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결핍

단편소설집

by 집안의 불청객

보일러도 틀어지지 않아 차가운 냉기가 그대로 발에 닿아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방에서 나오지 않은 지 이틀이 지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열려고 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삼 일째가 되던 날은 월요일이었다. 출근해야 할 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그러다가 시간이 갈수록 과격하게 소리까지 질렀다. 그런데도 아무 반응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었다. 그 아주 짧은 시간에 나도 몸을 떨 정도로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뛰어가자, 어머니는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나도 밧줄에 매달려 있는 아버지를 보자 똑같이 그랬다.


아버지의 부재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사업이 기울고 여러 곳에서 빌린 돈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식도 개판이 될 정도로 그 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고 그 이후의 생활은 더 처참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어머니도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따사로운 손길과 차분한 말투는 사라졌다. 나와 같이 있는 시간도 급격히 줄었다.


매일 저녁에 진한 분장을 하고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대부분 술에 취해 있었으며 샤워 후 바로 잠에 들었다. 중학생인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구도 별로 없는 텅 빈 집안에 혼자 남겨졌다. 부성애도 모성애도 없어진 곳은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언제 어머니랑 대화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먼저 다가와 주었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앞에 앉아보라고 했다.


“은경아, 이리로 올래? 잠시 앉아봐.”


앉자마자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았다. 훌쩍거리는 쪽은 내가 아니었다. 사죄한 것도 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울었다. 서로 안고 있었기에 시선은 마주칠 수 없었다.


“미안해.”


그 말이 나에겐 지금부터 잘해보자는 의미인 줄 알았다. 여태까지 주지 못한 사랑에 관한 대답으로 느껴졌다. 다음날부터였다.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는 건.


열셋에 보육원을 가게 되었다. 발랄하거나 활동적이지도 않았다.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은 의무적인 선을 지키는 원장과 선생님이었다.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의 도망은 우울한 기억들로 밖에 자리 잡지 못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도 보육원에서도 움츠러들어 있는 게 당연시되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는 포장된 단어가 있기에 학교에 다녀야 했다. 보육원은 시골로 옮겨졌다.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라고는 말했지만, 사실 자금난 때문이라는 걸 내 나이쯤이면 모두 알았다. 옮겨간 곳에 중학교는 하나밖에 없었다. 굳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입학식에는 절반도 오지 않았다. 등굣길에는 담배 냄새가 풍겼다. 누구에게도 튀지 않고 싶었다. 관심도 바라지 않았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섞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일 가까운 존재가 나에게 가장 큰 악몽을 선사했으니 말이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와 진한 분내가 느지막이 퍼졌다. 그 둘이 섞인 냄새는 고약하기보다 적응되지 않은 역겨움에 가까웠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여자 화장실에서는 담배를 입에 물고 화장을 고치는 애들이 대다수였다.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 남자애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대뜸 말했다.


“나랑 사귈래?”


여기서 거절해도 승낙해도 순탄한 생활을 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았을 때 거절보다는 승낙이 더 편안할 것 같았다. 그래서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수긍했다.


다음날부터 내 학교생활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모두 바뀌었다. 등굣길에는 그 애가 오토바이를 타고 데리러 왔고 그의 친구들이 화장을 알려주었으며 담배도 배우게 했다. 모든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전부 타인에 의해 바뀌었다. 그런데 그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나를 챙겨주려는 모습이 부성애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이 잘못된 길이라는 걸 알지만, 적어도 현재의 나에게는 애정과 다름없었다.


부성애에서는 성적 욕망이 들어가지 않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그것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결국, 부성애에 관한 뒤틀린 욕망이 생겨버렸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받고 싶고 귀염받고 싶었다.


그의 마음에 들려면 성격부터 바뀌어야 했다. 어쩌면, 나는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환경에 살아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다. 나서지 못하고 조용히 있으려는 나는 사라졌고 어느새 포식자처럼 하층 계급을 멸시하고 무시했다. 환경 때문인지 원래 나의 본성인지 헷갈렸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만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탈선과 도피조차도 어려 보이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도 그때 생각하기로는 어른스러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타며 느껴지는 바람은 자유로웠고 결석은 감옥에서의 탈출 같았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나는 일반적인 연인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육체와 정신을 탐하며 이루어지는 공생 관계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가 이 학년이 되면서 자취를 시작할 때부터였다. 일상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에게 콘돔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여러 차례 섹스도 했다. 관계가 끝나면 알몸인 채로 부둥켜안고 이불을 덮어 잠이 들었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그는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가끔 학교에 가면 엎어져 잠만 잤다. 그 애의 여자 친구라는 명목으로 친구들은 나를 자극하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 어울려 다니는 무리는 제외였다. 주위에서 여왕벌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내 앞에서 그것을 직접 언급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말은 한 여자애의 뺨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이들이 다 떠나도 그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삼 학년이 되자, 별생각 없이 고등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나와 다르게 진로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취방에서 섹스하고 씻고 나온 다음 누워있을 때 그가 말했다.


“난 나중에 뭐 하려나.”


“지금이 중요하지.”


그는 여태까지 교제하면서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단어를 뱉었다. 물론, 내뱉을 만한 상황도 없었지만, 그 단어를 들을 줄은 몰랐다.


“미안해. 나 서울로 고등학교 진학하기로 했어.”


‘미안해’라는 한마디가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이 상황에서도 그의 미래를 응원하기보다 나의 안위를 먼저 물었다.


“그럼 나는? 응?”


울면서 애원했다. 제발 버리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가지 말라고 우리는 여기서 멈출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미안해.”


주체할 수 없는 눈물, 구겨져 버린 표정, 어쩔 줄 모르는 손과 발이 자신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떨리는 손으로 옷을 입고 제발 잡아주길 바라며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그는 내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일방적인 차단으로 끝이 났다.

열일곱 살이 되었다. 남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옛날의 어머니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흥업소에서 불법으로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한 분내가 몸에서 풍기고 가슴과 다리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


직원들은 내 나이를 알았지만, 손님들에게는 스무 살로 속였다. 실제로 성숙해 보이는 탓에 대부분 의심하지 않았다. 첫 고객은 스물두 살 군인이었다. 그는 이런 곳에 처음 온 것 같았고 나 또한 그러했다. 무엇을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옆에 있을 때 같이 일하는 언니가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노래도 부르고 그의 팔짱을 끼며 가슴을 붙이기도 했다. 술도 더 시키며 계속 마시자고 했다. 나도 언니를 따라 노력했지만, 아직은 미숙했다.


한 차례 일이 끝나고 군인이 결제한 금액은 무려 오십만 원이 넘었다. 그렇게 큰 액수의 현금은 처음 봤다. 마음속으로는 놀랐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았다. 손님이 떠나고 언니가 따로 불렀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까딱하더니 나도 피우라고 하는 모양이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언니는 불을 직접 붙여주며 말했다.


“처음이라서 어색한 거 알아. 이 업계가 그래. 근데 은경아 시간 지나면 자연스럽게 변할 거야. 너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진상은 안 붙여줄 거야.”


“고맙습니다. 언니. 더 열심히 해볼게요.”


“그래. 조금 더 있다 들어와. 괜히 오해 사기는 싫으니까.”


담배를 한 대 더 태웠다. 젊은 손님에게 여러 이쁨을 받기 위한 행동은 어렵지 않았다. 어색하다기보다 그냥 어떻게 대할지를 잘 몰랐던 것뿐이다.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 그냥 주변을 보고 따라 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손님을 받았다. 대부분 신체 접촉을 하지 않고 자신의 푸념을 늘어놓고 들어주기만 하는 것에 만족하는, 즉, 진상이 아니며 젊고 예의가 바른 사람을 붙여주었다. 예의가 바르다 하는 것도 어폐가 있긴 하다. 애초에 그럼, 여기를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 달 정도가 지났다. 끼 부리는 것도 사랑받는 법도 알며 적당히 술에 취하는 방법도 알았다. 이 일이 잘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따로 불렀다. 최근에 내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성과급이라도 주는 줄 알았다. 평소처럼 손님을 맞는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를 마주 보고 멀리 앉았다. 그가 말했다.


“은경아. 요새 일이 힘들지?”


“괜찮아요. 오히려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대답과 동시에 그가 내 옆에 앉았다.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따뜻한 남자의 손길이 마치 부성애로 느껴졌다.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뻔히 알았다. 허벅지에 올린 손에 깍지를 끼고 그와 키스했다. 그의 아랫도리가 크게 부풀어 있었고 타액이 섞였다.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는 적정선이라는 걸 긋고 지켰다. 가슴을 주무르며 키스하는 것에 그쳤다. 서로 몸을 떼자, 정적이 흘렀다. 먼저 입을 뗀 건 나였다.


“좋았어요. 사장님.”


그는 당황했다. 좋고 나쁨이 둘 다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미성년자와 성적 행위를 한 것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쾌락의 극치인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때부터였다. 사장님이 내게 손님을 붙여주지 않았던 것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장은 다른 직원들보다 내게 월급을 더 주었다. 하지만, 고생 없는 대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언니들이 출근하러 나갔을 때 가게를 지키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와 나를 탐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에 충족되지 못한 부성애가 잘못되게 표출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어느 날부터 단둘이 있을 때는 아빠라고 불렀다. 그도 그런 타이틀이 나쁘지 않았는지 흡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게 내부의 불만들이 폭주했다. 잘 챙겨주던 언니들이 언제부터인가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말 한마디만 부탁하면 다 해결될 일이지만, 내 능력으로 해결하는 게 더 보기 좋을 것이다.

아침 아홉 시 언니들의 퇴근 시간이었다. 기숙사에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 긴 통로가 있었는데 그 앞에 서 있었다. 가로막고 있자, 언니가 내게 말했다.


“비켜.”


“언니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그래? 그러면 사장님한테 가서 이제부터 어떤 손님이든 다 받는다고 그래.”


사실 나는 상관없었다. 아빠가 어떻게 대처할지가 난관이었다. 그는 내 육체만을 좋아한 게 아닌, 어린 나이의 정신도 좋아했다. 일자리로 복귀의 선택은 내 의지만으로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전에 기억이 떠올랐다.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다가 박살을 내버린 내 몸통을 말이다.


“알겠어요. 언니.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녀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이었고 아빠도 주무실 것 같아서 내일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방으로 들어가서 자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아빠였다. 그가 말했다.


“어디야? 보고 싶은데.”


“난 기숙사지! 얼른 와 할 말도 있어.”


“뭐길래. 괜히 기대되네.”


그를 기다리면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복귀가 아빠와의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게 하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무거운 발걸음이 복도에서 울려 퍼지다가 내 문 앞에서 뚝 끊어졌다. 아빠였다. 나는 그의 품에 바로 안겼다.


“아빠!”


우리 둘은 대화를 나눴다. 아빠는 당연히 제안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의 타협은 해야 했다. 아마도 그가 우려한 건 손님과 관계를 맺을 때 내 마음이 다른 곳으로 떠날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다른 언니들에게 얘기해 논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손님과 2차를 가고 아빠까지 상대하는 건 몸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받는 존재가 된 것만으로 마음을 꽉 채울 수 있었다. 육체는 두 번째였고 정신이 먼저였다. 끝없이 갈구하는 사랑을 채워준 아빠가 좋았다.


모든 것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나 때문에 가정 하나가 파탄이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거기에 내 잘못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사실 아빠는 가족이 있었고 여태까지 아내에게 내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가게에 아내가 급습했다. 언니들은 그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방 하나하나 문을 열어보며 확인했다. 나와 섹스 중이었던 아빠는 문이 열리자마자 옷을 부랴부랴 입고 떠나가는 아내를 붙잡고 애원했다.


처절해 보였던 건 그가 아니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의 얼굴을 어루만져준 그 손이 그녀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는 게 허망했다. 남자에게 한 번 데였음에도 왜 알지 못했을까. 사실 알고 있었지만, 사랑을 사랑으로 잊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쫓겨나듯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모아둔 돈으로 일주일간은 모텔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만 누워 술을 마셨다.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밤이 내리고 편의점에서 술을 사러 가던 도중 길바닥에 명함 한 장이 보였다. 주점에서 도우미를 구한다는 공고 내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었다. 육체가 고된 노동보다 이 일이 훨씬 쉬었고 보수도 많았다. 결국, 다른 가게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걸어가는 동안 이번에는 정말로 사랑 따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사장으로 보이는 여성이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볼 것도 없이 통과였다. 이쪽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고 외모와 몸매도 괜찮았다. 나이가 걸렸지만, 이쪽 업계는 그건 다 쉬쉬하는지 당장 일을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이곳은 저번에 다녔던 곳보다 훨씬 더러웠다. 신체 접촉과 진상은 물론 2차도 잦았다. 월요일만 쉬었고 나머지는 다른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며 돈을 벌어야 했다. 진정으로 힘들었던 점은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었다.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돈은 늘어가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내 모습이 언젠가는 폭발할 것 같았다. 과연 돈이 중요할까 싶었다. 아니, 돈보다 사랑이라는 사회적 인정이 더 중요했다. 상처만을 남겨준 사람에게 또다시 곁을 내준다는 것이 학대받은 강아지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선택이라고 한 게 호스트바였다. 일을 하지 않는 월요일에 열리는 호스트바에 가서 돈을 아끼지 않고 썼다. 2차로 가서 육체도 나누었다. 내가 고른 사람과 몸을 나눈다는 점은 조금 특이했다. 그러나 사랑과는 다른 기시감이 끼어 있었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물질적 자본으로 엮인 관계여서 그런가 싶었다. 호스트바에서도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그사이에 나는 우울증이 걸려 정신과를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달리다가는 탈진해 죽을 것 같았다. 모아둔 돈은 꽤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버티는 데 무리가 없었다.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를 동반했다. 의사와는 증세만을 얘기하고 처방받는 수준이기에 깊은 얘기를 꺼내기에는 시간이 적었다. 반면에 상담사와는 감정을 공유했다. 그는 사십 대 초반이었고 미혼 그리고 혼자 산다는 것 등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알아나갔다. 하지만, 내가 유흥주점에서 일한 것만은 꺼내지 않았다.


이번에도 결국,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낑낑거리는 울음소리는 해맑게 혀를 내밀고 왈왈 짖으며 누군가를 따라가는 소리로 바뀌었다. 호감을 얻기 위해 매력을 얻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그는 혼자 살고 마흔이었기에 어쩌면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부분이 방아쇠였다. 나는 상담해 줘서 고맙다는 표시로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카페가 식당이 되고 식당이 술집이 되었다.

그러다가 서로 잔뜩 취해 속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내뱉은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마음이 통했고 곧바로 그의 집으로 가서 관계를 맺었다. 침대 위에 같이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삼 년이 지나고 그동안 연애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성인이 되었고 그의 지원 아래에서 여러 자격증을 취득해 사무보조로 취업했다. 옛날 과거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는 빨리 결혼하고 싶었는지 그 해 뜨거운 유월에 프러포즈했다. 꽃다발을 내게 건네며 손에 반지를 끼워 넣어주는 모습이 로맨틱했다. 그 자리에서 너무 기뻐 울음을 터뜨렸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보냈다.


문제는 그의 부모님이었다. 그들은 내가 고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그가 아무리 설득하여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같이 가면 뭐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집에 방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답식과 차가운 말투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초강수를 두었다.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 안 볼 사이로 남겠다고 말했다. 강요를 넘어선 사실상 명령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여자 하나 때문에 집안이 망한다고 나에게 삿대질하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그는 앞으로 찾아오지 않겠다며 내 손을 잡고 이끌며 나갔다.


그와 나는 동화책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로 활동했다. 매일 아침 식사를 차리고 그를 깨워 잠깐의 사담을 나눴다. 출근하기 위해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모습을 보며 포옹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면 빨래, 청소, 설거지를 하고 인터넷으로 장을 본 다음에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 준비가 끝나면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손수 내린 커피를 마셨다. 그것마저도 끝나면 대부분은 TV 시청이나 낮잠을 청했다.

그가 돌아오면 껴안고 저녁을 먹고 사담을 나눌 때도 육체적 관계를 맺을 때도 있었다. 나도 이제 보통의 사람이다. 보통의 신혼부부처럼 다를 바 없는 인생이 달콤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따로 말도 없었고 연락도 보지 않았고 전화도 안 되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초조하게 거실을 돌아다녔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렸다.


그는 만취해 있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은 건 절대 아니었으나 연락이 없었던 게 서운했다. 그가 들어오고 신발을 벗자마자 내가 말했다.


“어디 갔다 왔어. 걱정했잖아. 무슨 일 있었어?”


“미안해. 오늘 좀 일이 있었어. 너무 피곤하다.”


“저녁은 먹고 온 거야?”


“응. 오늘은 먼저 자볼게.”


화가 날 법한 상황이었지만, 그것보다 사랑이 앞서있었다. 그래서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오는 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물론 반갑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거슬렸다.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기도 하니 그때 물어봐도 늦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침이 되어도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마셨으면 그럴까 싶은 안쓰러움을 느꼈다. 황태와 콩나물로 해장국을 끓이고 그를 기다렸다.


정오가 되었을 때 그가 안방에서 나왔다. 인사를 건넸는데 그는 무시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했다. 무슨 상황인지 싶었지만 나를 보지 못한 걸로 하고 넘어갔다.


샤워하는 사이에 나는 황태 콩나물국을 끓여 김치 그리고 밥과 함께 식탁에 놓았다. 따뜻한 열기가 집안에 좋게 퍼지는 것 같았다.


TV를 보며 기다리고 있자, 그가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내 맞은편 식탁 의자에 앉았다. 말없이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떠 마셨다. 내가 맛있냐는 질문에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화났어…?”


“아니야 그런 거. 그냥 좀 생각할 게 많아서.”


“뭔데?”


“일이 있는데 그게 잘 풀릴지 모르겠네.”


그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잘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


그 이후로 그는 술을 자주 마셨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굳이 안방이 아닌, 다른 방으로 들어가 잠을 이뤘다. 서운함은 쌓이고 쌓였다. 언제 폭발할지가 관건이었다.


그날도 그는 술을 마시고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마중 나간 나를 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화장실을 갔다 나오고 이번에도 다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더 참을 수 없던 나는 문을 열며 화를 억누르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왜 그러는데. 왜.”


“요새 안 좋은 일이 많아서 그래.”


“그게 나한테 대하는 태도랑 무슨 상관인데.”


“너 때문이니까.”


“뭐?”


그는 조금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오열했고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감쌌다. 언성이 높아졌다.


“다시 한번 말해줘? 너 때문이라고!”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억울했다. 지금 상처받은 건 나인데 왜 내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표정과 나의 표정은 점점 똑같아졌다. 내가 말했다.


“왜 나 때문인데! 왜!”


그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삿대질하며 말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믿었는지 알아? 근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평소에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을 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처절함이 담겨있었다.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저런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싫었다는 표현보다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내일 얘기하자.”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두웠지만, 집 안이 너무 갑갑했다. 슬리퍼를 끌며 밖을 나돌아다녔다. 조명이 하나씩 꺼지는 아침이 될 때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안락하지 않았다.


그는 정오가 돼서야 일어났다.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화장실만을 들렀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뭐가 문제인지 꼭 알아야 하겠던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그가 서류뭉치를 던지며 말했다.


“우리. 이혼하자.”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판단이 안 섰다. 분노, 서운, 억울, 슬픔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만 나열할 수 있었다.


“내가 던진 서류 한 번 봐봐.”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흩날린 서류들이 보였다. 사진과 글자로 가득 차 있는 서류였다. 잘 보이지 않아 아무거나 한 장을 집고 봤다. 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삼 년 전 나의 모습이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한 남자 위에 올라타서 술을 마시는 사진이었다. 급하게 내가 다른 서류들을 찾다가 글자로 빼곡한 종이를 들어 올렸다. 그 종이에는 이혼이라는 단어 언급되어 있었다.


“왜 숨겼어? 왜 말 안 했어? 난 너 따라서 부모님과의 연도 끊었는데!”


“내가 다 설명할게. 응?”


“설명해도 못 받아들이는 건 똑같아. 이번 주 안에 이혼하고 짐 싸서 나가줘.”


그 말을 끝으로, 힘으로 나를 밀어내고 방문을 잠갔다. 감정적으로 큰 벽이 한순간에 공사가 끝났다.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죄책감이 컸던 나는 그의 합의이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도장을 찍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내게 몇 달은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송금했다. 그 돈은 마지막 예의가 아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이런 경험도 처음이었다. 과거의 사랑 그 때문에 현재의 사랑에 문제가 생길 줄 과연 나는 몰랐을까. 알면서도 부인한 건 나 자체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랑을 찾을 자신감도 마음의 여유도 바닥났다.


모텔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러야 했다. 오 일이 지났을 때 그동안 피운 담배는 한 보루를 넘어갔고 술은 열 병이 넘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다. 이유는 담배와 술을 사기 위함이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술 매대로 가는 순간 번개탄 세 개입 짜리 묶음이 하나 보였다.


모텔로 돌아와서 유서를 적다가 포기했다. 누구도 내 죽음에 슬퍼하는 이는 없으니 쓸 이유가 없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넘칠 정도로 받았다. 번개탄을 뜯어 불을 피웠다. 소주 한 병을 다 들이켰다. 문을 닫고 욕조에 들어가 담배를 연이어 피웠다. 숨 막히는 연기, 취기가 오른 정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이 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형태도 크기도 중요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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