸만 했다. 내가 말했다.
“고민이 있어.”
“응.”
“항암치료를 받으면 생명이 조금 더 연장되겠지만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일찍 죽기는 싫어.”
“난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응원할게 치료르 선택하면 매일 병문안을 가고 그렇지 않으면 너와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게.”
“좀 걸을까?”
“응.”
오후 다섯 시가 되자 배가 고팠다. 하지만 의사는 나에게 죽만 먹는 것을 권유가 아닌 명령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은 죽이었기에 배가 고파도 참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배는 안 고파?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
“괜찮아. 어차피 죽밖에 못 먹어.”
“그거라도 먹자.”
“죽 못 먹잖아.”
“지금 못 먹는 게 어디 있어.”
“괜찮아?”
“당연하지.”
죽집으로 들어가 나는 호박죽을 그녀는 소고기죽을 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나온 장조림, 김치, 오징어젓갈도 먹고 싶었으나, 그런 나를 그녀가 제지했다. 내가 말했다.
“죽은 입맛에 맞아?”
그녀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니 사실 별로야. 근데 난 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죽을 다 먹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오후 아홉 시가 되고 서로를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가 말했다.
“이만 들어가야지.”
“더 있고 싶어.”
그녀는 핸드폰을 켜고 숙소를 잡으며 말했다.
“여기서 오늘 하루만 자고 가자.”
똘망똘망한 눈빛과 다르게 애원하는 말투에 웃으며 내가 답했다.
“그래.”
부모님에게 여자 친구와 하루를 보내고 간다고 했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서 바로 씻고 관계를 맺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숨소리가 격렬하게 들렸고 행동 하나하나가 섬세했다. 땀을 많이 흘렸고 관계가 끝난 후에도 서로 키스를 나누고 사랑한다고 귀에 속삭였다. 다시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그동안 보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완결 나지 않은 건 안 볼래.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러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완결된 것들만 골라서 틀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하던 도중 기침이 올라왔다. 피가 섞여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다시 우울해진 표정으로 나오자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차하는 눈동자의 시선에 여러 감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전 열한 시가 퇴실이었기에 간단하게 밥을 먹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죽 밖에 없기에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피시방에 가서 평소에 내가 하던 게임에 그녀를 입문시켰다. 처음에는 방황했지만, 친절하게 알려주자, 게임에 재능이 있는 것인지 금세 적응했다. 그렇게 세 시간 후 오후 두 시에 우리는 헤어졌다.
집으로 들어갔다. 울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안아주었고 그 뒤에는 방황했던 아버지가 서 있었다. 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진실된 좋은 미소는 아니었다. 덥다고 하자 에어컨을 바로 틀어주었고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다시 죽을 먹기는 싫어 입맛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거실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엄마랑 아빠 긴 휴가를 냈어. 이제 같이 다니자. 어디든.”
긴 휴가라고 했지만, 사직서를 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에 어떤 것도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여행을 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채원도 함께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였기 때문에 학교에도 가지 않고 휴학했다. 평일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캠핑장을 갔고 주말에는 완결된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봤다. 가끔은 국내 여행을 다녔다.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일부로 그것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가 남기는 것인 죄책감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삼 개월이 흘렀다. 상태는 심각해졌고 엄청난 고통에 진통제를 먹어도 낫지 않아 기절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하지만, 숨기기에 급급했다. 고통이 따를 때마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 들키지 않게 했다. 하지만, 박채원과의 데이트 도중 엄청난 통증과 함께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병원에 있었고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결국 나는 입원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빠졌고 몸은 야위어졌다. 병원식은 맛이 없었고 밖에도 잘 나가지 않았다. 몰래 담배를 피웠지만 이제는 피우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술은 당연히 마시지 못했고 근육조차 빠지자, 미라가 따로 없었다. 겉모습만 보존된 채로 속이 썩어들어갔다.
부모님과 박채원은 거의 내 옆에 살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챘다. 하루가 흐를 때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사후세계에 대한 물음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에 관한 생각이었다.
밥도 못 먹는 지경에 이르자 의사는 나에게 코에 튜브를 연결해 식사할 것을 권유했지만 링거만 맞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설득하려 했지만 완강히 반대했다. 살고는 싶었지만, 무의미한 생명을 그렇게까지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언제부터인가 미소를 잃었다. 박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을 보고 말했다.
“내 마지막은 미소를 띠면서 보내줘.”
그들은 그 말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내 말을 지키려고 미소를 띠었다. 이제는 정말 별로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의사는 말했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일이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깬 사이에 들은 말이었다. 마음의 준비는 내가 간절히 필요했다.
일주일이 흘렀다. 박채원은 매일 꽃을 선물해 주었고 꽃은 생화도 조화도 아닌 말린 꽃이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꽃은 보라색 장미로 바뀌지 않았다. 왜 하필 보라색 장미냐고 묻자 그녀가 말했다.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거든.”
대뜸 여태까지 하지 못하고 참아왔던 것을 하고 싶어 말했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 가능하면 술도.”
의사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나를 일으켜 부축했다. 흡연 구역에 도착하자 박채원은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너무 오랜만에 피워서 그런지 머리가 살짝 어지럽고 속도 메스꺼웠다. 어머니는 편의점에서 팩 소주 하나를 사왔다. 쓰디쓴 알코올 맛과 목 넘김의 뜨거움이 느껴졌다. 한 모금만 마시고 그만두었다.
“고마워. 정말로.”
그리고 병실로 들어가서 다시 누웠다. 술기운 때문인지 정신이 점점 몽롱해졌다. 지금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뜨지 못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내가 떠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울음바다 되었고 그들은 내 양쪽 손을 부여잡았다. 내 손에 힘이 점점 풀렸고 얼마 가지 않아 침대에 툭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