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팔이의 영업
어느 일요일 아침 막 일어난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이 놀이터에 가자고 했다. 바로 앞동에 있는 작은 놀이터 말고 유치원 앞에 있는 큰 놀이터 가자고. 나는 좋아서 형과 집을 나섰다.
“재밌는 거 보여줄게”
형은 그네의 한쪽 끝을 잡더니 위로 탁 던져서 한 바퀴 줄을 감았다. 우와.
형은 높아진 그네에 나를 앉혀주었다. 원래 타던 높이보다 높은 데서 굴려보니 재미있었지만 왠지 그네가 막 다이내믹하게 흔들리진 않았다. 붕 날아서 착지하는 걸 연습하고 싶었다. 며칠 전에 슈퍼 갔다 오다가 누가 착지하는 걸 봤는데 멋있어 보였다. 나는 그게 하고 싶었다.
“형아 이거 원래대로 풀자”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해도 그네가 풀리질 않는다. 그네 기둥을 타고 올라가서 풀려고도 해 봤지만 신발이 미끄러워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형은 계속 그네를 위로 던져도 보고 흔들어도 봤지만 그네는 풀리지 않았다.
“어 선생님!”
형이 갑자기 누군가를 향해 인사를 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사람인데 어디서 봤는지는 생각이 안 나서 가만히 있었다. 그 사람은 손에 묵직해 보이는 봉지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는 파란 쓰레기봉투였고 하나는 음식물 쓰레기인 듯했다.
“... 아침부터 뭐 하냐..?”
그 사람은 봉지를 양손에 들고 걸어가며 형에게 물었다. 형이 대답도 하기 전에
“그네 풀어줘?”
라고 했다. 형은 활짝 웃으며 네! 소리쳤다. 그 사람은 쓰레기봉투를 쓰레기통에 휙 집어넣고 음식물 쓰레기를 탈탈 털어 넣더니 그네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형이 던지고 밀고 안간힘을 쓰던 방향과 반대방향에서 그네를 힘차게 위로 들어 올려 있는 힘껏 아래로 밀었다! 그네는 완벽한 원을 그리며 챠라락 풀렸다.
“우와 우와!! 선생님 감사합니다!”
형은 신나게 환호했고 나는 입을 벌리고 풀린 그네와 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사람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00, 오랜만이네”
그 사람 손에 묻었을 음식물 쓰레기의 잔해가 내 머리에 묻는 게 좀 신경 쓰였지만 그네를 단박에 풀어줬기 때문에 얌전하게 있었다. 그런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형이 말해줬다. 형이 다니는 공부방 선생님이라고. 나는 몹시 놀랐다.
얼마 전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 **누나가 아파트 1층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문에 시계가 달려있어서 항상 시간을 확인하던 그 집이다.
“나 저기 공부방 다니는데 선생님 진짜 무서워. 막 때려. 나 어제 뺨맞았다?
”어 나도 맞았는데. 구구단 틀려가지고 선생님이 뺨 때렸어. “
”나는 선생님이 바닥에 엎드려보라길래 엎드렸더니 등을 발로 막 밟더라 “
”등에서 우두둑 소리 나는 거 재밌지 않냐? 되게 시원해. 좀 아프긴 한데 잠이 확 깨더라 “
누나와 형이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몹시 놀랐다. 아니 선생님이 뺨을 때리고 밟는다고? 그런데 형과 누나의 표정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이 그래도 돼? “
누나는 씩 웃더니 ”근데 재밌어 “라고 말했다. 공부 못한다고 맞고 밟히는 게 재미있을 리가 있나...
엄마가 형이 다니는 공부방에 나도 같이 가라고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쳤다.
”싫어! 그 공부방 선생님 애들 때린대! 막 밟고 욕하고 구구단 못 외우면 목을 조른댔어! 절대 안 가! “
엄마는 쿡쿡 웃더니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좀 있다가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 네 선생님.. 00 이는 아직 안 간대요 무섭다고.. 네.. 그렇죠 하하하하 “
저런 데는 절대 안 가. 나는 아직 구구단 잘 못 외우니까 뺨 때릴 거잖아. 절대 안 가.
그네착지를 실컷 연습해서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착 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형이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핫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핫케이크는 내가 좋아하는 아침이다.
”엄마엄마 아까 공부방 선생님이 그네 풀어줬다? 내가 못 풀어가지고 고생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한 방에 풀었어 선생님은 문제도 잘 풀고 그네도 잘 풀어 “
형이 아까의 상황을 엄마에게 설명하는 동안 조용히 핫케이크를 먹었다.
아까 그 사람이 뺨 때리고 밟는 사람이랑 같은 사람이라고?
근데 그네도 풀어주고 다정하게 머리도 쓰다듬고 그냥 보기엔 착해 보였는데..
”형아, 그 선생님 잘 가르쳐? “
”선생님 진짜 빨리 계산해. 뭘로 약분해야 되는지 물어보면 바로 나와. “
엄마가 나를 보고 말했다
”00이, 너 무섭다고 안 다닌댔잖아. “
그랬다. 그런데 오늘 직접 만나니까 무서운 사람 같지 않았다. 그네도 풀어주고. 정말 때릴까?
엄마에게 공부방에 다녀보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기뻐하며 선생님에게 연락했고 나는 가방에 엄마가 사 온 교재를 넣고 공부방으로 갔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막 웃었다.
”00이, 니 내한테 반했다메“ 하면서 아주 크게 웃었다. 금니가 번쩍거렸다.
선생님은 어리둥절한 나와 공부하던 아이들에게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막 웃었다.
얘가 걔예요? 하하하하하하
나는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선생님이 앉으라는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