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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 공교육

by 파로암

-이건 학교선생님이 맞다 해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거든. 학교선생님이 기준이니까 꼭 물어서 확인해.


나는 공교육을 신뢰한다.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우며 공부를 강요당하고 자유를 억압받던 때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다니라고 하니까 다니고 공부하라고 하니까 했는데 그게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떤 의미를 가진 일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개념을 잘 가르친다. 내 새끼의 공개수업에 갈 때마다 느끼는 바다. 학교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개념을 잘 가르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교과서를 읽으며 한줄 한줄 설명하는 옛날 방식도, 화면에 여러 가지 자료를 띄워가며 설명하는 지금의 방식도 공부를 무척 잘했던 우수한 인재들은 본인보다 미천한 것이 확실한 아이들의 뇌를 효과적으로 열어 지식을 주입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치고 온 시험지를 봐도 느껴진다.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심사숙고한 문제들. 교과서를 바탕으로 냈지만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공부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문제들을 보면 학교선생님들이 확실히 똑똑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은 공간적 물리적 제약으로 아이들을 하나하나 케어할 수 없는 학습에 관한 시스템을 보완하는 일이다. 학교선생님은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한 문제를 하나하나 봐줄 수는 없으므로 내가 그 틈을 돈을 받고 메꾼다. 그렇게 돈을 버는데 사회적으로 명예는 없다.


명예로운 그들이 하는 수업을 집중해서 들으면 무척 재미있다. 근본을 파헤친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언어를 하나하나 분해해 의미를 찾아주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이번에 들은 공개수업은 사회였다. 그 중에 노동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 일을 할 때 계약서를 써야하는 이유와 불합리한 노동조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가르쳤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간결하고도 적확한 단어에 새삼 감탄했다. 역시 배운자들이야. 필요한 부분을 적당량 잘라내어 아이들에게 먹인다. 내가 실제로 뛰는 훈련을 시킨다면 그들은 왜 뛰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서울대 나온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 표현력과 전달력 또한 굉장하다. 내 아이는 서울대 나온 사람이 왜 우리같이 미천한 애들 가르쳐? 서울대 나와서 고작 이런 일 하는거야? 라며 선생님의 직업을 비하했다. 그 선생님에게서 배운 아이들이 어떤 싹을 틔울지 모르는 미천한 나의 새끼여. 그 입 다물라.


-선생님 이번 시험범위 줄어들지도 몰라요

-왜? 일차부등식까지하면 딱 맞는데?

-우리반 수학수업을 못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안나오세요

-에? 왜?

-.....교통사고..

학교선생님이 교통사고가 나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학사일정과 시험범위와 그 학생들이 다니는 공부방까지. 명예를 가진 자가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나면 많은 사람의 파장이 흔들린다. 선생님이 쾌차하여 학교로 무사히 복귀하실 수 있길.


시험치고 나서 채점을 할 때 아슬한 답안에 대해 대쪽같은 신념을 내세워 점수를 와장창 깎아버리는 선생님들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공교육의 실행자들을 신뢰한다. 고생하십니다. 나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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