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난 동네수학팔이
수업시작 20분 전에 갑자기 흉통이 시작되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극심한 흉통에 놀라 어쩔 줄을 모르며 심호흡을 하고 소파에 누워봤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다. 수업을 취소했는데 별 거 아닌 거면 어떡하지. 휴강했는데 그냥 통증이 가라앉아버리면 어떡하지. 보강하려면 귀찮은데. 그러나 통증의 강도는 수업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일단 첫 타임 수업은 못하겠다고 고객님의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늘 가던 동네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만의 하나 심장문제일지도 모르니 빨리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심장이라고? 설마 심장이겠어 그냥 체한 거겠지.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 먹었다. 그 소화제를 다 토하고 난 뒤 미친 듯이 강도 높은 통증이 찾아오고 나서야 심상찮은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인지했다.
쓰러질 듯이 들어간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나를 벗기고 찌르고 CT기계에 밀어 넣었다. 진통제는 전혀 듣지 않았고 통증은 갈수록 강하게 내 가슴을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때렸다. 호흡이 너무 빨라 간호사가 숨을 천천히 쉬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혈압은 200 넘게 치솟고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CT결과가 나왔다며 나의 법적배우자가 불려 갔다. 고통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띄엄띄엄 의사의 말이 들렸는데 심각한 분위기였다.
배우자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손에 힘이 빠졌다. 힘 빠진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을 거라고 했다. 괜찮기는 씨발 이렇게 아픈데 뭐가 괜찮아. 넋이 나간 배우자의 설명에 의하면 나의 대동맥이 안쪽에서 터졌고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파열하여 바로 즉사한다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지금 이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해서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운나쁘게 그 전에 대동맥이 터지면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CPR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아 시발.. 수업 어떻게 해... 오늘 수업은 힘들겠다고 고객님들께 문자를 보냈다.
내 눈앞에 갑자기 죽음이 펼쳐지자 죽으면 수업은 안 해도 되는구나 싶었다. 수업도 안 해도 되고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쓴다. 왜냐하면 죽으니까.
나는 급하게 서방에게 유언을 했다. 납골당은 정말 싫으니까 거기다 잡아넣지 말라고. 폰 잠금해제 패턴, 각종 아이디와 비번, 통장비번, 내 보험내역 등을 알려줬다. 동네수학팔이 하나가 죽어도 다른 동네수학팔이들이 많으니까 고객님들은 알아서 다른데 가겠지...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연결되었고 사설응급차가 나를 실어 날랐다. 가는 동안 구조사가 살 수 있어요!
아직 골든타임이에요! 살 수 있어요! 라고 소리치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다시 응급실에 실려 들어가 5명쯤 되는 의료진들에게 벗겨지고 찔리고 소독당했다.
소식을 듣고 급하게 날아온 가족들이 응급실 앞에서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나는 이번 주 수업은 힘들겠다고 고객님들께 문자를 보냈다.
쾌활한 심장혈관흉부외과 의사가 왔다. 다행히 수술하지 않고 약물치료로 가능하다고 했다. 서방과 나는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중환자실로 가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에 딸들과 엄마와 언니가 차례로 내 얼굴을 보고 펑펑 울었다. 장례식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라며 서방이 중얼거렸다.
중환자실에서 또 의료진들에게 벗겨지고 찔리고 소독과 검사를 당했다. 각종 진통제와 약과 수액과 검사기계와 소변줄을 주렁주렁 달아서 나는 돌아눕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머리맡의 모니터에는 내 심전도와 맥박과 호흡수가 계속 그래프를 그리고 있고 팔뚝에 둘러진 혈압계는 수시로 윙하며 팔뚝을 조였으며 내 혈액은 계속 뽑혀나갔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있는 환자는 나밖에 없다며 청소하시는 분이 살짝 말해주셨다. 새벽에 옆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었나?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찾아온 의사가 내 대동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저 어제 정말 죽을 뻔 한거죠?
의사는 대답했다. 환자분, 지금도 죽을 뻔하고 계신 중이에요.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입원실로 옮겼다. 나는 이번 달 수업은 힘들겠다고 고객님들께 문자를 보냈다.
운이 좋아 살아남으면 한 달일 것이고 죽으면 그걸로 끝. 고객님들은 모두 나의 쾌유를 빌어주셨다.
운이 좋아 살아남아서 다시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객님들께 연락했다. 얼마나 돌아올까.
절반은 돌아올까. 서방은 절반 돌아오면 성공이고 하나도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생존기념 떡과 함께 고객님을 기다렸다.
모두가 돌아왔습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객님들에게 나의 상태를 설명했다.
고객님들은 한 달 동안 놀아서 좋았지만 선생님 걱정을 많이 했다며 꽃과 편지를 주었다.
대동맥 박리의
5년 생존율 75%
10년 생존율 60%
내가 수학을 팔 수 있는 시간이 이제 그리 길지 않다.
대동맥이 터질 때 터지더라도 나는 오늘의 수학을 팔겠다.
죽으면 못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