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사건의 시작은 전부 네 탓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내 잘못은 절대로 하나도 없다. 네가 자초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맞았다. 나는 너 때문에 지옥을 경험했다. 매일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고 불행의 탈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그 모습을 보고는 감격했다.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난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
왜 처맞고 있는 걸까. 친구가 없는 이유는 뭘까. 이런 고통의 지속이 지금 내 탓인 걸까.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선과 악이 구별되지 않고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명치를 막고 숨을 헐떡이며 엎어져 있다. 그 앞에는 내 명치를 강타한 태훈의 따까리가 크게 웃으며 자신의 힘을 자랑한다. 정태훈은 눈을 흘기며 간단한 미소만을 지으며 말을 툭 내뱉는다.
“야. 살살 해라. 그래야 나중이 있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내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태훈이 걸어왔다. 내 앞에서 우뚝 섰을 때 저절로 눈이 감기고 몸이 떨렸다. 그가 명령조로 말했다.
“야. 안 죽여. 내일은 재밌는 거 가져와야겠지?”
“응.”
속이 쓰려왔다. 명치를 맞은 탓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꼴불견이었는지 구토가 쏠려왔다. 곧장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머리를 급하게 박고 쏟아냈다. 더욱 초라하게 만든 건 그 누구도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학급에서 나는 태훈의 쓰레기통이자 그를 제외한 사람들의 투명 인간이었다.
등교는 지옥 같았고 하교는 암울한 미래였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 암울한 미래가 나았다. 육체와 정신이 둘 다 고통받는 것 보다 정신만 고통받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불행 중에서 더 나은 걸 고르는 순간 정신이 아늑해졌다.
웃기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나체 상태로 애들이 보는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도 불러봤다. 급식을 먹을 때는 전부 섞어 거기에 우유를 부은 다음 먹기도 했다. 이제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맞고 싶지는 않았다. 창작의 고뇌라도 하듯이 다음 행위를 집행해야만 했다.
대변과 소변을 섞어 먹는 상상을 잠깐이나마 떠올렸다. 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아니, 어쩌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동물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그래. 눈 딱 한 번만 감으면 그러면 맞지 않을 수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손에서 악취가 났다. 그리고 입에서는 더러운 맛이 느껴졌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대걸레가 내 옆을 강타하기 직전이었다. 관자놀이에 맞자마자 균형을 잃고 저번처럼 엎어졌다. 아니, 쓰러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바닥에는 토사물들이 늘어져 있었다.
“시발 새끼가 방금 밥 먹고 왔는데.”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찝찝하고 이상한 질감의 물질이 입에 있었고 손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진짜로 대변을 먹은 것이다. 그런데 기억이 없다. 화장실에서 고민하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나 기억이 안 나.”
사실 그대로를 토해냈다. 절규도 분노도 절망의 감정도 없이. 그저 사건을 구경하며 읽는 형사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 감정도 없이 뉴스 기사 한 줄을 읽는 것과 동일했다. 어떤 반응을 원하지도 않았다.
날라오던 대걸레가 멈췄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것의 모습이 나와 닮았다. 그는 순간 분노를 나타내던 표정에서 잔잔한 바다처럼 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는 내 몸에 묻은 오물을 피해 다가오며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기억이 안 나?”
“정말 기억이 없어.”
“하…. 한 달 동안은 그냥 있어라.”
그리고 그는 돌아섰다. 상황이 종료되자 그제야 똥을 먹었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곧바로 화장실로 향해 입을 헹궜다가 토하기를 반복했다. 입에 찝찝함이 지워졌을 때 거울을 쳐다봤다. 병신 한 명이 보였다.
체육복을 입고 집으로 향했다. 가방에 있는 교복은 화장실에서 물로만 씻어서 악취가 즐비했다. 집에는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는 불륜으로 이미 다른 집을 차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녀는 그 이유를 나로 돌렸다.
들어가자마자 소주병 하나가 내 앞에서 깨졌다. 때릴 용기도 없었으면서 겁을 주려고 하는 그녀의 일상생활이었다. 몸에 배는 냄새, 얼굴의 멍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보았음에도 귀찮았을 수도 있다.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약 중독자처럼 발음이 이미 뭉개져 있기 때문이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유리 조각들을 버렸다. 그 후 원래는 아버지가 쓰던 방에 들어갔다. 그녀의 재떨이와 소주병이 즐비했다.
그사이에 제일 불쌍한 건 나였다. 재떨이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고 소주병에서 알코올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직, 몸의 악취만이 코로 넘어갔다.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원래보다 몇 배를 넣었다. 그 옷들이 깨끗해지는 게 부러웠다. 나는 이미 더럽혀진 지 오래니까 말이다.
내일이 되고 다시 지옥이 시작되려나 싶을 때 등교하던 중 태훈의 눈을 마주쳤다.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고 고개를 아래 깔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냥 지나갔다. 아무 말도 없이 말이다. 어제 한 말이 기억났다.
“한 달 동안은 그냥 있어라.”
한 달이라는 시간은 시한부였다. 한 달이 지나면 다시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형수 같았다. 당장이라도 투신하고 싶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물건을 던지지도, 삿대질하며 오라고 하지도, 폭행을 가하지도 않았다. 거의 엉금엉금 기어가는 속도로 천천히 자리로 갔다. 낙서도 없었고 상한 우유를 붓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전한건 내게 친구는 없었다는 점이다.
하교까지 아무런 괴롭힘이 없는 게 적응되지 않았다. 물론, 당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섹스를 해보진 않았지만, 첫 경험을 한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틀이 되고 28일이 남았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하루는 마냥 행복하고 좋았지만, 이틀째 되니 이 시간이 계속될 거라는 보장이 없음을 느꼈다. 즉, 암울한 미래의 관한 공포 그 자체였다.
수업 중 불안함에 다리와 팔을 떨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조퇴했다. 곧장 경찰서로 달려갔다. 그리고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고 그들은 마치 건수를 올릴 기회라는 듯이 마지막에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요즘 학교폭력 때문에 말이 많은데 잘됐네.”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곧바로 조사에 들어가고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증인들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교내 봉사로 일이 마무리 짓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 앞에서 내가 선처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학교폭력 때문에 조사를 시작하던 날 아침 시간에 종이 한 장이 나누어졌다. 그 종이에는 질문이 단 세 가지 적혀있었다. 그리고 질문은 당연히 태훈에게 화살이 겨누어졌다. 누군가는 그 종이에 맞는 답을 썼다. 신상은 비공개라 알 수 없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는 미친 듯이 맞았다. 바닥에 싼 오줌을 핥고 공중화장실 소변기에 머리가 처박히고 강제로 변기 물을 마셨다. 사실상 마지막은 물고문에 가까웠다. 태훈은 단 한 가지만을 요구했다.
“선처만 해주면 끝나.”
“알겠어. 미안해. 살려줘. 제발.”
“그래! 고마워.”
그렇게 쾌활하고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마치, 신기한 임무가 생기고 그걸 해결한 것처럼. 그에 반해 나는 독립투쟁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고문당하는 것 같았다.
학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갔다. 태훈은 한 달의 자유 시간을 주었었고 그사이 나는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반역자 꼴이 되었다. 반역자의 최후는 언제나 비참하듯이 나 또한 괴롭힘이 더 심해졌다. 하교할 때도 그들이 따라붙었다. 발걸음이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뒷덜미를 잡히고 뒷골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개미지옥 같았던 그곳은 내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흙투성이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와도 어머니는 관심하나 없었다. 그저 술만 마셔대며 초췌하게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나는 무슨 존재일까. 나를 아파서 낳긴 했을까. 아니, 내가 태어날 때도 싸늘한 눈빛으로 짐 덩어리처럼 바라봤을 것이다. 저 여자는 그래야만 한다. 기대감을 없애야 했다. 실망하지 않도록 말이다.
아무생각 없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누군가 뒤통수를 가격했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책상에 머리가 박혔고 코피가 흘렀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 반응 없이 창문 밖만을 바라보았다. 와이셔츠에 붉은색이 번지자, 태훈이 말했다.
“야. 씨발아 뭐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턱을 위로 들어 고개가 빳빳하도록 쳐다봤다. 그가 소리 질렀다.
“야!”
“어?”
일단은 원래 보이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냥 주위에 큰 소리가 들리길래 살펴보는 동물과 다름없었다. 본능이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맨 밑바닥에만 남아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 새끼 요즘 왜 이래?”
내가 원래 어땠었나. 저 말에는 무슨 반응을 보여야 처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포기했다. 오늘은 폭행으로 때워야겠다.
“존나 재미없네.”
예상한 반응이 엇나갔다. 저번만 해도 죽일 듯이 패고 집까지 쫒아왔으면서 갑자기 재미없다니 혹시 더 큰 음모를 꾸고 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매일 불안하게 살 수는 없었다. 나도 결심해야 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매일 당하기만 하던 나에게 누군가를 해치는 것은 어렵기만 한 과제였다.
식칼을 들었다. 그리고 던지고 벽을 긋고 찔렀다. 딱딱한 물체에 막힌 찌르기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베개가 보여 그었다. 안에 있는 솜들이 휘날리며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베개에는 선명한 자상이 남아있었다. 저것이 붉은색으로 물든 것을 상상했다.
태훈은 나를 재미없는 장난감 취급했다. 즉, 관심이 떨어지고 건드는 횟수가 적어졌다. 물론, 나의 반응이 미미해진 것도 컸다. 그런데 의도한 게 아니었다. 실제로 멍한 시간이 늘고 가끔 심하면 기억이 끊겼다.
몰래 태훈을 뒤쫓았다. 그의 집 주소를 알게 되었다. 원룸이었고 자취하는지 자주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오후 열한 시가 되면 불이 꺼졌다. 비밀번호는 알 수 없었다. 그곳까지 따라갔다가는 들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방에 식칼을 넣고 다녔다. 그를 죽일 기회만 있다면 베어버리고 찌를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태훈이 혼자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CCTV도 없고 마땅한 가게도 없는 곳 말이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가방에서 식칼을 꺼내 몰래 따라갔다. 코너에서 그가 꺾었다. 몇 초 뒤에 코너에 도달하자 그가 내 앞에 우뚝 섰다.
“뭐하냐?”
곧장 뒷짐을 지며 식칼을 숨겼다. 그가 점점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분노인지 복수심인지 모를 아드레날린이 쏟아져 나왔다. 언제나 자기의 밑으로 보는 내려 깔리는 저 시선이 보였다. 뒷짐을 지던 손을 빼서 그를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옷깃만을 스쳤다. 태훈은 몹시 당황했다. 기르던 작은 개새끼가 자신을 온 힘을 다해 물 줄은 몰랐으니까. 계획이 어긋나자 나는 칼을 마구 휘둘렀다. 그의 팔과 몸통, 다리에 자상을 입혔다. 그는 겁을 먹지 않았다. 고통도 느끼지 않는지 베인 곳도 보지 않고 나의 팔뚝을 잡았다. 식칼을 곧장 빼앗고 내 복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야 이 개새끼야. 넌 뒤졌다.”
식칼을 멀리 던지더니 그는 내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었다. 그의 팔뚝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내 머리카락을 적셨다. 눈에 피가 들어가자 따끔거렸다. 그래서인지 눈을 쉽게 뜨지 못했다. 어디로 끌려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도착한 곳은 어느 사무실 안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몇 초 뒤 태훈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누군가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행동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평범해 보이는 일반인이었다. 무서워 보이지도 않았고 두려움도 느끼지 못했지만, 그가 입을 연 순간 서슬 퍼런 혀를 내둘렀다.
“뭐냐? 이 애새끼는?”
“형님. 마음대로 굴리셔도 되는 애입니다. 사실상 부모가 버린 애라서 뒤탈도 없습니다.”
여기가 흔히 말하는 조폭 사무실이라는 것이 체감되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거지. 인신매매, 원양어선, 노리개 등이 떠올랐다. 더 무서운 건 도망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그가 태훈에게 다가갔다. 구두의 뚜벅거리는 소리가 묵직하게 사무실 안을 울렸다. 유리병 하나를 집더니 태훈의 머리를 가격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리의 울림이 멈추었다.
이내 눈을 떴을 때는 태훈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팔과 몸통의 자상까지 더하면 당장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건 언제나 일반인의 기준이었다. 그가 말했다.
“하…. 네 맘대로 싸질러놓고 우리보고 처리해라 그거네?”
“그게….”
“뭐가 아니야! 시발 새끼가.”
“죄송합니다.”
태훈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시선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수심이 담겨 있었다. 그가 걸어오더니 손짓으로 앉으라고 명령했다. 소파에 앉자 두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래서.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됐다고?”
뭘 말해야 할까. 그리고 이들이 태훈의 악행을 듣고 생각이 바뀌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아서 입을 열었다.
“그게. 괴롭힘 때문에 도저히 못 살 것 같아서 죽이려고 하다가 그만….”
“오케이. 거기까지. 어차피 네 사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팔, 다리 멀쩡하면 된 거지 뭐.”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불안감, 긴장감, 공포 무엇이든 태훈이 폭행을 가할 때보다 더 심각했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깊은 심연이 존재했다.
“야. 얘 원양어선에 가져다 팔아. 비리비리하니까 돈은 많이 받지 못하겠네.”
“잠깐만요! 잠시만요!”
“입 좀 막아라. 시끄럽다.”
곧이어 거구의 사람이 내 입을 막았다. 동시에 목을 졸랐다. 시야가 흐려지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창문 하나 없고 햇살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위에 달린 작은 조명이 어두운 공간을 조금씩 밝혀주는 정도였다. 반항하기에 너무 많은 부정적 사건을 겪었기에 포기하는 게 더 빨랐다. 자리에 주저앉고 그저 하염없이 기다렸다.
멀리서 다시 구두 소리가 들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소리가 멈추었다. 눈을 뜨면 이제는 다시 뜨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고 눈을 떴다. 아까 목을 졸랐던 거구의 남자가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나오라고 말했다.
그는 내 뒤에서 걸으며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컨테이너 앞이었다. 그가 열쇠를 꺼내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안절부절못하며 들어가지 않자, 발로 등을 차서 억지로 밀어 넣었다. 컨테이너의 그 넓은 공간에 혼자 갇혔다.
그 이후로는 계속된 진동으로 멀미했다. 토를 겨우겨우 참아야 했다. 토사물 냄새를 맡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잠도 잘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비행기에서 운반되는 짐 같았다.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때 컨테이너가 멈추었다. 위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문이 열리면서 빛이 서서히 흘러들어왔다.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고 사람의 형체로 추정되는 두 개의 물체가 보였다. 빛에 적응되자 나를 컨테이너에서 나오게 한 후 나이가 더 든 사람이 말했다.
“밥은 먹었냐?”
“아니요.”
“민수야! 얘 밥 먹여라.”
남자 한 명이 나오더니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바다의 물만이 고요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창고에서 물고기 두 마리를 꺼내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물회, 덮밥, 라면 등 요리를 해줬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소름 끼쳤다.
“여기서는 잘 먹어야 해. 그래야 살 수 있거든.”
배가 고팠기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살기 위해 섭취했다. 음식을 다 먹자마자 민수가 왔다. 그는 그릇을 닦고 담배 한 대를 건네었다.
“괜찮습니다.”
“피는 게 좋을 거예요. 아까 말했듯이 살려면.”
“아. 예.”
입에 담배를 물었다. 특유의 향이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불을 붙이고 연기를 흡입하자 폐에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기침이 나왔고 목이 칼칼했다. 콧물이 나왔으며 눈물도 흘렀다. 그렇지만, 억지로 피웠다. 왜인지 이 사람의 말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담배를 다 태우자, 아까의 나이 든 사람이 왔다. 민수의 말을 들어보니 이 배의 선장이었다. 그는 까만 피부에 거친 말투 그리고 머리카락이 없었다.
“민수야 얘 일 알려줘라.”
나를 데리고 작업장으로 갔다. 갑판 위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는 일이었다. 자신도 답답했음에도 그는 차례차례 알려주었다. 어떻게 해야 덜 힘이 드는지 조심해야 할 건 무엇인지 말이다.
그물을 걷어 올리던 도중 발을 헛디뎠다. 그물은 빠르게 바다로 빨려 들어가고 나는 넘어지고 말았다. 그 누구도 다쳤는지보다 그물에 관심을 기울였다. 선장은 그물을 잡아 올리고 사태를 마무리 지은 다음에 나와 민수를 불렀다.
“제대로 교육 안시켰어?”
“죄송합니다.”
“엎드려.”
선장은 민수를 각목으로 구타했다. 나는 말릴 용기도 힘도 없었다. 어쩔 줄 몰라 고개만을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맞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다 멈추었을 때 선장이 말했다.
“내일 일해야 하니까. 여기까지다.”
선장이 떠나고 민수에게 다가갔다. 그는 혼자 일어나기도 버거워 보였다. 신음을 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축받았다. 그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눈물이 맺힌 채로 자신의 감정을 거부하듯이 말이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제대로 못 알려준 탓이지 뭐.”
그 말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나 때문에 맞았다는 걸 확실히 각인시켰다.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안부도 목에서 삼켜 나올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담배를 하나 건넸다. 고개를 떨군 채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바로 올라와 눈물이 맺혔다. 아니, 이 눈물이 과연 담배 연기 때문만인지는 확정할 수 없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울지마. 앞으로는 더 힘들 거야. 버텨내야지.”
뭐가 더 힘들다는 걸까. 여기서 더 상황이 악화한다는 뜻일까. 앞이 어두워진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지 아니면 배가 흔들려서 그런지 시야가 울렁거렸다. 짜증 났던 건 지금 떠오른 인물이 정태훈이라는 그 개새끼였다.
민수의 태도는 항상 같았다. 친절하고 이타적이었다. 선장과 다른 선원들이랑은 달랐다. 다른 이들은 거칠고 언성이 높았으며 명령조로 말했다. 민수만은 내 편이었다. 대신 맞아도 쓴소리를 들어도 그저 자신의 태도를 일관했다.
하루가 매일 단순했다. 일, 식사, 취침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일과에 치여 며칠을 지냈다. 일이 적응해질 때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민수 형밖에 없었다. 언제나 말해야 할까 싶을 때 민수 형이 담배를 건네고 단둘이 피우는 도중이었다.
“형 저 여기 탈출하고 싶어요.”
“뭐?”
“말 그대로예요. 저희 같이 나가요.”
형은 담배를 바다에 던졌다. 자세를 고쳐 단숨에 싸대기를 갈겼다. 뺨을 맞았다는 현실보다, 배신감이 크게 느껴졌다. 적어도 여기서 민수 형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였는데 이런 반응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야. 넌 팔려 온 거고 난 돈 벌러 온 거야. 탈출? 그딴 건 네가 해야 할 거고 오늘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한다.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그가 자리를 떠나자 털썩 주저앉았다.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울음을 삼켰다. 탈출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점점 흐려졌다.
오 년이 흘렀다. 고된 작업과 많아진 식사량 탓에 몸이 다부져졌다. 동시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육지를 보지 못했다. 민수 형은 자기 몫을 다 벌고 떠났다. 내 밑으로 선원 몇 명이 들어왔고 이제 여기서 인간관계와 일에 익숙해졌다. 복수심은 스르륵 사라졌고 이 상황에 만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바다의 파도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이미 적응했기에 깊은 잠에 빠졌다. 누군가 내 이마를 툭하고 쳤다. 눈을 뜨니 선장이 손짓으로 나오라고 하고 있었다. 밖에 나가자, 그가 담배 한 대를 건넸다. 오 년 동안 단 한 번도 같이 피운 적이 없기에 의아했지만, 받아들였다. 그가 한숨을 쉬더니 툭 내뱉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내일 나갈 준비해.”
“네?”
그는 봉투 하나를 품에서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많이는 못 주고 여태까지 미안했다.”
나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기에 만족했고 육지로 간다고 한들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남을 이유도 없었다. 즉, 존재가치가 사라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대답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배에서 내리자, 그동안 느끼지 못한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발을 딛고 중심이 잡혀있는 땅이 이상했다. 뱃멀미도 아닌 이것을 뭐라 할지 알 수 없었다. 숨을 크게 한 번 쉬자, 흙냄새가 풍겨왔다. 비릿한 바다 냄새에 절어서 그런지 후각에서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내게 찾아왔다.
“육지는 오랜만이죠?”
뱃살이 나온 사십 대 중반의 큰 키의 아저씨였다. 나를 아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몰랐다. 혹시 예전에 본 적이 있나 기억을 짚어봤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어정쩡하게 있자, 그가 말했다.
“아 선장님 지인입니다. 도움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실제로도 도움이 필요했다. 오 년 사이에 무엇이 바뀌는지도 알아야 했다. 신분증도 만들어야 했고 통장도 카드도 할 게 많았다. 실종 신고는 아마 되어있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복수하고 싶으신 거죠?”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았다. 그것을 말 한마디가 꺼내게 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 말한 기억이 없었다. 어떻게 그가 아는지도 몰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선장님한테 들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니 뱃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때 만취했었는데, 아마도 그때 말한 모양이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기억이 떠오르니 원망, 분노, 복수심 등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태훈이 무엇을 하는지였다.
“그 새끼는 뭐하면서 지내나요.”
“이제야 좀 궁금한 모양이네요. 먼저 차에 타시죠.”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어차피 갈 곳도 믿을 곳도 없었기에 무작정 차에 탔다. 두 시간 정도를 갔는데 중간마다 멀미가 몰려와 구토했다. 도착한 곳은 컨테이너 몇 개가 있었다. 차에 내리자마자 빨간색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 말고도 세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그들은 자기를 각자 색깔로 소개했다. 빨강, 노랑, 초록, 보라색이었다. 나의 색깔은 검정으로 정해졌다.
그들이 말하길 태훈은 거대 조폭인 기화의 간부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어엿한 가정이 있고 행복하게 산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속의 화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화에 집어삼켜져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을 때 한마디가 들렸다.
“우리가 도와줄게요.”
거대 조폭의 간부를 어떻게 잡는다는 건가. 이들의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가. 그들은 그냥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리가 판은 다 만들어놓을 수 있어요. 단둘이 있고 싶다면 그렇게도 해줄게요.”
“과정은 안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노랑이 핸드폰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요새는 이런 폰 안 쓰는데 더 편할 것 같아서.”
예전에 보던 것과 비슷한 핸드폰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지는 거라서 약간 어색했지만, 몇 번 작동해 보니 감이 왔다.
며칠 동안 한 모텔에서 묵었다.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지 흥분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나왔다. 태훈과 단둘이 있는 상상을 해봤다. 무슨 말이 나갈지 무슨 행동이 나갈지 수천, 수만 번 생각했다. 그 횟수만큼 결론의 횟수도 똑같았다. 숨소리 하나조차도 전부 다른 반응이었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샤워했다. 싸구려 모텔이기에 TV에는 뉴스 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덟 시가 되고 전화가 걸려 왔다. 핸드폰을 받은 후 첫 통화였다. 그동안의 상황을 문자로 주고받았기만 해서 음성이 어색하게 들렸다.
“우리 처음 모였던 장소 알죠? 거기로 열 시까지 오시면 될 겁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폐공장 같은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에 큰 수조가 있었다. 그 위에는 빨강과 노랑이 두 사람을 밧줄에 묶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가 싶을 때 초록이 뒤에서 걸어왔다.
“저 사람들, 네가 원망하는 사람의 아내와 딸이야. 좀만 기다리면 보라가 데려올 거야.”
“누구를요?”
“뭐긴. 네가 제일 싫어할 만한 사람이지.”
트럭이 흙밭을 거세게 가로지르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멈추는 동시에 태훈이 들어왔다. 그는 매우 흥분한 상태로 밧줄에 묶인 자기 아내와 딸을 보며 소리쳤다.
“약속대로 나 혼자 왔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밧줄의 줄이 끊겼고 물이 가득한 수조 안에 그의 아내와 딸이 잠겼다. 태훈은 계단 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곧장 그의 발목을 잡고 계단에서 끌어내렸다.
“넌 뭐야 씨발! 이거 안 놔!”
“기억 못 해? 네가 제일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몰라! 씨발! 이거 안 놔!”
그의 머리를 잡고 계단 모서리에 계속해서 박았다. 그가 정신을 잃으며 눈물을 흘렸다. 수조 속에서는 시체 두 구가 나란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를 죽이지 않은 채 수조 앞에 늘어놨다. 출구로 걸어가 트럭을 타고 밖으로 유유히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