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넓어 보이면서도 작은 건물, 녹이 슨 배관 금방이라도 재개발 될 것 같은 이 구역에서 다섯 살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보육원 선생님은 손을 연신 흔들며 친자식이라도 보내는 듯이 눈물을 흘렸다. 다른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팔을 흔들었다.
도착한 곳은 구식도 신식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아파트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부부는 이제부터 자신을 엄마와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선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도 그 말이 바로 입에서 나오지 않을 걸 예상했는지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유치원이라는 곳에 보내졌다. 그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이 나를 버리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했다. 그래서 첫날 유치원에서 누구하고도 놀지 않고 계속해서 오지 않는 부모님만을 기다리며 울었다.
저녁 다섯 시가 되어서야 어머니가 보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런 단어가 그리 좋았는지 어머니는 나를 껴안고 소녀처럼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은 여태까지의 외로움이 한 번에 풀리는 그런 것이었다.
온종일 울었던 탓인지 눈이 부었다. 체력도 바닥이어서 졸리고 배고팠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엄마라고 불렀기에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 셋은 눈동자를 교차하며 가족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셋이었으니까. 아침에 어머니 차를 타고 유치원에서 내렸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서 평범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수업을 들었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어머니가 와서 같이 귀가했고 여섯 시가 되면 아버지도 돌아와 식사를 함께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간판에는 산부인과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분명 입양됐는데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소파에 앉아 계속 기다렸다.
누군가 흐느끼면서 진료실에서 나왔다. 잠깐 졸다가 그 소리에 깼다. 어머니가 걸어오면서 울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울음에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기뻐서 감격에 가득 차서 웃음이 만개한 울음이었다.
내 옆에 앉았고 어머니는 두 손을 얼굴에 감싸며 허리를 접었다가 폈다가 반복했다. 눈물이 그쳤을 때는 환한 미소가 보였다. 내가 물었다.
“엄마. 행복해?”
“응. 엄마는 지금 정말 행복해. 진호야. 동생이 생기면 어떨 것 같아?”
동생은 내게 어떤 존재가 될지 미지수였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불행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셋 중 하나의 행복은 모두의 행복이니까 말이다. 내가 답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보면 다 좋아.”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어머니는 종이 한 장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했다. 옆에 있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손만 잡은 채로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아버지가 밥상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그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본 것처럼 말했다.
“이거 진짜야? 정말로?”
둘은 순식간에 포옹하며 뛰었다. 서로 볼에 입맞춤하고 밥과 국이 식어가며 온도를 잃어가는 동안 그들은 더욱 열이 올랐다. 그런데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셋인데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웃기만 했다.
조금 말라버린 쌀밥과 식은 국을 먹었다. 그 둘의 대화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난임 치료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었다. 어쨌든 치료는 무언가 나았다는 말이니까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부모님은 토요일만 되면 집안에 나를 혼자 두고 밖으로 나갔다. 무엇을 하고 오는지는 모르지만, 보통 서너 시간 정도 걸렸다. 문 앞에 내가 있으면 그저 머리를 한두 번 쓰다듬고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토요일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이 되었다. 나가지 말라고도 말해봤지만, 중요한 일이라면서 꼬박꼬박 매주 빠짐없이 나갔다가 저녁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점심은 혼자 라면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기시감을 느꼈다. 외로워야 할 상황이 아닌데도 고독했다. 아니면 그렇게 스스로 세뇌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눈이 내렸다. 하얗고 뽀얀 눈은 허무해 보였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고통스러운 것 없지만, 내려야만 하는 눈이 나와 비슷해 보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부모님은 늦게 일어난 나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이제 밥상을 차리기도 귀찮았는지 이만 원이 놓여 있었다. 배보다는 보살핌이 고팠다. 그래서 그 이만 원은 쓸 수가 없었다. 지갑 안에 간직했다.
다음 주 일요일이 되고 어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 시간째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이상했는지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가 작은 물건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거기에는 빨간 줄 두 개가 그어져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모님은 입을 틀어막고 껴안았다.
무슨 행복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에 내가 껴들 수는 없었다. 무언가가 막혀 있었다. 허물 수 없는 투명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진호야. 동생이 생겼다. 빨리 엄마한테 축하해줘.”
축하해주어야 할 일일까. 그때는 몰랐다. 동생이라는 불행이 내게 어떻게 다가올지 말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저 어머니한테 달려가 껴안으며 한마디를 넌지시 뱉을 수밖에 없었다.
“축하해. 엄마!”
“응. 아들.”
그 단어를 끝으로 아들에 대한 배려는 끝났다. 이제는 모든 것이 동생 위주였다. 나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의 대체제였을지도 모른다.
밥상 위에는 이제 내가 원하는 반찬이 없다. 임신한 어머니의 건강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하여 동생을 위한 건강식 위주였다. 아직 태어나지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존재한테 밀려버렸다. 밥만이 아니었다. 듣는 노래도 TV에 나오는 장면들도 모두 바뀌었다.
그래도 꾹꾹 참았다. 이게 나의 당연한 권리는 애초에 아니었으니까. 평생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 걸 잠깐이라도 알게 해준 게 고마웠으니까. 그런데 사람은 높은 곳에서 추락할 때 더 비참한 법이다.
어느 날은 무척 아팠다. 열이 나고 기침이 났다. 안방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손을 내 이마에 가져다 대더니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시간은 새벽 세 시를 가리켰고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 어머니도 같이 일어났고 아버지와 함께 나가는 나를 봤다. 어머니 입에서 나온 건 걱정과 안부가 아니었다.
“자기야 나 샤인머스캣 먹고 싶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어디가 아픈지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먹고 싶은 것과 뱃속 아이의 요구에 응한 답변일 뿐이다. 그래서 일부로 어머니를 보지 않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차 안에서 마스크를 썼다. 마치 나와 격리되어야 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혹시라도 옮게 된다면 어머니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말은 결론적으로 나보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우선순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아버지는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며 신용카드 한 장을 손에 쥐여주었다. 응급실에 들어가자 당연하다는 듯이 보호자의 유무를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던 보호자는 사라져 버렸다.
결국 혼자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를 걱정하며 초조해하는 눈초리를 원했다. 보호받고 있다는 그 느낌이 간절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것과 반대되는 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그저 진료에만 열중했고 나에게 약과 주사를 처방해 주었다.
수납한 후에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걸터앉아 계속해서 돌아가는 회전문을 봤다. 문이 한 바퀴 돌아갈 때마다 아버지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혹시 이곳에 나를 버리지는 않았을까 의심도 들었다. 손에 쥐여준 카드 한 장이 나와의 이별 가격이지 않기를 바랐다.
삼십 분 후가 되어서야 병원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섰다. 아버지가 거기서 내리고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한 말은 걱정도 우려도 아니었다. 그저 귀찮은 일을 끝냈는지에 관한 여부였다.
“진료 다 끝났어? 이제 가자.”
대답하지 않고 무표정을 일관하며 조수석에 탔다. 그리고 아버지 무릎 위에 있는 샤인머스캣이 보였다. 절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그 누구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밀린 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따뜻한 손길과 다정한 말 한마디는 유지되었으면 싶었다.
집에 도착하고 문을 열자, 어머니가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며 일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아픈 것도 잊어버렸는지 격양된 말투로 말했다.
“샤인머스캣 사 왔지!”
어머니는 나에게 눈길을 먼저 주지 않고 과일을 향해 있었다. 과일을 들고 씻지도 않은 채로 책상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현관에 서 있었다. 언제쯤 안부를 물을까 싶었다. 그 관심은 어머니가 과일을 어느 정도 만족할 정도로 먹었을 때 돌아왔다.
“왜 거기 서 있어? 얼른 들어가서 자.”
이 가족에게 처음에 나라는 존재는 어쩌면, 진짜 혈연으로 맺어진 아이의 대체품이 아니었을까.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도 이 정도인데 태어나면 나는 다시 버려지지 않을까. 무서웠다. 그날은 나 같은 어린이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버려진다. 이대로라면 나는 버려진다. 이 낙원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지치고 포기할 때도 되었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어머니 배에 귀를 가져다 대기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형이라는 걸 각인시켜 주기 위해 노력했다. 즉, 배울 점이 많아 보이는 형이 되어야 했다.
아등바등 노력했다. 어머니의 배는 점점 불러왔다. 그사이 나는 일곱 살이 되었다. 유치원이 끝났지만,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도 부모님은 오지 않았다. 굶주린 배를 잡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김치 하나 없이 식탁에 놓인 빨간 국물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열 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전화해야 하나 싶었다. 근데 그러면 그들이 매긴 나의 등급이 더 떨어질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건 계속 기다리기라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기다리다가 잠들었는지 일어났을 때는 새벽이었다. 혹여나 부모님이 들어왔나 싶어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에는 아버지 혼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깊이 잠들었는지 코까지 골고 있었다. 내가 중간에 깰까 봐 조심스럽게 들어온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무 소식도 알리지 않은 채.
뜨지 않았으면 해를 기다리며 아침까지 버텼다. 아들 방문조차 열어보지 않고 출근 준비하는 아버지의 소리가 들렸다. 먼저 나가서 얼굴을 본 사람은 나였다. 내가 물었다.
“엄마는?”
아버지는 기쁜 소식을 알리는 듯이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말투도 조금 흥분해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적어도 나에게 좋지 않았다.
“어제 네 동생이 태어났어. 아들. 동생이랑 잘 지내야 해? 알았지? 엄마랑 동생은 지금 병원에 있어.”
동생이 태어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단지 내가 좋은 형이 되라는 말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양보할 각오를 하라는 말일까. 아버지는 그 말을 남기고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딱딱한 구두 굽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짐들이 포장지에 둘러싸여 운반되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싶어 집 안을 둘러보니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갈 거야. 좋겠지?”
사실 좁은 집의 온기가 더 좋았다. 집이 넓어지는 만큼 부모님과의 거리도 넓어질까 봐 두려웠다. 그런 두려움은 나만 가졌나 보다. 아버지는 벌써 이사 갈 집에 기대감만 가득 차 있었다. 나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이사한 곳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신축 아파트였고 전보다 넓었고 깨끗하며 무엇보다 바깥의 풍경이 좋고 햇살이 잘 들어왔다. 다만 옮겨진 내 방 창문만은 북향이어서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방에서 한참 망상을 하던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거실로 나갔다. 집 안 공기가 어색했고 마주친 어머니는 더 어색했다.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눈을 마주쳤고 어머니에게 오랜만에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불렀다.
“엄마!”
어머니는 한 손에는 아기를 그리고 다른 한 손은 입가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때 그 아이의 이름을 들었다.
“쉿. 준한이 깨면 어쩌려고. 이제 동생도 생겼으니까. 조금 어른스러워져야지?”
난 이제 고작 일곱 살인데 어떻게 해야 어른스러워질까. 희생을 감내하고 고통을 참으며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부모님 곁에 남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형이라는 존재가 처음이기도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에 놓였기 때문에 더욱 힘들 길만이 남았다.
동생이 생긴 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면에서 먼저였던 내가 이 등으로 밀려났다. 아니, 가족이라는 구성원 자체에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동생이 우는 것과 내가 우는 건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웃을 때와 동생이 웃을 때 가족에게 다가오는 행복은 차이를 보였다.
장난감도 투정도 이제는 부리지 못했다. 그럴수록 부모님은 내게 타이르기보다 인내를 요구했다. 무엇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사랑도 점차 손을 놓아야 할 정도로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원망의 대상을 따지고 싶었다. 그게 동생이었다. 얘만 없더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애를 만지는 것조차 허락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몇 년 후 중학교에 입학했다. 동생의 나이는 여섯 살이 되었다. 아직 인내와 참을성보다 본성이 앞설 때였다. 동시에 그런 본능은 동생을 더욱 교활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나보다 우위임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했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 사람이라는 게 그럴지도 모른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춘기가 도졌다. 원래도 그러했지만, 동생과 더 거리를 두었다. 그 애가 미웠고 싫었다.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듯이 자연스럽게 나는 지는 해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막말로 질이 나쁘든 좋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춘기가 온 남자애들은 질이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어울려서 부모님의 관심을 어떤 쪽이든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들과 우르르 몰려다녔고 담배를 배웠고 술을 마셨다.
하지만, 적정선이라는 게 존재하듯이 부모님 앞에서는 최대한 담배 냄새를 지우고 술도 안 마신 척을 했다. 그 적정선을 지켜야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생님에게 담배와 술을 한다는 소식이 들어가자, 부모님을 불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동생의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자마자 하교하고 집에 들어오는 즉시 나를 불렀다. 어머니는 거실에서 동생을 놀아주고 있었다. 미소가 입에 걸려있었다. 방문을 들으라는 듯이 크게 닫았다. 동생은 놀라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달래주고 재운 뒤에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까의 미소는 사라지고 움직이지 않는 입술만이 남아있었다.
“담배 피운다며 너.”
이름도 아니고 아들도 아닌 너라는 말에 쓰나미처럼 서운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티 내지 않고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신경질적인 말투는 숨길 수 없었다.
“어. 왜.”
“왜? 그게 엄마한테 할 말이야? 담임선생님이 보자고 했다며 어떡할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됐다. 내일 엄마가 학교 찾아가서 얘기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다. 다 부모님 때문인데 준한이만 바라보고 어느새 등한시한 나를 봐주지 않는 게 이유였는데 내게 어떡할 거야라고 묻는 게 화가 났다.
그렇지만, 그들을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마음속에 깊이 서린 서운함이 차갑게 물들고 있다는 걸 알아주기만을 원했다. 그것조차 사치인 걸까. 내가 피가 섞이지 않았기에 저러는 걸까 싶었다.
학교에 어머니가 찾아와서 상담하고 갔다는 소식을 담임선생님에게 들었다. 나에게 말조차도 하지 않고 왔다 간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몰랐냐고 물었고 그에 관해 긍정의 대답을 건넸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것인지 그는 내게 고민이 없냐고 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태어난 게 마치 죄악처럼 느껴졌다. 결국, 고민거리 따위 없다고 말한 후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 뒤로 운동장을 미친 듯이 돌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집 안으로 돌아가자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보이지 않는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벽은 형체도 잡히지도 않았기에 허무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벽은 내가 집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사방으로 막힌 채 따라다녔다. 그 너머로 보이는 세계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세 사람이 보일 뿐이었다.
잠깐 잠이 들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나가는 순간 어머니가 핸드폰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진호야. 좋은 소식이 있어! 네 친어머니 찾았데!”
어머니를 찾았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 그러면 여태까지 나한테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가사도우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걸까. 나를 키웠다고 생각하긴 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니 그 자리에서 여태까지 참았던 화가 솟구쳤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지금 누군데?”
주먹으로 턱을 강하게 맞아 쓰러진 사람처럼, 전원이 나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어머니는 아니, 그녀는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화가 난 내가 무서웠는지 공포의 떨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제 나는 아들이 아닌 남이고 그저 가정의 침입자에 불과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진호야. 친어머니 찾았다니까? 기뻐해야지. 얼른.”
부정의 의미가 그 말에 넘칠 정도로 잔뜩 담겨있었다. 그녀를 보니 솟구친 화도 일정 기준을 넘어버렸는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분노라는 단어가 아닌 공허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이곳을 떠나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가는 걸까. 아니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건가, 헷갈렸다.
한 달이 지났다. 친어머니와 만났고 서류도 다 정리해서 이제 진짜 아들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버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잃어버린 것이었다. 친아버지는 나를 잃어버리고 몇 년 후 암에 걸려 투병하다가 나를 찾기 일 년 전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죽었다고 했다.
친어머니를 아줌마가 아닌 어머니라고 부르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그래야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나를 입양했던 가족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함이었다.
친어머니는 나와 같이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식과 같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을 하고 싶어 했다. 군말 없이 하자고 하는 것에 최대한의 감정을 쏟아냈다. 같이 웃는 날이 많아졌고 함께 일상을 공유했다.
드라이브를 즐기고 공원을 걷고 맛집에서 밥을 먹었다. 가끔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고 여행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그들을 서서히 잊기 시작했다. 빈자리를 메꾸는 게 아니라 이제야 조각이 옳게 맞추어졌다.
가끔 생각이 나지만, 약간 거슬리는 정도 그게 예전 가족에 관한 생각이었다. 좀만 더 있으면 없는 일처럼 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하늘은 내게서 행복을 뺏어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날 친어머니는 배를 부여잡고 기절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기절에서 벗어났지만, 계속된 고통을 호소했다. 그 작은 입에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제가 직장암 말기라서 그래요.”
거기서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슨 선택을 해야 했을까. 도망치듯이 응급실에서 빠져나왔다. 머리가 핑 돌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아무 곳에나 앉아 흐느꼈다.
내가 바라는 단 한 가지는 관심이었는데 이제야 꿈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빼앗아 가니 남는 게 없었다. 더욱 무기력한 건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랑하는 존재가 죽어가는 과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친어머니는 결국, 입원해야 했다. 그동안의 고통을 버틴 것도 대단한 거라고 했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끙끙 앓으며 참았을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다시 비추었다. 꽤 큰 고통에 계속해서 진통제와 수면제가 그리고 수액이 들어갔다. 점점 야위어가는 팔목과 손에 근육은 말라가고 뼈대가 도드라졌다.
친어머니는 얼마 버티지 못하셨다. 한 달 후에 돌아가셨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고작 육 개월이었다. 그 육 개월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굴러다니는 서류와 통장에 찍힌 큰 숫자만이 남았다.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누구세요?”
“진호야. 엄마인데.”
이제 와서 다시 엄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리에서 바로 부정했다.
“어머니 돌아가셨는데요.”
그 말을 들었는데도 애도의 뜻을 표하거나 안타까움을 내지 않았다.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사정이 좀 안 좋아서.”
처음엔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조금 동떨어진 관심에서 나중에는 완벽한 타인으로 마지막은 돈이라는 밧줄에 묶인 관계였다.
“죄송해요.”
전화를 끊었다. 누구도 내게 바라는 단 한 가지를 충족해 주지 못했다. 하늘이 무심한 건지 아니면 내가 저주받은 아이인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인생은 고통인 건지. 열다섯 살, 사춘기가 와서 부모의 도움이 절실한 한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