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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암 Aug 16. 2024

돌깨기

새해 첫 수업시작일에 4명의 3학년이 한 번에 들어왔다. 공부방 막내라 안 그래도 작게 느껴지는데 그 네 명은 또래보다 작았다. 꼬맹이 넷은 의자에 낑낑 기어올라가서 겨우 앉았는데 책상이 턱에 닿았고 발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 아이들의 발이 바닥에 닿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그 아이들의 보호자는 다 똑같이 말했다. 공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않으니 학교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게만 만들어달라고. 3학년 1학기 첫 단원인 세 자릿수의 덧셈하는 데 1월이 꼬박 다 갔다. 아이들은 그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계산하며 문제를 풀었다. 한 땀 한 땀 가르쳤다. 네 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수학을 공부했는데 초등수학의 가장 큰 고비 5학년이 되자 1명이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졌다. M이었다.      


 M은 그 작은 아이들 중에서도 제일 작았다. 손이 너무 작아서 M의 연필은 대나무같이 보였다. 아이고 이 쪼꼬만 손으로 공부한다고~ 하면서 M의 손을 잡으면 히히 웃었다. M은 집에 가서 많이 울었다. 공부방에서는 씩씩했고 집에 가서 울었다. 친구들보다 진도가 느린 것도 속상하고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화가 나서 울었다. M이 집에서 울면 어머니는 잘 달래주고 내게 문자를 보내셨다. M이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해뒀다. 안 그러면 정말 씩씩한 줄 알기 때문이다. 씩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M은 차츰 집에서 우는 일도 적어졌고 어머니의 문자도 거의 오지 않게 되었다.        


 공부방에서 초등학생은 한 학기에 2권의 교재를 공부하는데 그래도 1권 반은 풀었던 M은 5학년이 되자 1권을 겨우 풀었다. 한 문제 한 문제가 고비였고 언덕이었고 난항이었다. 분자와 분모를 구별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약분을 하려면 나눗셈을 해야 하는데 구구단을 떠올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으며 통분을 하려면 곱셈을 해야 하는데 곱셈도 빠르지 않고 뭘 곱해야 할지 몰라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M이 가만히 있으면 생각하고 있는 건지 멍 때리고 있는 건지 판단을 한 뒤에 살짝 건드려 의식을 되찾아 주거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계산들을 도와주었다. 아직 습득하지 못한 개념을 다시 설명해 주고 알아들었는지 눈을 보고 확인했다. 수학에 지친 M이 힘없이 그리고 있는 개나 고양이에 명암을 넣어주기도 했다.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는 얼굴에 점도 없는 일란성쌍둥이처럼 구별하기 어려웠고 M의 작은 머리통에 쏟아져 들어가는 개념들은 혼란에 혼란에 혼란으로 범벅되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친구들이 5학년 1학기를 끝내고 2학기 예습을 들어갔을 때도 M은 1학기 4단원을 하고 있었다. 진도가 느려서 친구들이 치는 단원평가를 함께 칠 수도 없었다. M은 돌을 깨서 길을 만드는 것처럼 수학을 공부했다. M은 울지 않았다. 나도 힘드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겨우 돌을 깨서 길을 만들었는데 그 길이 틀린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M은 울지 않았다. 그저 지우개로 벅벅 지우고 다시 풀었다. 또 틀려도 한숨도 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늘 하던 대로 돌가루를 치우고 다시 바위를 탕탕 깨기 시작했다. 그렇게 5학년 1년 동안 M은 2권의 문제집을 풀었다. 친구들이 공부한 문제집 묶은 것을 무겁다고 투덜거리며 짊어지고 돌아갈 때 M은 달랑거리며 들고 갈 수 있었다.      


 6학년 예습이 시작되는 날 M에게 말했다.

- 6학년때는 모든 교재를 다 풀었으면 좋겠어. 공부하는 시간을 좀 늘려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M은 내 눈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30분 일찍 와서 공부했다. M은 이제 더 이상 돌을 깰 필요가 없었다. 구구단을 순서대로 떠올리며 가만히 있던 시간은 1초 내외로 줄어들고 하나하나 써가면서 했던 곱셈과 나눗셈을 머릿속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보다 빨리 1단원을 끝낸 M에게 다 했으니까 오늘을 빨리 가도 된다고 하자 M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하고 천천히 걸어 공부방을 나갔다. 그런 M의 뒷모습을 친구들이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M이 나가고

-아이고 정말 뿌듯하다 그쟈

라고 말하자 손을 바삐 움직이며 계산하던 아이들이 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공부방 칠판 구석에 아이들의 키를 표시해 둔다. 매해 첫날 아이들의 키를 재어놓고 수시로 재며 키가 컸는지 본다.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잘 자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그래프이다. 1년이 지나면 표시해 둔 아이들의 키는 150cm과 160cm 사이에 정점이 있는 정규분포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M학년 아이들이 이제 그 정점을 향해 진입하기 시작했다. 키를 재어보니 놀랍게도 M가 그 학년에서 두 번째로 키가 컸다. 제일 작았던 M이 쑥쑥 자란 것이다. 친구들은 M이 본인보다 더 크다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씩씩해진 M는 소리를 내지 않고 히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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