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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암 Jul 19. 2024

동네수학팔이

내가 파는 것은 형태가 없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훌륭한 직업이다. 종이쓰레기가 나오지만 종이는 재활용이 된다. 내게서 흘러나온 것이 쓰레기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수학을 팔기 위해 잔인해진다. 어떻게든 쑤셔 넣기 위해 날카로운 말로 아이의 뇌를 쩌억 벌린다. 폭격처럼 수학을 퍼붓는다. 넘쳐흐르는 게 보여도 일단 퍼넣는다. 아이의 얼굴은 굳고 나는 빨개진다. 내 행동을 후회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내 행동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아이는 제대로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르친다는 이유로 내 거침이 정당화된다. 정신 차린 나는 아이에게 나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이는 이미 너덜너덜하다.


 되도록 흡수율이 적기를 바랄 때가 있다. 내가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부정적인 것들. 그것이 아이에게 그대로 흡수된다고 생각하면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진다.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검열하게 되고 그렇게 자유를 잃는다. 자유를 잃은 수학팔이는 자연스러울 수가 없고 그래서 나는 되도록 흡수가 조금만 되기를 바란다.


 다행히 아이들은 항상성 유지를 위해 내가 내뿜는 것을 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이들이 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너무 가까이 뿜어대면 안 된다. 너무 멀어져도 내가 받는 돈의 가치가 없어진다. 나는 돈을 받고 아이들을 대해야 하므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나는 수학팔이이다. 돈을 받고 수학을 판다. 수학을 팔기 위해 잔인해지기도 하지만 괜찮은 것도 팔고 있다. 

빠른 연산능력이라든가 저 밑바닥개념부터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든가 유머감각이라든가 집중력이라든가 휘어잡을 카리스마라든가. 다행히도 나는 그것을 갖추고 있고 잘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사회적으로 신뢰받을만한 인간이고 그것을 아이들은 알아본다. 학부모들도 알아본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사실을 깨닫고 나를 제어할 사람은 오로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유롭고 외롭다. 수학팔이는 오만하게 자신을 신뢰한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나라는 것은 안도감과 자신감을 주면서도 필연적으로 건방짐을 동반한다. 나의 부어오른 자아를 깎아낼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 내겐 절실히 그 장치가 필요하다. 스스로 그 장치를 찾아내어 실행하고 평가해야 한다.  나로부터 미천한 어린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연약하고 잘 부러지는 어린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계속 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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