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은 안전망인가 족쇄인가
이제야 말이지만 나의 회사생활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여태 아무도 해본 적 없는, 도무지 신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난이도의 업무를 입사 직후부터 맡게 되었다. 심지어 그 팀의 상근직은 나 하나뿐이라 더부살이하듯 A팀 끄트머리에 남는 책상 하나를 써야 했는데, 모양은 좀 빠져도 덕분에 옆 팀 사수로부터 기본적인 것들은 배울 수 있었다. 책상 끄트머리 한 칸이나마 내 자리가 있다는 만족감이 컸다.
사실 이곳이 내 첫 직장은 아니었다. 첫 취업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게 귀한 줄 몰랐다. 세상 무서운 걸 모르던 나는 6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뒀다. 이것저것 일을 하긴 했지만 정규직의 벽은 높았다. 그렇게 몇 년을 고전하며 세상의 거친 풍파에 제대로 후드려 맞았다. 계속 최종에서 미끄러져 정신적으로 고통이 컸다. 그러다가 합격을 한 것이다. 아마 나는 그게 썩은 동아줄이었대도 그것을 잡았을 것이다. 절대 내 손으로 그 줄을 놓을 수는 없다.
처음엔 마냥 행복했다. 아침마다 출근할 곳, 내 가치를 알아주는 곳, 함께 어울릴 동료들이 있다는 게 좋았다. 명함도 새로 생겼다. 이 작은 직사각형 종이가 주는 힘은 꽤 거대해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든 아픔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이 명함의 뒷면이 나를 절벽 아래 미지의 곳으로 떨어뜨리더라도 언제든 다시 기어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번듯한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하고 있다는 게 뿌듯했다.
맡은 일이 힘들기는 했어도 그건 반대로 큰 기회이기도 했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 나름의 전문분야를 구축하기도 했고, 그 시간을 통해 집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시기마다 있었던 그 고비들이 내 회사 생활의 강력한 근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해결사가 된 듯한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훌륭한 리더와 죽이 잘 맞는 팀워크도 경험했다. 그때의 우리 팀은 요청하지 않아도 서로 돕고, 아무리 힘든 일도 왁자지껄 술 한잔에 털어내 다음날이면 활기를 되찾았다. 서로 강력하게 신뢰하고 있음을 말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리더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더 높은 수준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시기는 내 회사생활의 최대 자산이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를 그려준 지도 같은 시간이었다.
좋은 시절을 너무 일찍 겪은 걸까?
언젠가부터 출근이 점점 버거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비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와 나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회사도 나도 모두 퇴보하는 것 같았다. 그 작은 명함이 이젠 너무 묵직하게 느껴졌다. 먼 여행길의 바퀴 없는 캐리어처럼 성가셨다. 매일을 성실하게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사람들과 하하호호 잘 어울리면서도 안에서는 무언가가 조금씩 꾸준히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이게 최선일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내부의 균열을 메우려 할수록 더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의미라니, 이 무슨 배부른 투정이란 말인지. 왜 조용히 덮어두지 못하고 자꾸 저 질문들을 들춰보게 되는지 나도 내가 못마땅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 대립은 계속 팽팽해져만 갔다. 내 안의 모범생은 사회 안에서의 나를 지키라고 하고, 이단아는 더 큰 가치를 찾아 떠나라 했다. 곧 끊어질 것만 같은 치열한 대립.
나는 이 일을 통해 돈 말고 무슨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확실한 건, 일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이 돈뿐이라면 그것은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치라는 것은 개념적인 문제이고, 기반을 잃는 것은 실질적인 문제다. 한번 밀려나면 완전히 도태될 수도 있다. 대단한 걸 쥐고 있는 게 아닌데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다.
내 손에 쥐어진 명함의 모서리가 아주 뾰족하게 느껴졌다.
나를 설명하는 이 명함은 안전망인가 족쇄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