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가 공부방을 그만두었다. S는 5년을 다닌 장기고객님이었다. 환경을 바꿔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도 동의했고 다른 환경에서도 성적에 변화가 없으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에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부터 불안이 시작되겠구나.
S같이 오래 다닌 고객님은 시간에 비례해 쌓인 정이 꽤나 단단하다. 그 단단한 것을 하루아침에 끝내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안녕을 해야 하는 것은 최소 한 달 이상의 서운함과 불안이 함께 한다. 아이에게 준 내 마음과 내가 받은 아이의 마음이 정리될 어떠한 의식도 없다. 그저 서서히 가라앉아 저절로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집 앞의 유치원에서 졸업식을 한 모양인지 예쁜 한복을 입고 손에 커다란 꽃다발을 든 조무래기들이 상기된 얼굴로 돌아다닌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사진을 찍으며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잘 놀았습니다 잘 가라 씩씩하게 자라렴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나는 꽃다발도 애국가도 없이 혼자서 안녕을 해야 한다. 듣는 사람도 말할 사람도 없다.
5년 댕깄으면 많이 댕겼네 내라도 바꿀라 하겠다
엄마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도 알고 있다. 오래 다녔고 S의 동생은 계속 다닐 거고 내가 잘못해서 S가 나간 것도 아니고..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은 각자 의지를 가지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나를 조종하기 때문이다. 서운하다. 아쉽고 쓸쓸하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제일 좋다. 이것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오늘 수업할 내용을 공부한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을까 기대하며 책을 읽는다. 오늘은 그림책을 읽어줘 볼까 하며 그림책을 뒤적거려 본다. 내 마음을 온통 장악해 버린 섭섭함을 구석으로 쓸어낸다. 불안의 먼지가 풀풀 날리고 쓸어도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지만 그래도 큰 덩어리를 구석으로 몰아낸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도 다시 문 앞에 돌아와 있을 거라 그냥 구석에 놓아둔다. 가만히 놓아두고 내 할 일을 찾아서 한다. 할 일이 없어지면 공부방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있는다. 이 작은 나의 왕국을 어떤 것으로 채울지 가만히 생각한다.
어느새 수업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온다. 하나하나 가르친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어 그래 그럴 수 있지. 친절하게 가르친다. 이건 어려워서 못 풀었어요. 이 문제에서 중요한 건 이거야. 다정하게 가르친다. 선생님 오늘 머리 풀었네요 이뻐요. 웃으며 가르친다. 하하하하하하 가르치다 보면 밤이 오고 나는 조금 치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